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일상의 휴식과 삶

<김명열칼럼>  일상의 휴식과 삶

 

내가 잘 알고 가까이 지내고 있는 지인 L씨, 그는 시카고에서 세탁공장을 겸한 드라이크리너를 운영하고 있다.

공장 하나에 드랍엎 스토어 세군데를 곁들여 경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고 보니 그는 언제나 쉴 틈의 여유 없이 하루 15시간이상 무척 바쁘게 일하며 하루를 보낸다. 공장의 기계를 돌리기전 새벽 5시경에 나와 보일러를 켜고 그날의 일들을 준비한다.

6시면 종업원들이 출근하여 일을 시작하고 7시가 되면 가게 문을 열고 손님들을 받는다. 세군데의 세탁소에서 거두어 온 세탁물들을 아침 일찍부터 세탁을 시작하여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일을 마친다. 세탁기의 작동은 멈췄지만 뒷일이 너무나 많다. 세군데의 가게일과 공장일을 챙기며 일을 하다보면 자기의 부인이나 본인 모두가 저녁때가 되면 온 몸이 피곤하고 기운이 빠져서 파 김치가 된다. L 씨의 말에 의하면, 자기는 아침을 점심에 먹고, 점심은 저녁에 먹게되며, 너무 바쁘다보니 화장실 가는 것 조차 시간에 쪼들려 참고서 일을 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최근에는 전립선에 이상이 생겨서 병원에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항상 그의 하는 말이 단 며칠이라도 푸~욱 쉬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에게는 휴식과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나 현실의 환경이 여의치 못하니 휴식은 그림의 떡이다. 그의 삶이 멍들어가고 있는 사실을 그는 모르고 사는 것 같다.

우리들 인간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두가지 요소는 일과 휴식이다. 항상 늘 일만하고 살수도 없고, 늘 언제나 휴식만을 취하면서 살수도 없다. 휴식 없는 삶도, 일없는 삶도 진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잘 산다는 것은 일과 휴식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말한다. 그런데 인간에게 휴식이 필요한 것은 육체뿐만이 아니다. 정신 혹은 영혼도 휴식이 필요하다. 사실상 현대인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신적인 휴식, 혹은 영적인 휴식을 가질 능력이 없다는데 있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휴식은 또 다른 노동이며, 정신의 끊임없는 혹사는 스트레스의 주범이고 스트레스는 온갖 종류의 병들의 원인이 된다. 특히 한국인은 암 사망률과 중년의 돌연사가 OECD국가중에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이는 결국 한국인이 정신적인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인 상황이 꼭 현대사회의 모습인 것만은 아닌듯 하다. ‘성자는 황야로 도망가고 예술가는 이상속에 숨는다’라는 옛 금언은 이러한 상황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리라 하겠다. 상식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휴식이란 새로운 행위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보이겠지만, 어떤 관점에서 보면 행위의 목적이 곧 휴식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람들은 휴식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을 하지 않으면 휴식도 없다는 것이며, 진정 잘 살지 못한다면 결코 진정한 휴식이 주어질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서양 영성의 아버지라 일컫는 아우구스티누스는 ‘내 영혼이 신의 품에 안기기 전 까지는 진정한 휴식이란 없다’고 하였다. 즉 인생의 마지막 목적이 곧 신의 품안에서 휴식하는 것이란 말이다.

종교의 목적이 세파에 찌든 영혼을 쉬게 하고, 궁극적으로 영혼을 신의 품안에서 혹은 해탈의 장소에서 안전한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것이라면, 여행 또한 영혼에게 휴식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가 궁극적인 휴식을 지향한다면 여행은 삶 안에서, 여정의 과정 안에서 잠정적인 휴식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할 수 없다. 나 스스로 찾고, 선택하며 가는 길, 그런 길 위에서 가끔씩 휴식의 순간이 찾아온다. 현실에 함몰되지 않고 조용히 앉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시간, 휴식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가끔은 고요히 홀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 그런 정지와 침묵의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세상을 살아가며 사람들은 대개 모두가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원하고 추구한다. 그러나 고통과 불안, 어려움이 없는 평안하고 안락하기만한 삶이 가능하며 그러한 삶이 좋기만 한 것일까? 우리들 인생 과정에 언제나 평안하고 안락한 삶은 존재하지도 않지만,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그러한 삶이 꼭 좋다고 만도 할 수 없다. 물론 일시적으로는 그런 삶이 필요할 수 있다. 특히 오랫동안의 수고와 긴장 뒤에는 일정기간의 휴식이 필요할것이다. 지친 심신을 가다듬고 재 충전도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휴식이 오래 계속된다면 지루하고 권태로워 지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휴식은 그 다음에 이어질 새로운 삶 즉 새로운 출발과 도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그 자체로서 좋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특히 활력이 있는 삶을 위해서는 휴식보다는 오히려 적당한 긴장이 더 필요하다. 신의 섭리에 의해 우리들의 삶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그것이 삶의 원리이다. 그러나 사람들 가운데는 그러한 삶의 원리를 이해하고 어려움이나 위험을 도전으로 받아들여 맞서기 보다는 그에 위축되어 의기소침해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삶에서 오는 긴장을 적당한 활력소로 활용하기는 커녕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고통을 받는다. 그 고통이 쌓이고 심해지면 우울해지고 삶을 회의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죽음이 안식이라고 생각하고, 고통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영원한 안식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스스로 목숨을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삶에 맞설 용기가 부족한 것 일뿐 아니라 아주 잘못된 생각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안락한것 만으로만 설계되지 않았으며, 죽음은 안식이 아니라 단지 삶과 의식의 종말이며 무의식 즉 무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일을 중요시하고 일만 열심히 하는 일벌레 같은 사람들은 휴식의 중요성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사람은 심한경우 일속에서 휴식을 얻는다는 말도 한다. 물론 틀리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보다 진취적이고 자신의 건강이나 삶의 윤택성을 위해서도 우리는 휴식이 필요하다. 바쁘게 일하는 사람에게 휴식은 어쩌면 사치와 시간 낭비이고 그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거나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언제나 일에 집중하는 식으로는 더 낳은 결과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그보다는 스트레스, 불안감, 우울증과 같은 현상을 촉진시킬 뿐이다. 휴식의 장점을 꼽으라면 이렇다. 우선 휴식은 창의성을 증가시킨다. 그리고 판단력과 결단력이 높아진다. 삶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원하는 목표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 머릿속이 가득차 있는 상태라면 모든 선택지를 잘 분석하고 최선의 정책을 결정하기가 힘들어진다. 아울러 휴식을 취하면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감소시킨다. 잘 쉬면 행동력이 줄어든다.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특히 만성적일 경우 몸에 좋지 않은 코르티졸 분비가 증가하게 된다. 두통이 생기고, 면역력이 저하되며, 소화불량, 만성피로는 이러한 원인으로 인한 결과중의 하나이다.

휴식은 행복을 가져다준다. 부정적인 사고가 머리에서 사라질 때 행복호르몬으로 알려진 엔돌핀이 분비된다. 이로 인해 주변 상황에 대해 행복을 느끼고 균형 잡히고 평화로운 삶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이 외에도 휴식의 장점은 많이 있다. 최근 몇년간 세계적으로 보면 국내외의 많은 기업들은 ‘비상경영체제’에 몰입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로벌 경제속에서 경쟁이 심화되며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며 재 충전중이다. 여가는 사치라고 말하는 워커홀릭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의 왕이라고 불리는 포드사의 헨리 포드는 ‘일만 알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처럼 매우 위험하다’고 말하며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상의 수레바퀴가 잘 굴러 가도록 잘 쉬는 방법을 알아두면 자신의 삶이 훨씬 더 여유롭고 풍요로울 수 있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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