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의 옛 모습 ( 8 ) 

내가 본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의 옛 모습 ( 8 )
미 언론도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미 소 냉전이 한창이던 1983년 9월1일 새벽, 승객 269명(한국인 105명, 대부분이 한국계인 미국인 62명, 일본인 28명, 대만 23, 필리핀 16, 홍콩 12, 캐나다 8, 태국 5, 기타 10명 등-그 중 다수의 어린이 포함)을 태우고 뉴욕을 출발, 급유를 위해 ‘앵커리지’를 거쳐서 서울로 오던 대한항공 민간 여객기(007편=기장 천병인 외 승무원 28명)가 소련 영공을 침범, 소련 공군기의 미사일 공격에 의해 사할린 앞바다에 추락,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대부분의 전 세계 언론은 미사일로 민간여객기를 격추한 소련의 인명경시 자세를 규탄하는 큰 기사들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같은 날 오후 2시경 이곳 한인사회도 한인회가 중심이 되어 ‘소련을 규탄하는 데모'(다음날 낮 시간이라 직장 때문에 20 여명의 동포들만이 모여 시내에서 소련 규탄 시위를 벌임)를 벌이기 위한 모임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마이애미의 NBC-TV 기자가 카메라맨과 함께 이 자리에 나타나 이번 사건에 관한 한인사회의 반응을 취재했다. 물으나 마나 이 자리에 나온 10여명의 동포들은 하나같이 “비인간적인 소련을 규탄한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이 때 필자의 눈에 비친 기자의 표정은 어딘지 듣고 싶은 소리를 못 들어 불만스런 것이었다.
필자가 맨 뒷자리에 앉아있었기에 마지막으로 필자의 차례가 왔다. 기자 신분(당시 워싱턴에서 발행되는 ‘한국신보’와 ‘한국방송’ 플로리다지사장)을 감춘 채 필자는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을 상기하면서 “왜 한국인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희생당해야 하느냐? 다시는 미-소 양대 강국의 냉전 사이에서 우리 한국인들의 억울한 희생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며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때 기자의 눈이 ‘이제야 듣고 싶은 말을 듣는다는 듯이 반짝 빛나며 웃음을 뗬다. 카메라 기자는 필자가 말하는 내용을 열심히 찍었다. 이 기자는 취재를 마치고 필자에게 명함을 주면서 밤 9시 뉴스에 나간다고 알려 주었다.
그 후부터 이 방송을 고정시켜 놓고 회의를 계속하고 있는데 오후 4시가 조금 지나 요리 강의 시간 중에 갑자기 화면이 바뀌면서 뉴스 앵커가 나타나더니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이번 소련의 KAL 민항기 격추 사건에 대해 이곳 한인사회는” 미-소 양대 강국의 냉전 때문에 더 이상 한국인들이 희생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밤 9시 뉴스에서 알려 드리겠습니다”고 예보했다. 다른 프로그램 방영 도중에 이 사건이 ‘미-소 간 냉전’ 때문임을 주장하는 한인사회의 반응이 예보로 다루어진다는 것은 미 언론도 같은 판단을 하고 있다는 뜻이오, 따라서 한인사회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음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예보를 듣던 회의 참석자들은 잠시 환호성을 지르더니 모두가 집에 가서 밤 9시 뉴스를 보자면서 헤어졌다.
드디어 9시가 됐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뉴스 시간이 끝나도록 미리 예보까지 한 한인사회의 반응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 때 필자는 ‘그러면 그렇지, 언론자유가 있는 나라라고 어떻게 너희 국익에 관련된 내용을 보도하겠냐? 예보를 듣고 정보기관에서 손을 썼겠지!’하고 생각했다.
곧 이어 여기저기서 “왜, 우리들을 취재한 뉴스가 안 나오냐?”는 동포들의 전화가 걸려왔다. 필자의 생각을 말하자 모두가 “그럼 왜 예보는 해?” 하고 불평을 했다. 하긴 예보를 안 했더라면 방송이 나갈 때까지 정부당국이 손을 쓸 짬이 없었겠지.
다음 날 아침 정확한 취재기자의 말을 듣기 위해서 전화를 했다. “예보까지 해 놓고 왜 보도를 못했냐?”고 물었더니 “나도 실망했다. 예보를 미리 듣고 외부의 누군가가 위 선에 연락, 보도할 수 없었다, 한인사회에 미안하다”고 해명했다.
겉으로는 언론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미국도 국익 앞에서는 보도 통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미국 언론 중 ABC, CBS, CNN, NBC 등 큰 방송 및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로스엔젤레스타임즈, 월스트릿저널 등 주류 언론들 말고 영향력이 크지 않은 비주류 군소 방송 신문의 경우는 ‘너희들 맘대로 떠들어 봐 무슨 영향력이 있어?’하는 식으로 정부 당국에서 무시하는 바람에 실제로 미 정부 당국이 쉬쉬하는 중요한 정보를 얻으려면 이 군소 언론이나 관련 서적들 또는 ‘R-TV’, ‘헌핑튼 포스트’나 ‘커렌트 TV’ 등을 보아야 한다는 게 미국 지식층 사회의 상식이 된 지 오래다.
물론 국내의 경우는 한 술 더 떠서 국익이 아닌 여당이나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언론의 본연의 자세를 팽개친 조,중,동 등 신문과 그들의 종편 방송, KBS, MBC, YTN 방송, 그리고 뉴데일리 등의 온라인 언론 등 주류 언론사들이 자진해서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정부 여당 적극 편들기’로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어 의식이 올바른 국민들을 슬프게 하고 있는 현실이다.
‘KAL007 생존자 구조위원회’ 회장이며 ‘KAL 007 풀리지 않는 의혹들’의 저자 ‘버트 슐로스버그’에 따르면 당시 “소련은 ICBM 즉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으며, 미국은 이것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때 KAL 007기가 항로를 이탈하여 소련 극동 함대 대륙간 탄도핵 잠수함 기지 위를 앵커리지에서 입력한 정보를 가지고 자동항법장치를 이용하여 날아갔으며 007기를 이용해서 미 공군 첩보기(RC-135=C-130을 개조한 비행기로, 레이더 상으로는 KAL 007기와 구분이 거의 안 됨)를 통해 첩보활동을 성공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어 ‘007기 조종사는 소련 미사일에 비행기의 꼬리 수평날개 부분을 피격 당해 한 명의 희생자가 생긴 후 노련한 조종술로 12분간이나 침착하게 서서히 하강, 타타르 해협에 있는 유일한 땅인 모네론 섬 앞바다 위에 내릴 수 있었음은 2백여명의 승객 및 승무원들이 살아 있음을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007기는 그 후에도 한 시간 이상 안전하게 바다위에서 소련군 구조대(헬리콥터와 선박)가 올 때까지 건재했으며 260여명 전원 및 소지품 전부가 소련 측에 옮겨졌고 그 후 어디론지 사라졌으며 그 후 이 비행기는 소련군에 의해 폭파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제시 헬름스 미 상원의원과 미 CIA 공동 조사 내용과도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 정부 당국의 발표처럼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면 시체, 여행객의 소지물품, 수백 개에 달하는 신발 등이 유물로 발견되는 게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잔해 외에는 단 하나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는 사실, 그 후 미국의 가족들이 그동안 죽은 줄 알았던 가족의 전화를 받자마자 곧 끊겨버린 일은 가까이 있던 누군가에 의해 통화가 제지당했기 때문이라는 주장, 이렇게 미국 내 가족들이 자기네 혈육이 생존하고 있음을 확신, 미국 정부에 진상조사를 요구했으나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는 불만 등 007기 승객들의 생존을 뒷받침하는 정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소련 측은 그 시간에 미국의 첩보기가 소련 영공의 민감한 지역(캄차카반도, 미국을 겨냥한 미사일기지 및 통신시설이 있는 곳) 안으로 들어와 첩보활동을 하고 있어서, 경고했으나, 계속 비행을 해서 격추시켰다고 발표했다. 사망자 숫자가 공식 발표된 269명이 아니라 첩보 활동에 나선 29명뿐이었다고 강조한 트레치야크 당시 소련극동군사령관에 따르면 바다에 떨어진 수하물들을 보면 269명 분량이지만 이는 사건을 호도하기 위해 철저히 위장된 것들로 269명분의 수하물들이 흩어지지 않고 로프에 꿰어져 바다 위에 둥근 형태로 나타났다면서 보통 비행기라면 이곳 저곳에 화물이 흩어졌겠지만 모든 화물이 로프에 꿰어져 가지런한 모습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269명의 죽음에 대한 유죄 증거를 조작하기 위해 미국이 꾸민 짓이며 앵커리지에서 승객들은 사전에 비행기에서 내려 승객들 전원이 증인 보호 차원에서 미국 땅 어디엔가 숨어 지내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볼 때 2백여명의 승객들 중 30년이라는 시간 속에 상당수는 이미 고인이 되었다 치더라도 아직 상당수가 살아남아 있을 가능성이 큰데 과연 이들은 지금 어디서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죽지 못해 살고 있을까? 노동력 확보를 위해 가난한 나라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을 싼 임금으로 수입하고 있는 러시아의 어느 강제수용소일까? 아니면 인류 복지를 위해 그동안 무공해 에너지를 연구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한밤중에 사라진 수많은 과학자들과 같은 운명이 되었을까? 007기 피격 30년이 되어 와도 이 사건은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계속) kajhck@naver.com <201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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