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6)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6)
지역 언론 무시한 공관장의 말로

한 번 혼이 난 공관장은 그 후 사적으로는 ‘8인회’ 멤버들과 친히 어울리면서도 공적인 행사에서는 한인회를 중심으로 교민 사회를 대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마이애미 공관장으로 부임하는 총영사는 선임자가 귀띔해 준 탓인지 교민사회에 단 한 건의 월권행위가 없이, 또 시시비비의 원칙을 지켜 가는 언론과 ‘불가원 불가친(不可遠不可親)’의 거리를 유지하며 성실히 근무하다 떠나곤 했다.
그 무렵 필자는 서울의 일간지와 같은 크기의 주간지 ‘한겨레저널’을 창간(1991),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언론 활동을 계속하게 된다.
공관이 한동안 조용히 지나간다 싶더니 중남미의 아주 작은 나라들만 돌면서 대사로 있던 분이 새 공관장으로 부임하면서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신임 공관장의 성격은 너무 독선적인데다 안하무인격인 기질이었다.
공관장 부부가 공관의 부총영사 역할을 하는 바로 아래의 영사 부인마저도 자기 관저에서 식모처럼 마구 부려 먹는데다 이 부인이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 갈 때까지도 식사할 기회를 안 줄 뿐 아니라 집에 가서 먹으라고 밥 한 그릇 나눠 주질 않는 구두쇠였기에 영사 부부는 밤늦게 10시나 돼야 밥을 지어먹는 날이 다반사였다.
거기에 부하 직원들을 숨도 제대로 못 쉬게 하는 독선적 자세 등 때문에 자신의 공금횡령 사건마저 몇 차례나 폭로돼, 세상에 알려지고 만 것이다.
부드럽고 매끄러워야 할 외교관 보다는 군이나 경찰 같은 조직에나 어울릴 인품이랄까?

이 분이 어느 날 저녁, 신문사에는 알리지도 않고 교민사회의 지도급 인사 40 여명을 식사에 초청하더니 식사가 끝나자마자 마치 군대의 조직처럼 현장에 나와 있는 교민들을 네 개의 팀으로 편성하고는 자기에게 평소 잘 하던 분들을 팀장으로 위임했다. 이 자리에 모인 교민들의 대부분은 공관장이라면 무조건 떠받드는 어용인사들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평소에 심지가 빳빳했던 소수의 엘리트 층 동포들은 한 분도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마음대로 안 되는 교민들은 미리 걸러낸 듯했다.
소문을 듣고 현장에 나간 필자를 보자 공관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반길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난 탓이었을까?
지금껏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공관장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서 필자는 웃는 얼굴로 “미국 내 교민사회에 왜 이런 관제 조직이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공관장은 불쾌한 표정으로 “공관이 앞으로 이 팀을 활용해서 본국 정부의 지시를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황당한 대답을 했다.
언제부터 모국 정부가 미국 거주 교민들에게 지시를 했다는 말인가? 고위 외교관 발언치고는 몰상식한 것임이 분명했다.
또 언론을 우습게 보지 않고서야 해외공관의 월권행위에 속하는 일을 기자의 질문에 그토록 당당하게 대답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내심 공관으로서는 떳떳치 못한 일이었기에 교민사회 인사들을 거의 전부 초청하면서 신문에만은 비밀리에 했음을 알았다.

당시 외무부에는 5.16 쿠데타 후 군 장교들이 외교관으로 변신한 경우가 허다했기에 필자는 이 공관장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하고 서울에 조회를 해 봤으나 그건 아니었다. 주로 중남미의 작은 나라 공관만 돌아다니면서 왕(?) 노릇만 했던 탓인지 그 오랜 외교관 경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유치한 외교관’의 때를 벗지 못했던 것이다.
재미 동포사회는 그 무시무시한 군사독재 하에서도 그런 식으로 모국 독재정부의 지시에 복종하는 교민사회가 되어 본 적이 없었기에 이틀 후 공관장에게 조용히 충고를 했다.
“미주지역이나 유럽지역은 중남미 지역과는 달라서 교민들의 수준이 다르다. 교민보호 이외의 그러한 공관의 독선적 대 교민 관계는 머지않아 문제가 올 것이다”.

그 분의 반응은 ‘어디 한 번 해보자’는 듯 아무 말도 없이 기자를 노려봤다.
역대 공관장으로 기자에게 이런 표정을 지은 것은 이 분이 처음이었다.
국내에서 5.16 쿠데타 직 후 필자가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쥔 당시의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출입했을 당시 대부분의 기자가 당했듯, 모 최고위원(당시 현역 육군대령)으로부터 비슷한 경우를 당한 적이 있을 뿐, 중앙청의 다른 장 차관들로부터도 이런 일은 한 번도 당해 본 적이 없었으니 황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음 날부터 며칠 전에 조직한 4개 분대(?)를 동원해서 오히려 ‘기자가 공관의 직무를 간섭한다’는 소문을 동포사회에 퍼트렸다.
그 때에 얼른 필자가 느낀 것은 공관장이 만든 조직은 “모국 정부 지시 전달”용은 변명일 뿐, 실은 이 고장의 꼿꼿한 언론을 민,관 합동 작전으로 약화 내지 말살시키자는 목적이었음을 깨달았다.
강한 성격에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자유 언론을 마이애미에서 처음 보고 ‘해외 교민사회의 신문쯤이야!’하는 외교관답지 않은 오만한 생각 때문이었을까?
이 사건과 관련된 기사가 보도되기 직전, 필자는 자기 바로 위의 공관장을 아주 싫어하던 영사를 초청해서 술을 나누었다. 서로가 느긋하게 취하자 필자는 우선 엊그제 조직된 교민들의 ‘관제조직’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의중을 떠 보았다.
이 분은 머뭇머뭇하더니 ‘자신의 말을 기사화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입을 열었다.
“저의 외교관 생활 20 여년에 공관장이 교민들을 군대식으로 조직하는 일은 처음 봤다. 아마 중남미 교민 사회가 그런 식으로 마음대로 됐나본데 이건 아니다. 마이애미 거주 교민들은 양 같이 순한 분들이니 가능했다.”고 했다.
여기서 ‘교민들이 양 같이 순하다’는 표현은 바꿔 말하면 이 고장에 똑똑한 인재가 없다는 뜻을 외교관답게 에둘러 표현한 게 아니겠는가.
드디어 이 공관장의 미국 거주 교민들의 관제조직화에 따르는 월권행위와 부하 직원에 의한 공금횡령 사건 폭로 내용이 보도된 ‘한겨레저널’ 신문이 당시의 국내 외무부 장관과 주미대사 앞으로 속속 발송되었다.
장관의 지시로 신문들을 샅샅이 읽은 외무부 감사팀이 비행기로 급히 날아 왔다.
결국 이 공관장은 며칠간의 신속한 현장 조사 끝에,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보직이 없는 본부대사로 좌천되었다가 곧 외교관복을 벗고 말았다. (계속) kajhck@naver.com <201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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