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아름다운 복사꽃 피는 이 4월에…..!

<김명열칼럼> 아름다운 복사꽃 피는 이 4월에…..!

내가 10여년전 시카고에 살때, 모 한인사회 단체장을 여러해 동안 역임하며 봉사활동을 하였다. 어느 따뜻한 봄날 봄이 무르익어 봄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 미소 짓고 있는 일요일, 25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어느 주립공원에서 야유회를 갖고 오락시간을 가질 때이다. 나에게 노래를 신청하며, 어느 회원이 ‘회장님이 좋아하는 노래 18번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다. 사실 18번이라는 말은 일본식 표현이라서 선뜻 사용하기에는 부적절 하다 하지만, 제일 애창하는 곡(曲)이 무엇이냐는 질문과 같은 뜻으로 쉽게 전달되기 때문에 18번 그 자체에 대한 시비보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먼저 생각한다.

그럴 때 마다 난 크게 망설임 없이 “외나무다리” 라고 대답한다. 이 노래를 모르는 어느 회원은 ‘그게 누구 노래지요?’ ‘언제적 나온겁니까?’ ‘누가 불렀습니까?’ 등등 되물음도 적지 않다. 옛날 유명배우 최무룡씨를 아십니까? 전에 김지미씨와 세간을 풍미했던, 로맨스가 있었던 가수이자 영화배우이지요. ‘아 하, 그 탤런트 최민수씨의 아버지요?’ 중년이상 세대는 대답 전반부 중에 알아차리지만 젊은 층 회원들은 최민수씨 부친이라는 데서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고향 / 만나면 즐거웠던 외나무다리 / 그리운 내 사랑아 지금은 어디 / 새파란 가슴속에 간직한 꿈을 / 못잊을 세월속에 날려 보내리…<2절은 생략>

내가 이 노래를 즐겨 부르면 사람들은 짓궂게 이렇게 묻기도 한다. ‘복사꽃 피는 고향 마을에서 어느 아가씨와 로맨스라도 있었느냐?’고….. 그러나 나는 이 노래 가사와 같이 무슨 사연이나, 어느 아가씨와 로맨스가 있었던 과거가 생각나서 이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곡이 듣기 좋고 가사의 내용 중 ‘복사꽃 능금 꽃이 피는 내고향’이 그리워서 부를 때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운명적인 사랑은 무엇인가? 바로 제3자도, 삼각관계도 없는 오직 둘만의 사랑이 아닌가? 외나무다리를 부르며 새기는 감회다. 나아가 생각에 젖어들기도 한다. 어디 남녀만의 사랑이 그러한가? 부자지간이거나 모녀지간, 나아가 이웃 간의 사랑도 운명으로 여기며 충실할 때에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우리나라의 분단에 처한 민족끼리의 운명적인 사랑은 오작교에서 견우와 직녀가 만난 듯 엄숙하면서도 필연의 사랑이 아닌가 생각에 잠겨본다.

복사꽃은 봄을 상징하는 봄의 아름다움이다. 미인의 요염한 분위기, 그와 딱 들어맞는 꽃이다. 시인들은 봄바람 보슬비를 맞으며 우는 복사꽃의 모습에서 요염함의 극치를 읽었고 봄날의 덧없음과 허무를 알게 되었다. 복사꽃은 4월20일 경부터 말에 만개한다. 연분홍의 강렬한 색상은 야릇한 에로티시즘을 발산한다. 연분홍은 여성적 온화함과 부드러움, 로맨틱한 감정도 불러오는 색이다.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삼을 때 서양에선 물레방앗간이, 동양에선 복숭아밭이 주요 무대가 되었다.

옛날 어린시절 복숭아꽃 핀 과수원 길을 걷다보면 꽃의 향기와 아름다움에 취해 가던 길을 멈추고 깊은 심호흡을 하며 그윽한 향기를 들이마시며 낭만적 기분에 취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안평대군은 세종임금의 셋째 아들이다. 그가 어느 날 잊을 수 없는 꿈을 꾸었다. 복사꽃으로 뒤덮인 황홀한 전경을 보았던 것. 당대 최고의 화가 안견을 불러 꿈 얘기를 들려주었다. 안견의 걸작으로 이름 높은 무릉도원도는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복사꽃 낙원을 그린 작품이다.

화려한 아름다움만이 복사꽃의 전부는 아니다. 감추인 슬픈 이미지가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당나라 최대의 시인 이백은 하늘에서 귀양 온 신선으로 불린다. 어느 봄날 복사꽃이 활짝 핀 도화원에서 한바탕 잔치가 열렸다. 잔칫집 분위기와는 다르게 시인의 입에서 슬픔의 곡조가 터져 나왔다. ‘뜬 세상 꿈과 같으니 기쁨 이룸이 그 얼마랴’ 그는 촛불처럼 타다가 사라지는 인생무상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봄꽃이 만개하던 날, 시인이 인생의 허무를 강하게 느낀 이유는 무얼까. 송나라의 위대한 문인 소동파의 글을 보자. ‘인생은 봄날의 꿈이 끝나 흔적 없음과 같다’ 복사꽃의 아름다움에서 인생의 허무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었던 모양이다. 그 순간의 깨달음이 기쁨의 술잔을 슬픔의 눈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복사꽃은 아름답지만 허무한 꽃이기도 하다. 우리들 인생을 지독히도 닮았다. 이 같은 시각은 성경에서도 엿볼수 있다.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시편 103장 15~16절’

만화방초 엉기어 향기 풍기며 꽃을 피우듯이 지금 4월의 봄은 글자 그대로 꽃동산, 꽃동네를 이루듯 아름다운 계절의 극치를 이루는 때이다. 온 천지산과 들엔 이름 모를 초목들이 잎을 피워내고 산야엔 봄꽃들이 한창이다.

산에는 산 목련꽃, 산 벚꽃, 진달래 등이 연두색 신록과 어우러져 한폭의 수채화처럼 수놓고, 들에는 자세히 봐야 예쁜 별꽃, 민들레꽃이 피어있고, 오래봐야 사랑스런 라일락꽃, 수선화, 튜율립 꽃이 피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벚꽃이 지고나면 복사꽃이 핀다. 청마 유치환의 시처럼 ‘열여덟 아가씨의 풋마음 같은 샛빨간 순정의 봉오리가 너무나 인상적이고 설렘을 주는 꽃이다’.

그 옛날 내가 어릴적에 살던 내고향 마을은 이맘때 봄이 되면 집집마다, 동네골목길 담 넘어 뒤안길에는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그리움을 가득 끌어안고 만개한 봄이 절정을 이루어 화사하고 향기롭다. 느닷없이 만나는 꽃도 아닌데 해마다 그 꽃은 처음인 것처럼 가슴을 두드리고, 흐드러져 만발해도 헤프지 않고 오히려 부끄러워 발그레 양볼을 붉힌다. 아무 취향도 없는 벚꽃처럼 요란스럽게 피어 지지도 않고, 봄을 한껏 풍성하게 물들이는 복사꽃 향기로 나에게 가장 예쁜 봄날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복사꽃들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고혹하다. 이렇게 아름답게 피어난 봄꽃들은 어느것 모두가 갑자기 피는 꽃은 없다. 계절의 순환에 따라서 저절로 꽃이 피고 지는 것 같지만, 한송이 꽃이 피기 까지는 참고 견디어온 숱한 세월이 묻어있다. 혹독한 추위와 더위, 모진 비바람, 타는 듯 한 가뭄 같은 악조건 속에 꿋꿋하게 버텨온 풀과 나무들만이 꽃과 잎으로 웃을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긴긴 기다림속에 피어나는 봄꽃은 눈부시게 화려하다. 나에게 복사꽃은 봄바람에 흩날리는 연분홍 치마다. 꽃은 기다리지 않아도 피고,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홀로 피어난다. 새벽 찬 공기에 꽃 몸살을 할지라도 시리도록 청초한 복사꽃이다.

잘 알다시피 복사꽃은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을 뜻한다. 복사꽃이 만발한 곳, 그곳이 파라다이스다. 삼국지의 세 장수가 의형제를 맺은 도원결의도 바로 복사꽃 만발한 밭이었다.

복사꽃은 ‘희망’ 이다. 도연명이 미지의 땅에서 희망을 보았고, 유비, 관우, 장비 세 의형제가 미래를 향한 희망을 약속했듯, 이 복사꽃의 진정한 의미는 더 나은 미래로의 나아감 이라 할 수도 있겠다. 복사꽃이 만발할 때 우리가 꿈꾸는 희망의 미래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아야 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현실을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한다.

화락춘잉재(花落春仍在), 청나라 말기 “유월”의 오언시 첫머리다. ‘꽃은 떨어져도 봄은 그대로 있다’의 시구(詩句)는 실패하고 좌절에 빠진 모든 사람들은 다시 새 출발의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항상 있다는 소중한 가르침이다.

4월의 봄이 무르익어 가는 이 시절, 복사꽃 만발한 내고향 나의 집의 옛 모습들이 활동사진의 필름처럼 머리속에 서 사라지지 않는다. 추억에 취하고, 향기에 취해서 나는 지금 복사꽃 그늘 아래 너브러져 누워 있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04/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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