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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 9 )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 9 ) ‘사랑’과는 거리가 먼 집단이기주의 엘에이 거주 미혼청년 두 사람이 마이애미에 사업차 왔다가 밤에 한식집에서 식사 겸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러자 텃세를 부리고 싶었던지 마이애미지역 거주 청년 4~5명이 엘에이 청년들을 밖으로 불러냈다. 그 중 약삭빠른 청년 하나는 재빨리 줄행랑을 놓았으나 고지식하고 양순한 나머지 A 청년(30)은 ‘자기가 잘 못한

<김현철칼럼>내가 본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의 옛 모습 ( 8 ) 

내가 본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의 옛 모습 ( 8 ) 미 언론도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미 소 냉전이 한창이던 1983년 9월1일 새벽, 승객 269명(한국인 105명, 대부분이 한국계인 미국인 62명, 일본인 28명, 대만 23, 필리핀 16, 홍콩 12, 캐나다 8, 태국 5, 기타 10명 등-그 중 다수의 어린이 포함)을 태우고 뉴욕을 출발, 급유를 위해 ‘앵커리지’를 거쳐서 서울로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7)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7) 왜 내가 국적을 바꿔야 해? 1982년 어는 날, 서울의 동생으로부터 모친(당시 77)께서 낙상으로 입원하셨다는 전화가 왔다. 필자가 미국 이주 후 써 온 모국 민주화를 위한 칼럼들 때문에 당시 한국정부와의 부드럽지 못한 관계였기에 전화만 자주 드렸을 뿐, 8년이 넘도록 귀국할 엄두를 못 냈으니 불효자식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별 도리가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6)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6) 지역 언론 무시한 공관장의 말로 한 번 혼이 난 공관장은 그 후 사적으로는 ‘8인회’ 멤버들과 친히 어울리면서도 공적인 행사에서는 한인회를 중심으로 교민 사회를 대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마이애미 공관장으로 부임하는 총영사는 선임자가 귀띔해 준 탓인지 교민사회에 단 한 건의 월권행위가 없이, 또 시시비비의 원칙을 지켜 가는 언론과 ‘불가원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5)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5) 주미 대한민국 총영사들의 이모저모 이 분들은 술을 권하면서 필자에게 질문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한 분의 질문 후에 필자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바로 이어 다른 분의 질문이 잠시의 간격도 없이 순서대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이 분들이 미리 짜 놓은 각본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분들이 놀라는 표정을 짓기 시작한 것은 필자가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4)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4) 드디어 이 고장에서는 처음으로 ‘8인회’ 멤버가 아닌, 국내 명문 B 국립대 출신 의사 한 분이 한인회장으로 단독 출마했는데 ‘8인회’가 예처럼 방해를 하지 못 했음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 8인회’의 위상이 그만큼 약화된 것이다. ‘우리소식’은 이렇게, B 대 출신들은 물론 일반 동포 누구나 한인회장에 선출될 수 있는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3)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3) 엄청난 실수, ‘오보’ 사건 <‘약 40년 전의 동포사회’라는 글 제목을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로 고친 이유는 글을 쓰다 보니 약 40년 전에 이어 20 년 전 까지 이어졌기 때문임을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한다.> ‘우리소식’을 발행하면서 한 가지 크게 실수한 오보 내용을 이번 기회에 고백해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김현철칼럼> 약 40년 전의 마이애미지역 동포사회 (2)

<김현철칼럼> 약 40년 전의 마이애미지역 동포사회 (2) 그러고서 한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동안 이곳 지식 층 동포 몇 분을 만나면서 한인회 얘기를 자주 주고받았다. 모두가 한인회의 행태가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분은 찾을 수 없었기에 슬쩍 필자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사회의 흐름을 바꿔 놓는 데는 신문 이상 효과적인 게 없다, 신문을 만들어 보자”고

<김현철칼럼> 약 40년 전의 마이애미지역 동포사회 (1)

<김현철칼럼> 약 40년 전의 마이애미지역 동포사회 (1) 마이애미 북쪽 교외 도시의 미국 의사 클리닉에서 침술사로 근무한지 한 달이 지났을 때인 1974년 6월 어느 날, 서울에서 지난 10년간 긴장 속에서 살아 온 “기자 생활을 완전히 접고 이제 남들처럼 좀 느긋한 삶을 택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가장 기뻐했던 것은 바로 아내였다. 그 말이 못 미더웠는지 아내는 “정말?”하고

<김현철칼럼> 성인병 퇴치를 위한 건강강좌 (5) 

<김현철칼럼> 성인병 퇴치를 위한 건강강좌 (5) 플로리다자연치유연구원장 3) 약으로는 가장 비용이 덜 들고 효과는 가장 큰 청백삼차와 현미차를 집에서 만들어 두 가지 모두 하루 각각 200cc, 세 차례모두 6백cc 씩 마신다. 도합 1,200cc 가 된다. 그 재료는 유기농 무(450그램)와 무청, 당근, 우엉(각 250그램), 햇볕에 말린 표고버섯(2개), 유기농 현미로, 이곳에서도 모두 싸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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