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4)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4)

드디어 이 고장에서는 처음으로 ‘8인회’ 멤버가 아닌, 국내 명문 B 국립대 출신 의사 한 분이 한인회장으로 단독 출마했는데 ‘8인회’가 예처럼 방해를 하지 못 했음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 8인회’의 위상이 그만큼 약화된 것이다.
‘우리소식’은 이렇게, B 대 출신들은 물론 일반 동포 누구나 한인회장에 선출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 한인회를 ‘8인회’의 것에서 이 고장 동포사회의 주인인 일반 동포들의 것으로 돌려줌으로써 마이애미 지역 한인사회를 민주화하는데 이바지했다.
이렇게 한인회가 민주화되어 영향력을 잃자 ‘8인회’는 또다시 자기네끼리 중심이 된 ‘마이애미한인상공회의소’를 창립해 ‘8인회’의 보스가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초대회장의 1년 임기가 끝나고 2대회장에 같은 ‘8인회’ 멤버가, 3대는 자기네 측근인사가 속속 선출됐다.
시간이 흘러 ‘8인회’ 측근 인사인 3대 회장의 1년 임기가 끝나갈 무렵, 이곳 동포 기업인 중 가장 크게 사업을 한다는 분이 회원으로 입회하면서 회장에 출마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분이 평소 ‘8인회’ 멤버들이 가장 싫어하는 기업인이었기에 이번에 이 분이 ‘왜 너희들끼리만 해? 나도 한 번 회장을 해보자’고 오기로 출마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런데 ‘8인회’ 측에서 흘러나온 소문은 ‘만 3년간 회비를 낸 사람에 한해서 회장 출마 자격이 있다’는 회칙(?) 때문에 그 분은 출마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소식’ 측에서는 창립 때부터 모두 두 차례의 총회 기록을 확보하고 있었기에 ‘8인회’ 측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 작업에 들어갔으나 회장 자격 요건에 그런 조항은 없었다.
혹시 신문사 몰래 회칙 개정을 위한 임시 총회를 열었는지 확인했으나 현직 이사 8명 전원이 그런 일이 없다고 증언했다. 결국 이번 사건도 ‘8인회’의 장난임이 들어났다.
필자는 당시의 현직 회장에게 전화로 “3년 간 회비를 안 낸 인사는 회장 출마 자격이 없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양심에 가책을 받은 회장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그렇다”고 했다.
필자는 이어 “이사진 전원에게 그런 회칙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문서 위조 등 후에 생기는 모든 법적 책임을 지겠느냐?” 하고 다그쳤다.
너무 당황해서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전화를 끊은 이 분은 불과 20 분도 못 돼 헐레벌떡 신문사에 찾아와 “며칠 전, 밤중에 초대, 2대 전임 회장 두 분이 집에까지 찾아 와서 그렇게 새로 문구를 정강에 집어넣어야 그 분의 출마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해서 총회 결의도 없이 그러다가 큰일난다며 몇 차례 반대하다가 하는 수 없이 이 분들의 요구를 받아 들였는데 그 일은 없는 일로 할 테니 제발 기사를 잘 봐달라”면서 벌써 날조된 조항이 삽입된 회칙을 보이면서 자신의 실수를 사과했다.

‘우리소식’ 다음호 1면 머리기사로 크게 보도된 이 기사는 전 미주 각 지역 동포 언론에도 일제히 보도되었다.
며칠 후 주미한국대사관이 있는 워싱턴디씨 소재 ‘한국신보’ 사회면에 이 기사가 크게 실린 것을 플로리다 거주 동포들이 보게 되었다.
당시 본보의 요청으로 한국신보가 이곳 동포사회에 무료로 배포될 때였으니 ‘우리소식’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 8인회’ 멤버 몇 분이 한국신보를 들고 보스의 집에 찾아가서 함께 이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보스는 자신의 실명이 제목에까지 등장한 것을 보고 “아이구 창피해! 워싱턴디씨에도 엘에이에도 내 친구들이 있는데… 아이구 창피해!”를 연발했었다고 전한다.
결국 초대, 2대, 3대 회장이 모여 회칙을 날조한 사건은 ‘우리소식’의 취재로 하루 아침에 무산되고 ‘8인회’가 기피했던 인사가 단독 후보로 출마해서 민주 방식에 따라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회칙 날조 미수 사건이 보도된 탓인지 막상 상공회의소를 창립한 ‘8인회’ 멤버들의 모습은 그 자리에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8인회’는 ‘자승자박’의 결과 한인회와 마찬가지로 상공회의소마저도 완전히 손을 떼고 원주인인 일반 기업인들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이 고장 동포 사회의 민주화에 성공한 ‘우리소식’은 창립 목적을 다 했기에 이 번 일을 계기로 문을 닫게 된다.
당시 ‘한국신보’는 ‘우리소식’에 실릴 기사 전부를 보도한다는 조건을 받아 들였으니 필자와 ‘우리소식’의 제작 동지들의 노고가 그만큼 줄면서 독자들은 현재의 ‘한겨레저널’과 꼭 같은 싸이즈의 ‘한국신보’를 받아 보게 된 것이다.
얼마가 지난 어느 날 ‘8인회’ 측에서 자기네 보스가 필자를 만나고 싶다며 일부러 사람을 보내 왔다.
자기네를 궁지로 몰아넣은 필자를 그들의 보스가 만나고 싶다고? 필자는 순간 착잡한 생각이 들었으나 그런 자리를 마다하고 기자가 무슨 정보를 얻겠는가.
약속 시간에 맞춰 모 레스트랑에 나타난 필자의 눈에는 의자가 아닌 방석집처럼 되어있는 방에 둥근 테이블을 둘러싸고 필자에게 냉냉한 표정의 ‘8인회’ 멤버 전원이 맥주 잔처럼 큰 유리컵 술잔들을 들고 있었다.
보스 한 분만 만나리라는 필자의 기대가 순간 무너짐과 동시에 긴장으로 단단히 정신 무장을 했다. 이 때 필자가 느끼기는 ‘호랑이 굴’에 잘 못 들어 온 것이었다.
그 자리에는 낯 선 얼굴도 하나 더 보였다. 이 고장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신입 회원”이라 했다.
권하는 대로 자리에 앉자마자 보스는 필자의 자리 앞에 놓인 큰 유리 술잔에 정종을 가득 부으며 우리는 그동안 한잔씩 했으니 쭉 들이켜라고 했다. 그 때 이 자리에 앉은 모든 멤버들의 눈이 필자를 주시하며 술을 다 마시도록 독촉하는 듯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각자 앞에 놓인 술잔의 절반은 물기가 전혀 없는 마른 상태였으니 술을 못하는 사람이 많음을 알았다.
만일 여기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필자의 기가 꺾이는 결과가 올 것이다. 그래서야 되겠는가? 돌아가면서 한 잔씩 필자 한 사람을 상대로 술 공세를 퍼붓고 있는데 결과는 필자가 아홉 잔을 마실 때에 그 분들은 필자의 답례로 붓는 고작 한 잔씩만 들면 되는 극히 공평치 못한 함정에 말려들었음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필자는 주는 대로 지체 없이 쭉 쭉 들이켰다. 그러자 다음에 앉은 분이, 또 다음 분이 연거푸 술을 권했다. (계속) kajhck@naver.com <201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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