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12월 2014

<목회칼럼> 우리가 돌아갈 성탄의 자리……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갑 질 사건 즉 대한항공 조현아부사장의 땅콩 회향 논란으로 연일 시끄럽습니다. 이 작은 사건 하나가 그 동안 잠재돼있던 대한항공의 숨겨져 행해오던 갑질이 만 천하에 공개되면서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사실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 제23조에는 ‘승객의 협조의무로’기장들의 업무를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방해하는 행위, 폭언, 고성방가 등

<김명열칼럼> 금년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송구영신(送舊迎新)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사람들은 늘 지난 것에 대하여 후회하고 아쉬워하며 미련을 남기고 살아간다. 오늘이전 지나간 한해를 돌이켜보면 역시 다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너무나 많을 줄로 생각된다. 지금 우리는 한 해를 보내는 끝자락에 서있지만, 끝은 곧 시작이 된다는 것도 머릿속에 새겨 넣어야겠다. 또한 모든 것은 시작하면 언젠가는 끝이 있게 마련이다. 지치고 힘들고 어려운

<예수꾸러기의 짧은 글 긴 생각> 사실과 인식의 시차

이경규목사 / 서울 새로운 성결교회 담임 성경은 ‘믿음이란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려는 대상에게 조건을 찾지 않고 결과를 주는 방법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기에 구원은 선물이요 은혜이지 삯이 아니며 자랑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 창세기 15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자 그것을 그의 의로 여겼다고 한다. 이 믿음은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것인가? 아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디서 나왔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목회칼럼> 목사는 예배의 기계가 아니라 예배자가 되야 한다.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올해도 어김없이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 다가 옵니다. 항상 이맘때면 그런 글들과 그런 유의 설교들을 한듯합니다. 캐롤, 말구유, 별, 목자들, 동방박사들, 산타, 세일, 츄리, 성탄츄리 판매부스들, 외식, 축하행사들, 정말 셀 수도 없는 것들이 성탄절에 맞춰 이미 우리의 귀와 삶에 익숙한 문화 아닌 문화가 돼버린 지 오래입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린 성탄””산타가 대신

<김명열칼럼> 간 큰 남자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얼마 전 나는 시카고에서 오신 손님들과 함께 Key West에 여행가는 길에 점심때가 되어 어느 식당에 들렀다. 식사를 하던 중 나는 집사람에게 커피가 너무 써서 그러니 가까이 있는 설탕그릇을 갖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집사람은 일어나서 몇 발자국을 걸어서 카운터에 놓여있는 설탕그릇을 갖다 주었다. 그때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던 한분이 “아니 회장님, 그건 웨이츠레스에게

<예수꾸러기의 짧은 글 긴 생각> 믿음의 훈련지, 애굽

이경규목사 / 서울 새로운 성결교회 담임 어느 날 아브라함이 떠나온 땅에 기근이 들었다. 당시 그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그 기근 속에서라도 자신을 먹이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는 그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 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연스럽게 물이 있는 곳, 자기 양떼를 먹일 수 있는 곳, 자기네가 먹고 살 수 있는 곳으로 양식을 구하러 애굽까지 갔다. 가면서

<김명열칼럼> 동지 팥죽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달력을 보니 오는12월 22일, 일요일이 음력으로는 동지(음력11월 20일)가 된다. 동지에 대한 글을 써 올린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났다. 글을 쓰면서도 세월이 참으로 빨리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동지는 음력 24절후의 하나로 일 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아지며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여 동짓날에 이르러 극에 달하고, 다음

<김명열칼럼> 세상을 순리대로 살고 자기를 책임지는 인생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이야기가 있다. 아주 커다란 저수지에 말과 소를 깊은 물속으로 동시에 던지면 둘 다 헤엄쳐 나온다. 말은 헤엄속도가 빨라 거의 두 배 정도로 소보다 빨리 밖으로 헤엄쳐 나온다. 그런데 장마가 져 큰물이 불어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갑자기 몰아닥친 홍수로 강가의 덤프트럭이 물살에 휩쓸려가는 그런 큰물에 소와 말을 동시에 던져보면 소는 살아나오는데 말은 익사한다.

<예수꾸러기의 짧은 글 긴 생각> 아브라함에 대한 오해

이경규목사 / 서울 새로운 성결교회 담임 하란까지 인도한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의 이름은 ‘지연시키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적절한 이름이다. 이 이름처럼 아브라함은 데라로 인해 가나안에 들어가는대 도움을 받기보다는 더 많은 방해를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할 것은 데라와 아브라함은 어떤 신앙의 차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데라는 하란에서 죽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그 이후에 하나님이 다시

<목회칼럼> 이제 제 2의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입니다.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1517년 10월 31일, 제성기념일(신앙의 본을 보인 모든 성인의 날 전날 밤) 전야에 95개 논제를 비텐베르크 성 교회의 문에 내걸면서 종교개혁의 서막이 열렸습니다. 직접적인 문제는 교회의 면죄부 판매로 시작된 것이지만 썩을 대로 썩은 천주교와 돈과 권력에 눈이 먼 사제들의 타락이 마틴 루터의 가슴에 불을 붙인 계기가 된 것입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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