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국화꽃 향기속, 만추의 계절에………..
오래전 나의 어렸을적, 소년기 시절의 이야기다.
홍시감이 빨갛게 익어 감나무 가지에서 그네를 타고, 김장 배추와 무는 바쁜 농부의 손길을 외면한 듯, 한껏 부풀어 올라 몸짱을 자랑하고 있다.
나른하고 화사한 늦가을 햇볕이 졸음을 부르는 한낮의 오후,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마친 후, 주일학교 선생님을 맡고 있는 나의 둘째 누님은 코흘리개 조무래기 학생 30여명을 이끌고 가을 나들이에 나섰다. 조잘조잘 시끌시끌 깔깔대고 장난치며, 때로는 선생님이 인도하는 찬송가(참 아름 다워라 주님의 세계는…)등을 따라 부르며, 앞서 가는 선생님을 병아리 떼가 엄마 닭을 쫓아가듯이 졸졸졸 따라 가며 한껏 기분들이 부풀어 올라 있다.
이제는 바쁘게 돌아가던 농사일과 가을걷이도 얼초 끝난 들판에는 띄엄띄엄 볏가리가 듬성듬성 서 있고…….. 동산 길로 올라가는 오솔길의 개천가와 풀밭에는 야생 들국화들이 만개하여 노랗고 하얀 융단을 펼쳐놓은 듯, 지천에 퍼져 널려있다. 너무나 오래된 추억이고 기억이지만, 나는 오랜 세월이 흘러간 지금에도 그렇게 아름답게 피어나 장관을 이룬 야생화,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국화들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산과 들에 핀 국화의 향기는 인공으로 재배하여 피워낸 국화의 향기보다 몇 배는 더 강하고 멀리 날아간다. 이유는 무엇일까? 겉으로 보기엔 사람이 매일 가꾸고 다듬어놓은 국화는 꽃이 탐스럽고 모양도 다양하며 우아하다. 그러나 산과 들에 피어나 오직 바람과 햇살과 하늘이 내려주는 물만을 마시며 자라난 야생 국화는 탐스럽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그저 태어나 화장 한번 못하고 오직 무명 저고리 치마만을 입고 투박하게 시골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성장한 그 옛날의 소녀적 나의 누님 모습과 같이 너무나 수수하고 수줍은 모습이다. 그러나 그가 풍기는 향기는 매일 사람 손을 통해 영양을 얻고 다듬어진 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단순하고 강하다.
순수함이 화려함을 이기는 순간이다. 자연스러움에 인위적인 것을 넘는 순간이다.
국화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사랑에도 현재의 사랑, 과거의 사랑, 잃어버린 사랑, 잊혀진 사랑, 내리 사랑, 가슴속 사랑, 짝 사랑, 찬 겨울 사랑, 불같이 뜨거운 사랑,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사랑, 버릴 수 없는 사랑, 갚을 수 없는 사랑, 빚진 사랑, 플라토닉 사랑, 에로스적 사랑, 아가페 사랑, 목숨같이 소중한 사랑, 제우스 적 사랑, 하데스 적 훔친 사랑 등등…..
사랑을 표현하여 설명을 하자면 한도 없고 끝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요즘 같은 가을에는 가을 사랑, 그리고 국화 사랑이 있다.
국화는 사랑의 꽃이라고 불린다. 국화는 꽃잎의 색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데, 붉은 국화는 진실한 사랑을 상징하고, 하얀 국화는 순수한 사랑을, 노란 국화는 질투심이나 변덕스러운 사랑을, 분홍 국화는 로맨틱한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국화는 연인들 사이에 많이 선물되기도 한다.
국화의 꽃말 두번째는 장수와 행운을 뜻하기도 한다. 국화는 중국에서 장수와 행운의 상징으로 여긴다. 국화는 한해 내내 꽃이 핀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장수를 상징하며, 국화의 모양이 태양을 닮아 행운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국화는 겨울철에도 피어나기 때문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용기와 인내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로 국화는 생일선물로 선호되기도 한다. 국화의 세번째 꽃말로는 친구를 의미한다. 국화는 친구의 꽃으로도 불린다. 국화는 꽃잎이 한 송이 송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데, 이는 친구들이 모여 하나를 이루어 나아가는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화는 긴 수명과 견고한 체질로 인해 우정과 지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국화는 친구와의 소중한 추억을 기념하는 선물로 많이 사용된다. 국화의 꽃말 넷, 고독과 추억을 의미한다. 국화는 고독과 추억의 꽃으로 불린다. 국화는 한해 내내 꽃이 핀다는 특징으로 인해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고독한 순간이 찾아오지만 그동안의 추억을 가득 담을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국화는 추모의 꽃으로도 사용되며 죽은 사람에 대한 추억과 사랑을 상징하기도 한다. 국화의 꽃 말 다섯번째는 운명이다. 국화는 운명의 꽃으로도 불린다. 국화는 태어난 달에 따라서 꽃말이 달라진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충 몇가지를 설명한다면, 1월에 태어난 사람은 청색국화를 선호하며 이는 행복한 가정을 의미한다.
2월에 태어난 사람은 분홍색 국화를 선호하며 이는 순결한 사랑을 의미 한다. 5월에 태어난 사람은 노란 국화를 선호하며 이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질투심을 의미한다. 이처럼 국화는 운명의 꽃으로서, 우리의 삶과 미래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국화는 다양한 꽃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생활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사랑, 장수와 행운, 친구, 고독과 추억, 운명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 국화는 우리의 삶에 위로와 희망을 주는 꽃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화의 계절, 만추의 11월이 되면, 산야에 피어난 들꽃, 야생화나 집안 정원에 기르던 모든 화초들에게서 피어난 꽃들이 시들어가는 계절이다. 그러나 이러한 때,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오롯이 자태를 뽐내며 피어나는 꽃이 있다. 국화 꽃이다. 이 시기에 국화보다 더 인상적인 꽃은 드물다. 8월 말부터 이미 꽃 시장에는 국화가 등장해 가을을 예고하고, 가드너들은 여름꽃의 화려함이 저물어가 는 정원에 마지막 불씨를 살리듯 국화를 심는다. 울긋불긋 단풍이 드는 나무들을 배경으로 볏짚과 그라스류, 호박같은 가을 소재들이 노란색,자주색,붉은색, 분홍색,주황색 국화와 함께 가을의 깊은 정취를 자아내면 황혼의 계절에 가장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이 완성된다.
국화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이나 일본등 세 나라에서 역사가 깊다. 특히 중국의 영향이 큰데, 재배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3500여년전인 상나라(기원전 1600~1046)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 국화는 노란색 작은 꽃들을 가진 모습이었고, 관상용 식물이라기 보다는 주로 식용과 약용을 위한 허브였다.
뿌리를 달여 두통 치료에 쓰거나, 꽃잎과 어린 싹은 샐러드로 식용하고 잎은 차로 우려 마셨다. 중국 최초 약초서로 365종류의 약초에 대한 내용이 수록된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서는 몸을 가볍게 하고 머리와 눈을 맑게 하는 국화가 수명을 연장시키는 가장 좋은 영약이라고 했다.
국화는 보다 고차원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 진나라 시인 도연명(365~427)은 국화를 상하걸(霜下傑), 즉 서리 속에서도 절개를 잃지 않는 호걸이라 칭송했다.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산야에 묻혀 지낸 시인이자 은자(隱者)도 도연명에게 국화는 은일(隱逸)과 절조(節操)의 상징이었다.
국화가 유럽에 도입된 것은 17세기다. 주로 죽음을 상징해 장례식에 사용되고 무덤에 놓여졌다. 특히 프랑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에서 거의 추모의 꽃으로만 쓰였다. 폴란드에서는 모든 성인의 대 축일에 고인들을 추모하며 무덤에 국화를 놨다. 1753년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는 국화의 속명으로 크리산세멈(Chrysanthemum) 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금을 뜻하는 그리스어 크리오스(Chryos)와 꽃을 뜻하는 안테몬(Anthemon)이 합쳐진 말로, 노란색 국화의 특징을 잘 묘사하는 이름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국화는 유럽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19세기 후반 클로드 모네 귀스타브 카유보트등 인상파 화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중 하나였다. 추상화의 선구자 피트 몬트리안(1872~1944)의 초기 작품들 속에서도 국화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국화는 미술뿐 아니라 음악분야에서도 영향을 미쳤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1858~1924)는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1890년 국화(Crisantemi)라는 타이틀로 현악 4중주를 위한 엘레지를 작곡했다.
국화가 처음 미국에 전해진 것은 유럽보다 약간 늦은 1798년 이었는데, 유럽에서 주로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과 달리 가을꽃을 대표하는 꽃으로 큰 인기를 끌며 컨테이너 식물로도 널리 재배됐다. 미국에서 국화는 기쁨과 긍정의 의미가 부여돼 집들이 선물, 병문안 꽃다발, 코르사주로도 인기였다. 재미있게도 홈커밍 풋볼 게임을 응원할 때 국화가 많이 사용됐다. 1833년 펜실베니아에서 최초의 국화 쇼가 열린 이래로 오늘날에는 롱우드 가든이나 뉴욕 식물원에서 해마다 성대하게 국화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특히 롱우드 가든의 가을철 시그니처 전시로 유명한 천송이 국화(Thousand Bloom Mum)는 장장 17개월 동안 재배한 한 줄기 국화로부터 1500개가 넘는 꽃을 피워 낼 정도로 놀라운 원예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국화는 모든 것이 스러져 가고 서리가 내려 앉는 계절에 오히려 영광스런 시간을 맞이한다. 인생으로 비유한다면 대기만성인 셈이다. 그래서 국화를 즐기는 것도 천천히 음미하는 완상법이 좋다. 정신을 명료하게 하는 찬 바람과 따스한 저녁노을이 공존하는 늦 가을의 정원에서 국화꽃들을 바라보며 고요한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면 잠시 모든 근심을 잊고 진정한 자아의 모습을 성찰해 볼수 있을 것이다. 한해동안 수고한 몸과 마음에 좋은 기운을 보충해 줄 국화차 또는 국화주를 살짝 곁들여도 좋을 것이다.
문학 작가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31/2024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