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가을의 품 안에서…………..!

<김명열칼럼> 가을의 품 안에서…………..!

꽃보다 고운 단풍들이 어울려 가을 산이 너무나 아름답다.

계곡마다 붉게 토해낸 가을 빛깔로 산들이 붉게 타오른다. 내 마음속에 초막 하나 짓고 이풍진 세상 다 버리고, 한잎의 낙엽 되어 붉게 탄 갈잎 속에 묻히고 싶었다.

가을이 깊은 산속에서 온 몸을 담그면서 세속의 덧옷을 벗어버리고, 그냥 갈잎새 되어 어디론가 훌쩍 길 떠나고 싶은 나그네 마음이 되었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 힘들다 해도, 귀도 막고 눈도 막고 벙어리가 되어 깊은산 흐르는 바람처럼 낙엽처럼 살순 없을까. 맑음이 흐르는 계곡마다 청정수 물 흐르고, 갈잎 사이로 서둘러 길 떠나는 바람을 맞으러 간다. 가을에는 구름따라 물따라 바람 데리고 어디론가 정처없이 길 떠나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며칠전(지난 10월23일), South Carolina주에 있는 Table Rock State Park을 방문했다. 만산홍엽이라더니 울긋불긋 붉게 물든 산야는 속세에 시달린 영혼을 단풍속에 묻고 평온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붉게 탄 가을 잎새들이 쓰고 간 시를 읽으며 부딪치고 얽히며 시달리고 산 나의 영혼하나, 갈산에 묻혀 속세를 잊은채 한밤을 지새고 싶었다. 어느 시인이 영혼 불타는 갈잎 새들보다 더 장엄한 서사시를 쓸 수 있을까. 비에 젖고 난 후 산 빛이 더 뚜렷하고, 깊은 나그네 가슴 먼 향수에 젖어 돌이킬 수 없는 옛추억에 젖어 본다.

사라져가는 우리들의 꿈, 낭만, 추억들이 가슴 절절한 계절이 가을인가. 이런 가을이 되면 잊을수 없는 향수는 내 고향마을의 그리움이다. 가을에는, 앞마당 멍석위에는 어머니 손길이 담긴 빨간 고추가 널려있고, 초가지붕 위에는 보름달보다 더 크고, 뽀얗게 열린 박이 주렁주렁 넝쿨마다 열려 있으며, 뒷마당 장독대 옆의 배나무와 감나무에는 탐스런 열매들이 가지가 휘어지도록 매달려 있다. 온갖 추수가 한마당 가득한 가을, 구리 빛 타는 얼굴의 농부였던 내 아버지의 생전의 모습이 그 속에 살아서 숨쉬고 있다.

왜 이토록 가을은 수많은 추억들을 다시 불러오며 돌이킬 수 없는 꿈, 추억속에 슬프도록 가슴시린 비극의 계절인가. 가을빛에는 한 생을 눈부시게 살다가 마지막 돌아가야 할 인생의 정점이 가까워 옴을 절감하는 애수에 젖은 계절이기 때문이리라. 한 생의 태동, 봄과 여름을 보내고 조금은 철이 든 자아를 깨닫는 계절, 어디론가 귀의하고 싶은 존재의 심연을 장엄한 모습으로 길 떠날 때 가을 낙엽이 보여준 탓일까. 이렇게 깊은 산에 머물면 마음의 심연도 깊다더니, 왜 이 가을에는 가슴에 멍에와 아픔들이 아프도록 서성이는가. 인간은 누구나 어느 순간 갈 나그네가 되어 가을의 문턱에 마주 서서, 일출보다는 장엄한 일몰을 반추하게 된다. 우리의 인생은 짧다고 하지만, 한 생이 영겁을 사는 위대한 한 생으로 아름답고 숭고한 삶일 수도 있다.

불타는 가을 산처럼 마음의 보석을 갈고 닦아서 장엄한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선하게 살아보자.

가을은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하루하루가 평범하지만, 축복과 결실의 보람이 넘치는 순간들이요, 감사가 넘쳐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날 저물고 가을바람 스산한데 시간과 공간의 빈 터에서 아름답고 황홀한 이 가을을 만끽하고 싶다.

고즈넉한 가을 산이 너무나 아름다워 조물주이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다.

가을이 농익은 듯 무르 익어간다. 저 멀리 북녘의 산, 먼 땅의 산등성이에 업혀 오다가 하얗게 피어난 억새꽃에 눈 맞춤도 하고, 이름 모를 풀벌레 입속에 한 소점 내려놓기도 하며 슬며시 사방에 스며들었다. 화사하게 내려 비춰주는 늦가을 햇살 속에 졸음에 겨운듯 나래를 편 가을은 마음을 앓게 하고 상념들을 일깨운다.

아름답고 곱게 물들여진 단풍은 거센 비바람을 견뎌낸 나무의 유채화다. 생채기가 깊을수록 그 빛깔은 더욱 더 농염하다. 알록달록 울긋불긋 곱게 치장한 옷 차림은 종점을 향한 내면의 소리이고, 부끄럼 없이 살았다는 충만의 표정일 게다.

같은 수종도 단풍색이 다른걸 보면 같은듯 다르게 제 길을 걸었다는 자세가 아니랴………….

이별의 서시를 끼적이다 미완으로 툭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 우리네 생을 겹쳐 읽게 된다. 이미 세상을 달리한 낙엽들이 끼리끼리 모여 외로움을 터는 듯하다.

심심한 바람이 그네를 태우면 바스락 웃음을 터뜨린다. 훗날에 나도 그런 웃음을 지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 동네 공설운동장 낮은 지역에는 지난번 Helen과 Milton 태풍으로 몰아쳐 날려서 쌓여진 잡동사니와 나뭇가지, 쓰레기들이 난장을 이루고 있다. 큰 길에서 날아온 낙엽뿐만 아니라 미아가 된 팩과 페트병이며 심지어 담배꽁초까지 몰려와 북새통을 이룬다. 바람이라도 불어와 회오리치면 공중에서 비하하며 사방으로 흩어져 쓰레기 벌판을 이룬다. 저런걸 보면 아무렇게나 버리고 간 인간들이 얄미워지고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아무데나 버리는 그 사람들의 양심에는 시꺼먼 털이 무지무지 하게 많이 나 있을 것 같다.

지난번 태풍에 할퀴어 떨어져 내린 도토리 나무의 낙엽들이 정원 한쪽 구석에 수북이 쌓여있다. 저러한 낙엽들은 세월에 삭으며 거름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간이 떠날 때면 무엇이 남을까. 영혼이 떠난 육체는 사물화 될 뿐이다. 삶의 흔적을 묘비나 누군가의 가슴에 새긴들 영원할 순 없다. 그건 지나친 욕심, 결국은 무로 돌아가야 한다. 흔들리는 갈대처럼 이내 마음이 변한다. 이 지구상에 발을 디딘 건 축복이었다는 한마디 안고 가려는 건 내 소망이려니………

매년 이맘때 만추의 계절이면, 내 고향 마을 산자락 아래 엄청나게도 많이 열려 매달려 있는 홍시감이 생각난다. 긴 장대와 망태기로 그 많은 감들을 하나하나 따 담다보면, 노루 꼬리처럼 짧막한 늦가을 하루는 벌써 석양을 부른다. 열린 감들을 모두 다 따 담지 않고 그중 몇 개를 그대로 놔둔다. 감나무 맨 꼭대기에 열린 감은 기다란 장대마저 손끝이 닿지 않아 할 수 없이 그냥 내버려 두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새들의 한 겨울 음식으로 따지 않는다. 저렇게 올망졸망 매달린 단감들은 새들의 성찬이다. 이러한 감들은 멧새, 참새, 까치, 까마귀, 동박새, 직박구리 등 각종 새들이 부지런히 찾아와 들락거리며 쪼아 먹는다. 하나를 다 먹을때 까지 다른 것을 건드리지 않는 게 그들의 불문율 이다. 보시하는 감나무의 흐뭇한 미소가 파아란 하늘 속 허공으로 번진다. 낯선 손님들을 환대하는 걸 보면, 변장한 천사를 알아보는 건 아닐까 싶다.

지난 10월9일, Milton 태풍이 마지막으로 거세게 후려치고 쏟아놓고 간 장대비 이후에 거의 한달이 되도록 비 한방울 내리지 않은 대지는 늦가을 가뭄에 초목들은 몹시도 목말라 갈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메마른 응달에서 자라는 잡초를 볼 때면, 삶은 조건이 아니라 자세란 말이 떠오른다. 짓밟히면서도 꽃을 피워 핑계의 가식을 벗겨낸다. 존재 자체로 존재한다. 자연의 길은 배척이 아니라 수용이다. 모든 걸 다 품는다. 인간들만 아옹다옹 다투고 싸우고 시기하며 종 주먹을 휘두른다. 인격이 휘발된 소음들이 사회와 거리를 메우는 시대가 되었다. 금전과 권력에 취해 벌겋게 충혈 된, 이성 잃은 눈망울 들을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때, 지각 있고 선한 마음을 가진 자들은 기만이 아니라 정의와 진실의 깃발을 들어야 할 때이다. 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가을에, 이 가을처럼 청명하고 아름다운, 곱디고운 심안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다. 문학 작가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30/202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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