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 9 )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 9 )
‘사랑’과는 거리가 먼 집단이기주의

엘에이 거주 미혼청년 두 사람이 마이애미에 사업차 왔다가 밤에 한식집에서 식사 겸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러자 텃세를 부리고 싶었던지 마이애미지역 거주 청년 4~5명이 엘에이 청년들을 밖으로 불러냈다. 그 중 약삭빠른 청년 하나는 재빨리 줄행랑을 놓았으나 고지식하고 양순한 나머지 A 청년(30)은 ‘자기가 잘 못한 게 없으니 별 일이야 있겠느냐’는 듯 고분고분 따라 나왔다.
홀어머니와 동생들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던 가장인 A 청년은 이들이 시키는 대로 식당 앞마당에 섰다. 곧 이어 마이애미 지역 청년들이 B 청년과 함께 자신을 둘러싸고 시비를 걸었다. 원래 조용한 성격이었던 A 청년은 잔뜩 주눅이 든 체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목을 아래로 숙인 체 조용히 서 있었다.
마이애미 청년들은 A 청년의 이러한 자세가 건방지게 보였든지 언성이 자꾸 높아졌고 B 청년이 ‘욱’ 하는 성미에 “이 새X 죽여버려!” 하며 가까이 세워 둔 자기 차에 가서 골프채를 들고 와서는 동료 청년들이 보는 가운데 조용히 서있는 A 청년의 뒤통수를 두 차례 힘껏 가격했다.
A 청년은 그 자리에서 힘없이 쓰러졌고 이 후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서 30 여 일간 산소마스크로 연명하다가 끝내 세상을 떴다. 엘에이의 홀어머니와 여동생은 이미 한 달 간이나 외아들을 살려 보겠다며 병간호 등 있는 정성을 다 쏟았으나 A 청년은 끝내 돌아 올 길 없는 세상으로 떠나버리고 만 것이다. 아직 미혼인 독자를 잃은 홀어머니와 여동생의 슬픔은 무슨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었을까?
마이애미 지역 한인사회 역사이래 처음으로 발생한 ‘동포청년이 동포청년’을 타살한 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 필자는 이 사건을 1면 머리기사에서 3면 3단에 이르기까지 수차례에 걸쳐서, 초동수사에 임했던 경찰관을 통한 사건의 현장 실황, 중환자실의 피해자의 근황, 피해자의 사망, 가해자의 공판 내용 등을 성실히 보도해서 언론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필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피해 청년의 유가족들을 돕기 위해서 이곳 동포들에게 수차례 전면광고를 통해 신문 발행인 겸 편집인의 이름을 걸고 모금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 헌금자의 이름과 액수를 낱낱이 신문에 밝히면서 한 달여에 걸쳐 현금 약 1만 2천 달러를 모금, 당시 한인회 간부가 엘에이에 가는 길에 유가족에게 직접 전달함으로써 마이애미 동포들의 미안한 마음과 슬픔을 대신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위의 사건 관련 기사의 속보가 보도될 때마다 대부분 독자들은 당연하다는 듯 말이 없는데 유독 가해자 및 그의 가족들이 소속된 교회측의 지도급 교인 몇 분이 필자를 헐뜯는 모습을 보고 적지 않게 실망했었다.
하루는 교회 중진 신자 한 분이 “왜 신문이 그런 것만 보도 하냐? 이제 그 사건 좀 그만 쓸 수 없냐? 교인들이 아주 싫어한다”며 화를 냈다.
필자는 듣다못해 “기사는 오랜 기자 경력을 가진 전문가가 기사 가치에 따라 크게 또는 조그맣게 보도하는 것이니 비전문인들이 자기네 마음에 안 든다고 기사 보도 여부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 교회 말고 다른 교회 교인들은 신문이 당연한 일을 한다며 격려 해 주더라. 기사 어디에도 가해자의 소속 교회를 밝힌 적이 없는데 교인들이 같은 교회 식구라고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가해자를 감싸는 마음은 알겠지만, 그 보다는 생활을 책임진 가장에다 아직 총각인 자식을 영원히 못 보게 된 피해자 유가족의 서러움을 달래 주고 또 앞으로 닥칠 그 분들의 생활고 대책으로 모금에 앞장 서야 하는 것은 오히려 신문이 아니라 교회 측일 것이다. 내가 못하는 일을 남이 대신하고 있다면 기사 속보가 나간다고 불평하기보다 교회 식구인 가해자를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선도하는 한편 유가족의 슬픔에 동참해서 그 분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우려는 자세가 아쉽다”고 했더니 이 분은 지금까지의 험한 표정이 풀리면서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후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다”며 자리를 떴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선물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양심’이다.
‘공의(公義=정의)로운 하나님의 기본형상’이 ‘도덕과 양심’이라고 한다면 언제나 약자 편에 서서 생각할 줄 아는 자세야 말로 제대로 된 인간의 모습일 것이오, 기독교인들 또한 자기네 교회와 교인들만 생각하는 ‘집단이기주의’에서 멀어지는 길일 것이다. (계속) kajhck@naver.com <868/201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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