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옛날, 나의 고향 겨울 이야기

<김명열칼럼>  옛날, 나의 고향 겨울 이야기

음력으로는 동짓달, 섣달, 정월, 이월을 겨울로 규정짓고 있다. 음력 정월 초하루, 설이 지난 2월 12일이니 지금도 음력으로 치면 정월달 겨울이다. 겨울철이 되면 추위와 얼음, 눈, 세찬 바람 등이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옛날 내고향의 시골, 겨울의 이맘때면 농한기라고 하여 특별한 일이 없이 그저 남정네들은 산에가서 나무를 한짐씩 해오고 아낙네들은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틈틈이 찢어진 솜이불을 수선하고 버선이나 양말을 꿰매며 틈나는 대로 시래기를 삶거나 묵을 쑤어 식구들의 먹거리를 준비한다.

밤에는 석유등잔불 아래서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고, 어느때는 추위를 피해 지붕 추녀밑에 굴을 파고 잠을자고 있는 참새를 손전등(후레쉬 라잍)을 비춰 존재를 확인하고 잡아내기고 한다. 그렇게 잡은 참새를 구어 먹는 맛이야말로 둘이 먹다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이 기가 막히게 좋다. 전해오는 재미난 말로, 참새가 황소 등에 올라앉아서 하는 말이 “네살 열근보다 내살 한점이 열배나 더 맛있다”고 놀리며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화롯불에 구어 먹는 참새고기는 정말로 맛있다. 도심에서 파는 참새구이는 신발 벗고 쫓아와도 그 맛에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어느 때는 추녀 밑에 잠들어있는 참새 굴을 뒤지다가 물컹 하고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 꺼내다보면 커다란 구렁이가 손에 잡혀 끌려나오기도 한다. 그러면 구렁이를 잡은 사람은 기겁을 하고 소리치며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소동도 일어난다. 이 모두가 사라져간 아득한 시골 나의고향 옛날이야기다.

지금은 눈 씻고 봐도 시골의 농촌에서 초가집은 구경할 수가 없다. 대신 현대식 양옥이나 기와를 얹은 절충식 기와집, 또는 스레이트를 얹은, 양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식 가옥도 아닌 어중간한 편의 시설물인 주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서 도회지로 올라와 시골의 고향을 두고 아련한 그리움에 젖어 살아간다고 한다. 요즈음 시골에는 전통의 한옥집이나 초가집은 사라지고 이층 양옥집이나 현대식 가옥으로 개조되어 도시의 주택들과 별반 차이 없는 모습으로 탈바꿈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옛 시절처럼 추운 겨울날 추위에 덜덜 떨며 엉덩이 내놓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봐야 하는 번거로움도 사라지고, 어두운 밤이면 엄마나 형, 누나, 언니를 졸라서 뒷간 문앞에 서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게 할 필요도 없어지게 됐다.

저녁이면 밥솥에 장작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쇠죽 쑤어 아궁이 깊숙이 군불 지펴놓으면 새벽녘까지 따듯했던 온돌 방…… 그러나 지금은 기름이나 가스보일러로 바뀌어 스위치 하나면 온 종일 따듯하게 보낼 수 있게 되어버렸으니…….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했고 사람 살기도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초가지붕 처마 밑에는 항상 옥수수나 조, 수수씨가 내년을 위해 걸려있고, 짚으로 엮어 꼬여 맨 마늘이 주렁주렁 바람에 흔들리고, 가마솥에 콩을 푹 삶아내 절구에 찧어 만든 메주를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 짚으로 엮어 서까래 밑에 매달아 놓은 메주도 한 몫을 한다. 그리고 또아리 꼬듯 엮어 찬바람에 흔들리는 무 시래기도 겨울 햇살에 익어가고 잘 말라가고 있다. 이 마른 시래기를 잘 씻어서 온 가족이 좋아하는 된장국을 끓여 먹기 위해 펄펄 끓는 무쇠 솥에 넣고 푸~욱 삶고 난후 바가지로 퍼서 대접에 담아 보리 쌀이 섞인 밥그릇에서 숟가락으로 가득가득 퍼담아 말아먹는 그 맛은 정말로 별미, 바로 그 맛이다.

창호지로 바른 창문밖에는 눈보라, 찬바람이 쌩쌩 불고, 한낮 햇볕에 눈이 녹아 지붕에서 흘러내린 눈물은 어느새 얼어붙어서 지붕 처마 밑에 장대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고드름이 돼버린다. “고드름 고드름 수정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놓아요…..”라는 동요가 있듯이, 그 고드름은 개구쟁이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이 되고 칼싸움 전쟁놀이의 단골 메뉴이며, 목마를 때는 그것을 따서 한입 깨어 물고 아드득 아드득 아이스케키 먹듯이 깨물어 먹기도 하였다.

요즈음 도시나 지방을 막론하고 현대식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보니 추운겨울이 되어 눈이 오고 얼음이 얼어서 지붕의 처마밑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고드름을 보기가 어렵게 됐다고 한다. 더군다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곳 플로리다는 고드름이라는 단어조차 거론하기가 쑥스러운 이름이 되었다. 옛날 초가집 추녀 밑에 매달린 고드름은 옛 추억을 자극해준다. 마치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처럼 길거나 짧게 줄지어 매달려 있어 연주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머니나 누나가 떠준 털장갑도 눈을 뭉쳐 가지고 놀다보면 날이 추워서 어느새 꽁꽁 얼어붙곤 했다. 꽁꽁 언 장갑 낀 손을 뜨거운 입김으로 호호 불면서 추녀밑의 고드름을 따서 입에 넣고 먹다보면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차겁고 시려웠지만 그때는 그렇게 고드름 따 먹는 재미가 너무나 좋았었다. 논빼미 얼음판위에서 팽이치고 썰매타고 논둑 위에 불을 놓아 얼어붙은 바지가랭이의 얼음을 녹이며 바쁘게 하루를 친구들과 놀다보면 어느새 짧은 겨울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이내 어두운 밤이 찾아오곤 했다.

기나긴 시골농촌의 겨울밤은 사색의 밤이기도 하고, 밤늦도록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는 바쁘디 바쁜 겨울밤이기도 했지만, 아낙네들은 구멍난 양말을 바늘로 수선하고 찢어진 솜바지를 헝겊을 대어 꿰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가족들을 위한 특별한 먹거리를 준비하기도 했다. 먹을거리가 풍족한 지금과는 달리 비교할 수도 없지만, 그 시절 그때의 농촌시골의 먹을거리는 그런대로 풍부했다. 아랫목보다는 서늘한 윗목이나 윗방에는 고구마를 담아놓은 큰 가마니가 있어서 언제든지 꺼내다 깎아먹거나 화로 불에 구어 먹고 솥에다 쪄 먹을 수 있었다. 특히 깊고 깊은 겨울의 늦은 밤 찐 고구마와 함께 먹는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동치미와 국물 맛은 그 어느 것과도 비길데없이 시원스럽게 목을 추겨주며 입맛을 부추겨주었다. 팥죽을 쑤어 찬바람 부는 밖에 두었다가 먹는 맛도 그만이었다. 자주 꺼내다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방이나 장광에 보관했지만, 온도에 민감하고 잘 말라서 보관하기 어려운 것들은 텃밭에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어 보관했다. 땅을 파서 만든 구덩이에 나뭇가지나 볏짚으로 덮어서 빈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고구마나 감자, 배추, 무 등의 얼거나 마르기 쉬운 작물들을 넣고 흙을 덮은 뒤 짚더미를 쌓아서 보관했다. 지금도 배추를 실내에서 보관할 때는 신문지에 싸서 보관을 하는데 보충 설명을 드린다면 이와 같은 이치이다.

꺼내 먹을 때는 구덩이 한쪽에 구멍을 내고 짚으로 뚜껑을 만들어 막아놨다가 꺼내다 먹곤 했다. 특히 고구마나 감자 등은 겨우내 얼지 않도록 잘 보관하여 다음해에 씨앗으로 쓰기도 했는데, 이를 씨 고구마 또는 씨 감자라고 해서 더욱 소중히 보관했다.

이 가운데 배추 밑동이 있었다. 이 배추밑동은 당근처럼 굵은 배추뿌리를 말하는데 매우 귀했다. 김장할 때 넓은 배추밭에 배추가 아무리 많아도 깎아먹을 만큼 굵은 배추밑동은 몇개가 안되었다. 그래서 귀한 배추밑동은 마치 보물처럼 여겨졌다. 매콤달콤하고 아삭아삭한 배추밑동은 그 어느 것에 비교될 수 없는 그야말로 춥고 길고긴 겨울밤의 별식이었다.

흘러가는 시간들 사이로 옛적 내 고향의 아름다웠던 추억들이 하늘에 피어나는 구름처럼 사라져버린다. 고향의 소중한 추억들이 한폭의 수채화가 되어 머리속에 맴돌며 아련히 떠올랐다. 지금은 그 추억 많은 고향마을에서 같이 살고 정답게 지냈던 동네사람들은 모두다 어디론가 떠나버렸고, 시간과 세월의 변화 속에 사라지고 잊혀져간 기억들 사이로 아련한 그리움만이 나를 고향의 추억속으로 걷게 했다. 어릴 적 내 고향은 모르는 이 없는 정다운 곳이었는데 나이 들어 노년이 된 지금은 고향도 낯설은 타향이 되어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라보면 낯설은 타인들만이 고향의 논밭을 지키고 있다.

이제 머지않아 봄이 올텐데………….. 꽃소식 난무하는 봄이 오면 언제나 나의고향의 봄이 궁금해지고 그리워진다. 나의 살던 고향도 꽃피는 산골이었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가 춤추던 그곳을 꿈엔들 잊을 수 있겠는가…… 꽃대궐속에서 보냈던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이 그리움의 메카로 남아있지 않은 사람이 그 어디 있으랴마는, 내 고향의 4계(四季)는 종종 춤을 추며 다가와서는 내 지면위에다 그리움의 실체를 쏟아내게 한다. 오늘도 그래서 고향이 그리워서, 고향의 추억을 더듬으며, 향수를 달래기 위해, 지면위에 추억과 미련을 들어부었다. 머지않아 시골의 농촌마을에서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가 꽃 대궐을 이룰 텐데…… 마음과 머리속에서는 그리운 나의 고향을 향해 찾아가는 봄과 함께 나의 마음도 달려간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52>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