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렬칼럼> 떡볶이의 맛과 그 유래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귀가할 때는 피곤하여 집에서 저녁 먹기가 번거로워 나는 종종 집사람과 함께 가까운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 갈 때가 많다.
음식을 가려먹는 까다로운 식성이 아니라서 나는 어느 나라 음식이건 별로 부담을 갖지 않고 즐겨 먹는 편인데 주로 양식과 한식을 많이 먹는 편이다. 한국식당에 들르면 나의 집사람은 메인 식사를 주문하고는 가끔 곁들여서 별식으로 떡볶이를 주문해서 먹는다.
그러나 나는 떡볶이만큼은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주문한 떡볶이는 나의 집사람이 주로 먹는 편이다. 어느 때는 떡볶이를 맛있게 많이 먹다보면 오히려 정식으로 주문한 메인요리와 음식이 반 이상이 남아서 그대로 두고 식당을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을 보고 나는 이렇게 말을 한다. ‘떡볶이가 뭐 그리 맛있다고 더 맛있는 음식은 제쳐놓고 떡볶이만 먹느냐’고 불만스럽게 투덜대곤 했다.
그러나 나의 집사람의 대답은 ‘떡볶이는 떡볶이만의 고유한 맛이 깃들여있어서 특히 여자들은 이 맛을 잊지 못해 자주 먹게 된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저녁 나의 집사람이 나에게 하는 말, ‘떡볶이를 당신은 싫어하는데 제대로 된 떡볶이 맛을 한번 맛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 와서 함께 가기로 했다.
알링톤하이츠 다운타운의 기차역근처에 있는 T 한국식당으로 나를 안내하여 그 한식집으로 들어갔다. 우선은 내가 먹을 메인 음식을 주문하고 곁들여서 떡볶이를 별식으로 주문했다. 잠시 후 테이블 위에 놓여진 떡볶이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으면서도 내 머리 속으로는 떡볶이라면 그 맛이 그 맛이고 맛이 있어봤자 오십 보 백보 사이이려니 하며 무심코 떡볶이를 혀 속으로 굴리며 입안에서 씹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른 곳의 식당에서는 떡볶이를 대개는 고추장이나 기타 양념을 넣어서 함께 무쳐서 나오는데 이집은 떡볶이를 프라이팬에 볶아서 구워낸 다음 그 위에 특별한 소스와 양념을 곁들여 무쳐서 나왔는데 그야말로 이제껏 어느 식당에서도 맛을 보지 못한 독특하고 너무나 맛있는 떡볶이가 나의 입안에서 오감(五感)을 만족시켜주고 있었다.
또한 각종 해물을 섞어 만들어 나온 떡볶이 역시 다른 식당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하고 우수한 맛의 떡볶이였다.
입안에서 아삭 아삭 씹히며 쫀득쫀득하고 담백하며 고소한 맛의 이집의 떡볶이는 그야말로 천하 일미였다. 특별히 주인인 주방장이 직접 개발하여 만들었다는 양념소스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이집만의 자랑이었다. 옆의 테이블에서 떡볶이를 먹는 외국인손님들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음식을 서브하는 웨이츠레스 아가씨에게 목청을 높여 칭찬의 말을 해 주는 것을 보았다.
떡볶이가 이제는 한국인들만 먹는 국한된 음식이 아니라 식성이 다른 외국인들에게도 맛의 즐거움과 먹는 기쁨의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국제적인 음식의 대열에 명실 공히 올라섰음을 입증해주는 가슴 뿌듯한 장면이었다.
이 떡볶이를 옛날 나의 어린 시절에는 나의 어머니께서 음력 설 때 방앗간에서 빗어온 가래떡을 손가락 두 마디 정도씩 잘라서 석쇠에 올려놓고 구어서 조청을 발라 먹으면 정말로 맛이 좋았다.
때로는 냄비에 가래떡을 잘라 넣고 총각무를 작게 썰어 넣어 참기름과 함께 비벼먹으면 너무나 맛이 좋았는데 아마 이것이 오늘날의 떡볶이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맛있게 먹었든 그 가래떡무침(구이)이 이곳 미국에 와서는 나의 입맛이 변했는지? 아니면 옛날 나의 어머님께서 만들어주셨던 그 떡볶이 맛이 아니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의 머릿속에서는 지워져서 관심 밖의 음식으로 소외되어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서버브 알링톤하이츠 다운타운T 식당의 떡볶이를 맛보고 떡볶이의 인식이 새로워졌다.
옛날 내가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고교진학을 위해 서울로 유학을 왔는데 내가 사는 집은 성동구 상왕십리였다. 어느 날 우연히 친구의 손에 이끌리어 중앙시장 근처 신당동의 어느 떡볶이 집에 들러서 떡볶이를 처음으로 사 먹게 되었는데 그 떡볶이 맛이 너무나 맛이 있어서 지금도 잊혀 지지 않고 있다. 그때 그 시절에는 그 떡볶이가 어떤 떡볶이인줄을 몰랐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 아마도 그 떡볶이집이 노래에도 나오는 그 유명한 신당동 떡볶이집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신당동 떡볶이집하면 떡볶이의 원조 마복림 할머니가 만든 떡볶이로 유명한 집이었는데, 여기에 그분의 유명한 떡볶이에 대한 내력과 이야기를 소개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새콤달콤한 맛깔스러운 빨간 양념이 잔뜩 묻은 떡볶이, 학창시절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분식집 벽에다 낙서를 하면서 떡볶이를 먹었던 추억이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의 학창시절 맛의 친구였던 이 떡볶이……그런데 이 떡볶이는 대체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떡볶이의 원조는 마복림 할머니라고 한다. 이 마복림 할머니는 한 C.F에서 “장맛은 몰러, 며느리도 몰러” 하는 구수한 멘트로 인기몰이를 한분이다. 대개 이분을 신당동 떡볶이의 원조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이분은 신당동떡볶이뿐만 아니라 떡볶이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물론 아득한 옛날부터 궁중떡볶이 등이 있지만 쇠고기 육수에 버섯, 고기 등을 넣어 간장으로 양념한 궁중떡볶이는 빨갛게 고추장양념에 버무린 오늘날의 떡볶이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그렇다면 마복림 할머니는 어떻게 빨간 고추장떡볶이를 요리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즐겨먹는 요리의 유래가 그러하듯이 마복림 할머니가 떡볶이를 발명하게 된 것도 예기치 않은 사소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마복림 할머니의 어린 시절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되는 무렵이었다. 그날 아버지께서 자장면을 사주겠다고 하여서 할머니와 할머니동생이 신나서 쫓아 나섰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시키고 나니 할머니는 늘 배를 곯는 동생과 아버지 생각도 않고서 제몫을 아구아구 먹어버릴 수가 없었다. 자신은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며 동생과 아버지에게 어서 먹으라고 하던 할머니는 그러나 어느 순간 배고픔을 참을 수가 없어서 자장면그릇 옆에 있는 가래떡 한개를 집어 들었다. (예전에는 중국집에 가면 덤으로 이렇게 가래떡이 늘 나왔다)
그런데 너무 배가 고팠던 탓일까. 떡을 집어 드는 순간 어린 마복림 할머니의 손이 바르르 떨렸고 그 바람에 가래떡은 아버지와 동생이 먹고 있던 자장면그릇에 떨어지고 말았다.
배가 고프지 않다면서 커다란 가래떡을 집어든 것이 멋쩍어 마복림 할머니는 그저 씩 웃으며 자장면그릇에 떨어진 떡을 다시 잽싸게 집어 들었는데, 이게 웬일일까?….. 자장면 소스에 빠진 가래떡이 너무나 맛이 있었다. 그 후 음식점을 차리게 된 할머니는 어렸을 적에 먹었던 그 맛을 기억해냈고, 처음에는 자장양념을 해서 팔던 떡볶이에 고추장양념도 하고 그밖에 며느리도 모르는 할머니만의 독특한 양념을 개발해 나가는 과정에서 오늘날의 떡볶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만약, 이 할머니가 어렸을 때 자장그릇에 가래떡을 떨어뜨리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거리마다 사람들의 입맛을 잡아끄는 새빨간 떡볶이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글을 읽으시는 독자 분들께서도 시간이 나서 식당에 들리실 경우 곁들여서 떡볶이를 주문해 드셔보시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이 든다. 떡볶이가 생겨난 유래를 생각하며……………!  myongyul@gmail.com <871/0313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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