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감사 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 감사할 줄 안다는 말은 ‘은혜를 안다’는 말이고, 행복한 마음이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이다. 감사할 줄 모른다는 말은 ‘은혜를 모른다’는 말이다. 이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다.
‘은혜’란 거저 받는 것이다. 돈을 내고 받으면 상품이 된다. 무슨 공로 때문에 받는 것은 ‘댓가’이지 은혜가 아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가장 귀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마움과 감사하는 마음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우리는 풍요롭고 편리함 속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늘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바로 이미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기보다는 꼭 현재 없는 것을 찾아서 불평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시성 괴퇴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고 했으며 도스토에프스키도 인간을 ‘감사할 줄 모르는 두발 달린 동물’이라고 정의 했다. 지금 이 사회는 크게 두가지 면에서 감사에 무감각 하고 감사를 잃어버린 세상임을 보여준다. 오늘날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감사를 잃고 살아간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내 힘으로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 자수성가한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것은 착각이다. 알게 모르게 누군가 나를 도와준 수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내가 살아왔고 지금 이 자리에 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보이게, 또는 안 보이게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감사를 표현 하면서 살고 있는가? 이웃의 작은 친절에 대해 ‘감사합니다’라고 표현하고, 직장에서 헤어지면서 동료들에게 ‘수고했다’ ‘고맙습니다’라고 표현 하는 등, 크고 작은 일에 대해 감사하며 산다면 세상은 보다 더 밝아지고 살기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세상이 막 나간다. 사람들이 막 되어먹었다 며 한탄하기 전에, 과연 그런 문제가 나 자신의 감사할줄 모르는 자세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벌이 없다고 한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삶, 그 자체가 벌이기 때문이다.
2024년의 한 해가 지나가고 2025년 새 해가 밝았다.
지나간 한해 동안 나 자신을 있게 해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기 좋은 시기이다. 나를 있게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따뜻한 마음과 성의, 나를 위해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그 작은 감사의 표현이, 그 소박한 감사의 말 한마디, 메시지 한줄이 결국은 감사의 순환을 통해 놀라운 사랑의 역사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잊고 살았던 감사를 회복하면 그 소박한 감사로 부터 우리들 사회는 보다 따뜻해지고 풍성하여 질 것이다.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큰 사람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큰 거래를 할 때나 중요한 관계를 맺을 때 상대편의 사소한 행동을 가지고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소소한 행동에서 그 사람의 본심이 무심코 드러나기 때문이다.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전에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을 통해, 감사할줄 모르는 사람,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 위선적인 사람, 솔직하지 못한 사람 등은 큰 일이 성사되기 전 낭패를 당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는 쉽고도 어렵다. 좋은 일이나 기쁜 일이 있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또한 반드시 좋거나 기쁜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시련을 겪으면서도 매사 감사할 줄 아는 사람도 있다. 누구랑 교류하고 싶겠는가? 당연히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진솔한 사람과 관계하고 싶지 않겠는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우리에겐 감사 할 조건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자칫 지나쳐버리기 쉽지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솔직히 표현해보자. 그러한 감사는 마음에만 담아두지 말고 반드시 겉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표현될 때 자신에겐 비로소 기쁨과 행복이 온다.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감사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 솔직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들 곁에는 좋은 사람들만 모이고, 감사할 일들이 많아진다. 감사 할 일들이 많아지면 나의 인생은 늘 행복해진다.
우리들이 매일 매 시간 마시는 공기와 햇볕, 바람, 물과 같은 자연의 환경들과 자연에서 피어나는 꽃들을 보고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감사할 줄 모른다면, 그대의 인생은 삭막한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이기적이다.
또한 솔직하지 못하며 인색한 것이다.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자연이 준혜택, 들판의 꽃들도 감사의 앵글에 잘 담으면 행복이 된다. 그 행복은 나의 주변을 따뜻이 뎁혀주는 에너지를 뿜어낸다.
사소한 것들, 나에게 주어지는 혜택이나 도움, 거저 주는 모든 것들이 감사 할 대상들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 감사한 것들, 나에게 오늘도 은혜와 감사를 베푸는 그 사람들에게 감사의 따뜻한 인사말을 전하자.
인터넷에 나와 있는 어느 ‘고민상담’란에 ‘나도 질문하기’에 올라와 있는 글의 내용이다. 질문 (남) ~ 지인중에 제가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도움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고마움을 전혀 못 느끼더라구요, 이런 사람과 계속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 참 회의가 들었는데 손절해야 하나요?
답변 (여) ~ 그렇게 오래도록 도움을 주었는데 그 도움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더 이상 도움을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도와줬으면 그에 답례를 못해줘도 고마움을 느끼는 게 예의입니다. 기본적인 감사 표시도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무엇을 더 바랄게 없어 보입니다. 영화 대사에서도 이런 말이 있죠.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로 착각한다’ 아마도 질문자님이 그 사람에게 계속 호의를 베푸니까 그게 당연시 된 거 같네요. 답변이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모두의 공원’에 올라와 있는 글의 내용 이다.
판다짱 ~ 안녕하세요? 요즘 들어 느끼는 바 인데요, 고마워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길 가다가 행인이 길을 물어보아 열심히 알려주면 고맙다는 인사없이 그냥 뒤돌아 가고, 카톡으로 지인이 무엇을 물어보아 열심히 대답해주면 고맙다는 한마디 없이 대화가 끊기고,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해주면 말 한마디 없이 눈치 보며 눈만 껌벅거리며 자리에 앉네요, 며칠전 새만금 방조제 까지 차 몰고 달려가 삼치 30여마리 잡아와서 교회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당연한 듯 받아가고 고맙다는 인사말 한마디가 없네요.
이렇게 세상은 ‘감사’라는 단어조차 잊고 살고 있네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씨는 돈으로 살수 없는 것 중에 하나다, 그것은 타고 나야한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마음은 가장 아름다운 예의의 형태다’ 영국의 귀족 핼리팩스 경이 남긴 말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보니 지금 우리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다. 사회가 병들고 병든 사회속에서 사람들은 사랑의 결핍으로 짐승같이 포악해지고 있다. 영국 작가 다니엘 디포는 그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주인공을 통해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은 무인도에 홀로 남은 사람이 아니라 어디서든지 감사의 조건을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 이다’라고 했다.
살아있기에 고통을 맛 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아내와 남편이 함께 함을 감사하고,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님에게도, 스승과 벗에게도, 만나는 모든 사람마다, 특별히 조물주이신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 아울러 나 하나가 존재하기 위해 이웃들이 있다는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되자. 모두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때 이 땅에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는 사랑의 꽃이 만발하리라.
우리는 일상속에 감사해야 할 일들이 차고 넘치지만 당연한 것처럼 익숙해져 있는 것들이 참으로 많다. 사실 모든 것에 하나하나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는다’라는 속담처럼 많은 사람들이 감사 할 것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것을 잃고 나서야 그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알게 된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생활속에 감사함을 잊지 않고 소중함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면 참으로 좋겠다. 문학 작가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37/2025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