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참모보다는 환관을 선호하는 대통령들

<김원동칼럼> 참모보다는 환관을 선호하는 대통령들

“나는 장량처럼 책략을 쓸 줄 모른다. 소하처럼 행정능력도 없다. 병사를 이끌고 싸움터에서 이기는 한신을 따를 수도 없다. 허지만 나는 이 세 사람을 기용할 줄 안다” 2천 년 전 진시황제에 이어 두 번째로 천하통일 한 한나라 초대 황제(BC 206) 유방이 남긴 말이다.
그리고 저자거리에서 건달생활을 하던 그가 만리장성을 비롯 시황제가 떠 벌려놓은 그 많은 토목공사에 부역자들을 모아 끌고 가던 지방 말단직 시절에 있었던 일화도 있다.
이탈자가 생기고 기진맥진한 채 사지(死地)를 향해 가던 대열 앞에 엄청 큰 뱀 한 마리가 혀를 내밀고 진로를 막자 모두 기겁하며 혼비백산 지경에서였다. 그때 유방이 했던 말이다. “위대하지 않으면 나는 없다. 비상(飛翔)하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라는 명언을 나는 책상머리에 붙여놓고 입맛을 다졌다.
이것을 칼럼 서두에 인용한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막장으로 치닫는 개싸움으로 불리는 제18대 한국 대통령 선거가 60여 시간 남은 순간에 치는 원고다.
누가 당선되건 상관없기에 대선결과에 구애 없이 쳐보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나는 박근혜나 문재인이나 누가 되도 그만이라는 입장이다.
“사람이 이렇게도 없나” 라는 생각과 함께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인물로써 안중(眼中)에 들지도 않을뿐더러 주권행사로서의 권리와 의무인 신성한 투표행위가 아닌 한 표에 대한 본전심리에 매몰돼 있는 민도와 사명감 없는 줄서기 바쁜 기생 언론인들의 그 고질적인 한심한 작태는 누가 당선 되도 힘들다는 말을 곧잘 하는 입장이고 보면 그렇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태고 싶은 것은 대통령의 참모론이다. 그래서 유방의 전설을 늘어놓았다.
두 장면의 대통령의 딋 모습이 떠오른다. 하나는 김영삼과 케네디의 상반된 모습 말이다.
또 한사람의 모습을 더 첨가한다면 타이타닉호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다.
유방과 케네디는 지도자로써 참모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다. 참모의 조언을 무시하는 유아독존형의 YS나 스미스 선장의 참모무용론 내지 반대의 온도는 아주 극명한 차이다.오래전에 본 영화 “D-13(Thirteen Days)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1962년 10월에 있었던 일이다. 5분이면 미 본토를 궤멸시킬 수 있는 가공할 핵무기 기지가 미국 땅 플로리다에서 멀지 않는 쿠바에 설치되고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직면, 세계를 경악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긴박한 순간의 그 13일간을 그린 영화다.
선전포고를 하고 한판 붙자는 강경파와 평화적 외교로 풀자는 온건파 참모들의 상반된 의견을 스스로 조율하며 리더로써 결단을 내리던 순간을 묘사하며 백악관 창문을 보며 고뇌에 차있던 그 모습과 상반된 또 하나의 사진이다.
김영삼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인왕산을 쳐다보며 야당시절 가장 가까운 가신 중에 하나인 김덕룡으로부터 “각하 현철이 이대로 두면 안됩니다”라는 말에 “김의원은 뭘 몰라!”라며 일갈했다.
직언이 허용되지 않은 청와대의 분위기나 정서를 김덕용은 몰랐다.
어딜 봐도 케네디의 모습은 없다. 독선과 아집뿐이다.
그 후 김덕룡은 YS임기 내내 찬밥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한 시절을 지내야했다.
그리고 꼭 100년 전 4월 달의 일이다.
앞에 거대한 빙산이 있다는 보고를 무려 다섯 차례나 받고도 참모들의 의견을 묵살 무시한 채 그 절박한 시간에 일등석 손님들과의 히히덕거리는 스미스 선장의 아집과 불통은 인류사상 최악의 타이타닉호 침몰이라는 참변을 빚었다.
5년마다 대선이 있을 때면 생각나는 영화가 와 <타이타닉>이다.
이제 누가 되었건 참모의 의견을 소중히 하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참모는 없고 내시만 우글거리는 청와대! 그래서 유방이 남긴 말이나 케네디의 모습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 쓰여진다. 또 어떤 너절한 역사가 쓰여질까 지켜 볼 일이다. 허기사 너절한 역사도 역사이긴 하다.  <kwd70@hotmail.com/858/1219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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