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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렬칼럼> 떡볶이의 맛과 그 유래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귀가할 때는 피곤하여 집에서 저녁 먹기가 번거로워 나는 종종 집사람과 함께 가까운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 갈 때가 많다. 음식을 가려먹는 까다로운 식성이 아니라서 나는 어느 나라 음식이건 별로 부담을 갖지 않고 즐겨 먹는 편인데 주로 양식과 한식을 많이 먹는 편이다. 한국식당에 들르면 나의 집사람은 메인

<김현철칼럼> 내가 본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의 옛 모습 ( 12 ) 

<김현철칼럼> 내가 본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의 옛 모습 ( 12 ) 가짜 명예박사가 된 순진한(?) 대통령 영부인 다음 날 필자는 플로리다주 교육부에 연락해서 취재 중임을 밝히고 주정부에 등록된 이 신학대학교의 설립 때부터 현재까지의 임직원 및 학생 현황, 교육 내용 등을 복사해 주도록 요청해서 며칠 후부터 자료를 받아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이 작업에는 이 대학교(?) 창립자인 목사님이

<김현철칼럼> 박정희의 승은 입은 2백여 여인들

박정희의 승은 입은 2백여 여인들 1960년대 후반까지 영화 두 편에 주연 여배우로 출연, 한국 영화의 톱스타로서 앞날이 촉망되던 미모의 영화배우(서울 명문대 출신)가 당시 결혼 1년 만에 첫아들까지 얻는 등 행복한 신혼생활로 동료 선후배 배우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운명의 여신은 이 여인의 행복에 샘이 났던지 행복한 이 가정에 살살 바람을 불어넣었다. 어느

<김명렬칼럼> 봄의 전령, 3월을 맞으며………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3월은 그레고리력에서 한해의 3번째 달이며 31일까지 있다. 우리가 살았던 조국 한국에서는 3월이 되면서 날씨가 풀리기 때문에 대체로 이달을 봄의 시작으로 본다. 반면에 남반구는 가을이 된다. 이달과 그 해의 11월은 항상 같은 요일로 시작된다. 3월이 되면 대개들 봄이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들을 한다. 그러나 내가 살고있는 이곳 시카고지역에는 아직은 찬바람이 불고 추위는 우리들 곁에서

<김현철칼럼> 목사님이 ‘가짜박사’ 장사꾼이라니? 

<김현철칼럼> 목사님이 ‘가짜박사’ 장사꾼이라니? ‘뉴욕 모 일간지’가 발행하는 주간지에 전면기사로 ‘주경야독으로 세계 제1호 태권도학 박사(?) 학위를 받은 아무개 관장’이라는 커다란 제목이 눈에 들어와 부제목을 봤더니 플로리다 중부 지역 도시의 태권도장 이름과 관장인 태권도 사범 이름이 눈에 들어 왔다. 필자가 처음 듣는 ‘태권도학 박사’ 제1호가 플로리다에서 배출되다니! 충분히 기사 가치가 있었다. 우선 플로리다에서 발행되는 동포신문이 모르는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10 )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10 ) 언론을 모함한 교역자 이야기 평소 이 고장의 여러 교역자 중 필자가 존경하는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금 전 교역자협의회가 있었는데 10 여 분이 모인 그 자리에서, 김발행인이 다른 교회의 소식은 3면에 조그맣게 실으면서 모 교회만은 돈을 받고 1면에 실어주는 특별대우를 하고 있다고 이 고장에서 가장 젊은 교역자 아무개가 주장했다,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 9 )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 9 ) ‘사랑’과는 거리가 먼 집단이기주의 엘에이 거주 미혼청년 두 사람이 마이애미에 사업차 왔다가 밤에 한식집에서 식사 겸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러자 텃세를 부리고 싶었던지 마이애미지역 거주 청년 4~5명이 엘에이 청년들을 밖으로 불러냈다. 그 중 약삭빠른 청년 하나는 재빨리 줄행랑을 놓았으나 고지식하고 양순한 나머지 A 청년(30)은 ‘자기가 잘 못한

<김현철칼럼>내가 본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의 옛 모습 ( 8 ) 

내가 본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의 옛 모습 ( 8 ) 미 언론도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미 소 냉전이 한창이던 1983년 9월1일 새벽, 승객 269명(한국인 105명, 대부분이 한국계인 미국인 62명, 일본인 28명, 대만 23, 필리핀 16, 홍콩 12, 캐나다 8, 태국 5, 기타 10명 등-그 중 다수의 어린이 포함)을 태우고 뉴욕을 출발, 급유를 위해 ‘앵커리지’를 거쳐서 서울로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7)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7) 왜 내가 국적을 바꿔야 해? 1982년 어는 날, 서울의 동생으로부터 모친(당시 77)께서 낙상으로 입원하셨다는 전화가 왔다. 필자가 미국 이주 후 써 온 모국 민주화를 위한 칼럼들 때문에 당시 한국정부와의 부드럽지 못한 관계였기에 전화만 자주 드렸을 뿐, 8년이 넘도록 귀국할 엄두를 못 냈으니 불효자식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별 도리가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6)

<김현철칼럼>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6) 지역 언론 무시한 공관장의 말로 한 번 혼이 난 공관장은 그 후 사적으로는 ‘8인회’ 멤버들과 친히 어울리면서도 공적인 행사에서는 한인회를 중심으로 교민 사회를 대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마이애미 공관장으로 부임하는 총영사는 선임자가 귀띔해 준 탓인지 교민사회에 단 한 건의 월권행위가 없이, 또 시시비비의 원칙을 지켜 가는 언론과 ‘불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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