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 특별기고> 광복절의 추억,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
최근의 현실을 보면,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우경화가 심한 아베정권이 들어선 이후 더욱더 노골적으로 한국을 비롯한 중국, 동남아국 등 주변 국과의 계속적인 마찰을 빚고 있는 현상이며, 우리나라와는 끊임없는 독도문제와, 일본의 역사학계에서도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는 역사왜곡 교과서까지 등장하여 한국인들의 신경을 자극시키고 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36년을 비롯한 각종 수탈과 만행으로 한국에게는 막대한 재산 및 물질적인 손실을 끼치고, 그와 더불어 인적인 살상 피해와 위안부, 성노예문제 등의 각종 첨예한 문제들을 외면하고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
저들이 저렇게 하는 이유의 내면에는 한국에 대한 손해배상과 관련된 정서적이고 물질적인 손해 때문인 듯한데, 일본정부가 과거에는 한창 풍요로운 경제를 누렸던 때를 지나 이제는 그 경기가 한풀 꺾이면서 일본 내에서도‘우리도 먹고살기 힘든데 다른 곳까지 사정을 봐주면 우리만 손해다’라는 의식이 사회의 저변 곳곳에 깔려있는 듯하다. 물론 올바른 양심적인 인사들도 있긴 하지만……. 일본정부로서는 독도문제를 자꾸 거론하면서 국제 분쟁화 시키는 전략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같은 2차 대전 전범국가인 독일은 철저한 자기반성이 진행되었고 프랑스 같은 곳도 나치에 부역한 사람은 공소시효가 없이 그 죄상이 드러날 때마다 처벌을 가했지만, 유독 우리나라만은 일제시대 정권에 빌붙어서 호의호식하던 부역자들이 혼란한 현대사의 와중에서 다시 요직을 맡고 떵떵거리며 잘 살았다. 그러나 그에 반해 독립투사 후손들은 당시의 여파로 풍비 박살난 집안을 추스르지 못하고 갖은 고통을 겪으며 어렵게 살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오늘은 조국의 광복 72주년이 되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경건한 마음으로 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하여 하나님의 가호와 축복의 기도를 드렸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각종 경축행사로 이날을 기념하는 예식과 축하 공연을 펼쳤다. 오늘이 일제에서 해방된 지 72주년이 되었지만, 지금의 우리나라는 그렇게 평안치가 않고 현실의 앞에는 큰 숙제가 가로놓여있다. 미국과 북한의 강대강 대결로 한반도의 정세가 한치의 앞을 내다볼 수가 없는 안개국면에 놓여있다.
지난 8월10일, 나는 AMC극장에 가서‘군함도’영화를 관람했다. 영화의 줄거리내용은, 일제 강점시대 일본재벌 탄광의 한국인 강제 징용실태를 극화한 작품으로 일본의 하시마 섬이 배경이다. 하시마섬은 군함모양을 닮았다하여 군함도라고 불리고 있다.
여기에 강제로 징용된 조선인 400여명이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애처롭고 가슴 아픈 사연의 이야기들이 소재로 다뤄졌다. 크기가 400m에 폭이 140m, 합쳐서 면적은 6헥타르가 채 안 되는 작은 섬이다. 이 섬에는 과거에 5천명이 넘는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고 전성기에는 헥타르당 835명이라는 세계최대의 인구밀도를 기록하는 등 많은 조선인들이 이곳에 강제로 끌려와 강제 징용으로 지옥 같은 노동으로 혹사를 당했다. 그러나 석유 때문에 석탄이 도태되면서 1970년대 이후 에너지정책의 영향을 받아 1974년 1월 15일에 폐광되었다. 폐광당시 2천명으로 줄어있던 주민은 3개월 뒤 4월 20일에는 모두가 섬을 떠났다.
나는 외딴섬 군함도를 보면서 얼핏 한국의 외딴섬 독도가 불현듯 생각났다. 군함도와 독도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있다. 하나의 섬은 소유권이 일본에 속해있고 또 하나의 섬 독도는 그 소유권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엄연한 대한민국 국적의 소유권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일본은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채 자기네나라 땅이라고 억지주장을 펴며 우겨대고 있다. 전근대 독도사(史)는 보통 울릉도에 묻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독도를 발견한 것은 적어도 신석기시대부터 거주하던 울릉도 주민들이 처음 한 것으로 추정된다. 울릉도에서 독도는 날이 밝으면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 이러한 섬을 울릉도 주민들이 발견하지 못했을리 없고, 삼국사기에 이사부가 현 울릉도까지 130Km를 대규모 인력을 이끌고 정벌한 사실에 근거하여 당시 울릉도에서 90Km정도 떨어진 독도로 항해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과거의 오랜 역사적사실속에서도 독도는 엄연한 우리의 땅으로 속해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러한 사실을 외면 및 왜곡한 채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자기네나라 땅이라고 억지주장을 펴며 분쟁을 벌이고 있다.
독도분쟁이란, 과거부터 독도의 주인이었던 대한민국과 탐욕에 빠져 독도의 각 이권을 빼앗으려는 일본의 근거 없고 모순되는 이유를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발생한 영토분쟁을 말한다. 대한민국은 과거 일본의 자료들도 독도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인정하였으므로 독도는 확실히 대한민국의 땅으로 독도 문제에 대한 영토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분쟁이라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일본은 끊임없이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교과서에까지 왜곡 날조하여 실어 역사적 사실을 그릇되게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 더불어 언론과 일본정부는 한술 더 떠서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 꼴들이 가관이다. 이러한 것을 보면 정말로 분통터지고 참을 수가 없다. 이러한 억지주장은 오래전 과거부터 지금의 현실까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전 국민들이 이에 반대하고 투쟁을 벌이며 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독도는 엄연하고 분명한 대한민국의 땅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전, 그때도 역시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겨대는 몰염치가 특히 극에 달한 때였다. 한국의 전국 방방곳곳에서는 관공서를 비롯하여, 학교, 직장, 사회단체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반대와 규탄 국민 총궐기대회가 횃불처럼 타올랐다. 그 당시 나는 시카고에서 어느 사회단체의 회장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정기적인 월별 모임에서 수백명의 회원들 앞에서 독도망언 규탄대회를 연적이 있었다. 그리고 분통이 터져서 한국의 독도를 방문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본에 가까운 독도를 찾아가 항의 겸 분풀이,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분명하고 사실적인 내 나라의 땅 독도에 가서, 그 땅에 서서 우리의 땅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주먹이라도 흔들며‘개 새끼들’이라고 욕이라도 실컷 해주고 싶어서였다.
2005년 8월10일, 말복을 전후한 한국의 날씨는 찜통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시카고에서 독도까지는 참으로 멀고, 독도로 가는 뱃길은 참으로 험난했다. 서울에서 새벽 먼동이 트기 전에 출발하여 강원도 묵호항에 도착하니 7시30분이되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나니 9시에 울릉도로 출발하는 페리호 출항시간이 가까웠다. 미리 예약한 승선티켓을 보이고, 여권을 보여 신분을 확인시키고 배에 올랐다. 한 여름철이라 그런지 각종 여행이나 관광을 위해 울릉도를 찾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320명 정원이 꽉차있었다. 배는 정시에 출항했다. 바다의 물결은 그다지 높지 않았고, 바람도 순풍이었다. 한참을 달려 육지가 전혀 안 보이는 지점에 다달았을 때 갑자기 하늘은 시꺼먼 구름으로 뒤덮였고 곧이어 세찬 바람을 동반한 폭풍우가 쏟아졌다. 덩치가 크다고 생각한 페리호는 거센 풍랑에 보잘것없는 일엽편주에 지나지 않는 보트로, 파도에 휩쓸려 이리 밀리고 저리 쏠리며 제대로 앞으로 나가지를 못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배가 너무나 요동을 치다보니 에어컨 시스템이 고장나버렸다. 선내의 방송은 절대로 위험하니 창문을 열면 안 된다고 경고방송을 한다. 날씨는 무더운데 실내는 여러 사람들의 체온과 입김으로 온도가 더 올라가 마치 찜질방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선내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배 멀미로 사색이 되어 이리 딩굴고 저리 쳐박히며 난리들이다. 옆에 사람이 바닥에 토해놓은 토설물위에 좌석에 앉아있던 사람이 그대로 튕겨져 곤두박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아침에 먹은 모든 음식물들이 창자 속 깊이 있는 것까지 모두가 목구멍을 통해 밖으로 꾸역꾸역 토해 나왔다. 지옥이 따로 없다. 글자그대로 생지옥이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성싶을 정도로 참기가 힘들고 고통스럽다. 평생 이러한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배멀미는 처음이다. 페리호 회사직원 안내인들만이 몸을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면서 열심히 쓰레기통과 비닐봉지를 나눠주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승객들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아예 선내 바닥에 누워 뻗어버렸다. 나도 정신이 몽롱하여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중이다. 옛날 민주화 투쟁시절에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고 한 말이 있다. 아비규환, 생지옥의 난리 속에서도 페리호는 힘들게 어렵게 풍랑을 헤치고 4시간 40여분 만에 울릉도에 도착했다. 평소에는 3시간 반이면 충분히 도착을 하는데, 오늘은 거센 풍랑을 만나 1시간이상 도착시간이 늦어졌다. ‘승객여러분 그동안 배멀미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러나 일단 배에서 내려 땅을 밟고 흙냄새 맡으면 금방 괜찮아 질 테니 걱정 마십시오. 좋은 여행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울릉도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승객들은 지치고 어지러운 몸을 추스리며 밝은 얼굴로 배에서 내렸다.
죽을힘을 다해 간신히 어정어정 휘청대며 미리 예약한 바닷가 호텔로 들어가서 그대로 뻗어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집사람이 특별 주문하여 끓여온 전복죽과 해산물이 담뿍 담긴 죽을 먹으라고 권한다. 죽을 먹을 기운도 없지만 기를 쓰고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시계를 보니 저녁때가 다 되었다. 원래의 계획은 울릉도에 내려 2시간정도 쉬었다가 곧바로 독도로 향하는 페리호를 갈아타고 독도를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심한 배 멀미로 모든 스케줄이 취소되었다. 그날 저녁 모든 여행 스케쥴을 취소한 채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일찍 독도로 향하는 페리호를 탔다. 겁이 나서 약국에서 미리 배멀미 약을 사먹었다. 하늘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맑고 청명하며 바닷물도 잔잔하다.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으면 독도는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독도에 갈 수 있는 날은 일 년 중 그리 많지가 않다고 했다.
독도 현지에 도착하니 그곳을 경비하는 경찰들이 페리호의 입항을 도와주고 방문객들을 환영하며 반갑게 맞아준다. 나는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독도관광은 뒤로한 채 저쪽 한켠의 넓은 광장에서 서울에서부터 준비해간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이라고 쓴 프랭카드를 펼쳐들었다 이곳에 온 목적이 바로 이러기 위해서 왔기 때문이다. 나의 이러한 행동과 모습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주위의 수많은 관광객들이 약속이라도 한듯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수십 명의 군중들 앞에 서서 프랭카드를 흔들며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이라고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앞에 서있던 군들도 한 마음이 되어 나를 따라서 구호를 외쳤다. 어느 사람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일본쪽을 향해 욕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다. ‘일본의 망언을 규탄한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 대한민국 만세, 만세 만세’ 우렁찬 구호와 함성이 메아리가 되어 멀리멀리 동쪽에 있는 일본땅을 향하여 울려 퍼져가고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 사전에 계획과 약속도 없었는데, 이렇게 대한민국을 지키는 호국과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정신에는 너와 나를 가리지 않고 합심하여 일본을 규탄하는 항의 투쟁에 동참하는 모습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가슴이 뭉클하며 보람스럽다.
나는 12년전 그날의 추억과 감격어린 일들을 잊을 수가 없어 오늘, 8월 15일을 맞아 그날의 회상을 되살려 글을 올렸다. 2005년 8월15일은 나의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감격스럽고 보람된 날이었다. 독도는 분명히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 땅이다. 쪽바리 일본인들은 과거를 반성하고 위안부와 강제 징병, 침략, 수탈, 등의 악행에 진심어린 사과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망언을 더 이상 하지말기를 강력히 경고하며 촉구한다. 독도가 자기네 나라 땅이라면 ,대마도는 엄연한 우리나라 땅이다.
*아래 사진들은, 일본의 망언과 과거사 왜곡을 규탄하기위하여 10여 년 전에 독도에 가서 항의 시위를 벌이는 나의 모습을 참고로 올렸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심에 입각해 글을 썼다 독자들의 해량을 바랍니다.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 1084/2017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