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동지 팥죽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달력을 보니 오는12월 22일, 일요일이 음력으로는 동지(음력11월 20일)가 된다.
동지에 대한 글을 써 올린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났다. 글을 쓰면서도 세월이 참으로 빨리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동지는 음력 24절후의 하나로 일 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아지며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여 동짓날에 이르러 극에 달하고, 다음 날부터는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동짓날 풍습을 보면 팥죽을 쑤어서 먼저 사당에 올리고 각 방과 장독, 헛간, 대문 등 집안의 여러 곳에 담아놓았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는다.
동짓날의 팥죽은 시절식(時節食)의 하나이면서 신앙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즉 팥죽에는 축귀(逐鬼)하는 기능이 있다고 보았으니, 집안의 여러 곳에 놓는 것은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내기 위한 것이고 사당에 놓은 것은 천신(薦新)의 뜻이 있다.
팥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陰鬼)를 쫓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으며 민속적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여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며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주술행위의 일종이다.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도 팥죽, 팥떡, 팥밥을 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짓날에도 대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 것으로 되어있다. 동짓달에 동지가 초승에 들면 대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보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疫神)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해 동짓날 팥죽을 쑤어서 악귀를 쫓았다는 것이다.
그 이후 이것이 우리나라에도 전래되어 동짓날 팥죽을 쑤어먹는 풍습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팥죽을 쑤어먹는 얘기가 나왔으니 팥죽에 얽힌 재미난 얘기를 여러분들에게 들려 드리도록 하겠다.
옛날 어느 마을에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집에서 팥죽을 쑤었다. 팥죽이 거의 다 되었을 때 며느리는 물을 긷기 위해 우물로 갔다. 팥죽을 너무나 좋아하는 시아버지는 팥죽이 다 되었는지를 알아보려고 부엌을 기웃거렸다. 그런데 마침 며느리는 부엌에 없었고 팥죽은 맛있게 끓고 있었다. 시아버지는 웃어른으로서 지켜야할 예절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며느리 몰래 얼른 팥죽을 한 사발 퍼 가지고 나왔다. 아무데서나 먹다가는 며느리에게 들킬 염려가 있어서 시아버지는 사방을 둘러보며 안전하게 며느리 눈을 피해 먹을 곳을 찾았다. 마침 눈앞에 헛간이 보였다. “옳거니 저 헛간에서 먹으면 되겠다”. 시아버지는 헛간으로 얼른 들어가서 팥죽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이때 며느리가 물을 긷고 집에 와 보니 시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며느리도 시아버지가 안보이자 팥죽이 먹고 싶은 마음에 팥죽을 한 그릇 퍼냈다.
“시아버지가 안 보이는 곳에서 먹으려면 어디가 좋을까?” 며느리는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다가 “옳지 저 헛간이 좋겠구나” 하고 팥죽 그릇을 들고 헛간으로 급히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 가보니 시아버지가 팥죽 그릇을 들고 서있지 않은가. 며느리와 시아버지는 서로 팥죽 그릇을 든 채 마주치자 서로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시아버지는 너무나 다급하여 팥죽사발을 재빨리 머리에 뒤집어쓰고 눈만 껌벅거렸다. 며느리도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엉겁결에 팥죽사발을 시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아버님 팥죽 드세요” 시아버지는 팥죽을 먹지 않은 척 시치미를 떼고 대답했다.
“얘야 나는 팥죽만 보아도 팥죽 땀이 줄줄 흘러내린단다.” 며느리는 팥죽을 뒤집어쓴 시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더욱 놀랐다. 시아버지의 머리에서는 정말로 팥죽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마음대로 부릴 수가 없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서로 몰래 팥죽을
먹고 싶은 식탐 때문에 벌어진 재미있는 이야기다. 아예 처음부터 식탐을 조절하고 서로가 조금만 참았더라면 시아버지는 그래도 나름대로 체통을 지킬 수 있었고 며느리는 해야 할 도리를 다하여 염치도 지키며 정말로 맛있는 팥죽을 먹으면서 서로 웃으며 행복한 사이가 되었을 텐데….하고 안타까움이 앞선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모든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대다수의 소원함과 아쉬움,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은 탐하는 마음(욕심), 성(화)을 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작용하여 서로간에 해야 할 도리와 예절을 지키지 못한데서 비롯되는 것 같다. 따라서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늘 언제나 이러한 것들에 끌리고 얽매이지 않도록 수시로 일어나는 욕심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고 때로는 진득하게 기다리며 참을 줄도 아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면 그 가운데 체통도서고 도리도 다하며 염치도 있게 되어서 늘 원만한 사람, 사랑 받는 사람, 존경받는 사람이 되지 않나 생각을 해 본다.
이제 금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가오는 2014년 새해에는 모두가 건강하시고 만나는 모든 인연마다 서로 간에 도리를 다하고 예의를 지키는 행복한 나날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 드린다.  즐거운 성탄과 년말, 년시를 보내시길 빌겠다.
<myongyul@gmail.com> 908/1217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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