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고향친구 같은 진정한 친구는….?

<김명열칼럼> 고향친구 같은 진정한 친구는….?

옛날 나의 대학재학 시절, 여름방학이 되어 시골 고향마을에 내려가면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들이 무척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이러한 친구들 중에는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를 두명이나 낳은 친구도 있고 신혼중인 친구도 있으며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친구 중에는 이미 군대에 갔다 온 녀석도 있고 병역판정 신체검사에서 병종 판정을 받아 군대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도 있었고, 호적에 출생신고를 늦게 해서 군대에 아직 가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나 역시 아직 군대에 입대를 않 했지만,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군 입대를 하기 위해 병역 연기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그 당시 나이는 이미 25~8세가 된 친구도 있었는데 그 친구들 중에는 호적에 출생신고를 늦게 하여 나이가 줄어 아직도 군대에 입대를 못한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나의 어린 유아기 시절에는 홍역이 대 유행병이 되어 어린이들이 홍역에 걸리면 약 25~35% 정도는 홍역으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아이를 낳으면 홍역을 치르기 전에는 아예 출생신고를 미뤘다가 그 아이가 무사히 홍역을 마치면 뒤늦게 서야 출생신고를 하다 보니, 보통 2~3년이 지나서 출생신고를 했다. 그러다 보니 나이들이 평균 두 세살이 늦어졌고 그로인해 군 입대도 늦어지게 되었다.

나의 국민학교 시절 사범학교를 갓 졸업하고 부임해온 담임선생님이 애띤 20세 전후가 많았는데, 같은반 학생중에는(6학년때의 얘기) 이미 결혼을 한 친구도 있었다. 이 친구야말로 홍역을 열두살때 해서 출생신고가 늦어 그만큼 국민학교 입학이 늦어져서 그랬다. 선생님이 나 학생이나 나이가 비슷해서 서로가 어색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나 역시도 태어나서 세살이 지나서야 홍역을 했기에 출생신고가 늦어져 평상의 나이보다 두살이나 줄어서 출생신고를 하게 되었다. 이야기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렀는데, 어쨌거나 이렇게 고향에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군대를 갔다 오고 아직도 못 간 친구들이 섞여서 재미있게 살고 있었다. 모두가 한 동네에서 자라며 불알친구로서 네 것 내 것 없이 흉허물도 덮어가며 전혀 이질감이나 벽이 없는 절친들 이었다. 나 역시 그들의 일원으로 지내다 서울에 가서 공부를 하고 방학 때 내려오면 모두가 가족을 만난 듯 반가워하며 손님을 맞듯 나를 반갑게 맞고 함께 술 마시고 여름밤에는 참외서리도 하고, 때로는 동네 한 가운데 거목의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모여앉아 면 소재지에서 배달해온 막걸리와 고리 소주를 마시며 밤새도록 우정을 나누고 정담을 나누며 끝날줄 모르는 대화의 장을 이어갔다.

안주는 각자 집에서 준비해 왔고 어느 때는 집에서 기르는 닭을 붙 잡아와서 그 자리에서 닭목을 비틀어 죽여 끓는 물에 넣어 털을 뽑아내고 푸…욱 삶아서 깨소금 소금에 찍어먹기도 했다. 그 맛이란? 두말 하면 잔소리 같이, 너무나 맛이 좋았고 서너 마리 삶은 닭을 여러명이 나눠먹다 보니 서로가 맛있는 부분의 닭다리나 가슴살을 양보하며 “네가 먹어라. 아니다 괜찮다, 나는 뼈다귀가 좋다”등등 이렇게 하며 맛있는 부분을 친구가 더 먹도록 양보하는 진하고 끈끈한 미덕? 의 우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은 멀리 미국에 와서 살고 있지만 그 옛날 그 시절의 고향친구들이 한없이 보고싶 고 그리워진다.

세상에서 친구라는 말보다 정겹고 다정하게 느껴지는 말이 어디 있으랴.

부모형제나 가까운 친척, 그리고 내 가족을 빼고는 더없이 가까운게 친구들이겠기에 하는 말이다. 송아지는 어지간히 성장하면 어미 곁을 떠나고 어린이들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부터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친구야말로 세상에 없는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특히 어릴 적부터 가까이 지내며 함께 자랄 수 있었던 고향 친구들이야말로 향수에 젖어 살아가기 마련인 우리들에게는 세상에 없는 귀한 존재들인 것이다. 우리가 한 평생 살아가다 보면 우리 모두는 사회적 존재이겠기에, 사회적 동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때로는 스치고 또 때로는 만남의 관계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어려서는 어린대로, 성년에는 성년으로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과 접하기 마련인데, 그들 중에서도 가장 만남의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게 되는 것은 곧 아무런 사심 없이 순수, 그 자체로서 만나고 서로 부딪히면서 지내온 어릴적의 친구들이리라. 그들 친구들 간에는 고향이라는 든든한 끈이 우리들을 꽁꽁 붙들어 매고 있겠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그 당시의 옛 친구들이야 말로 보석보다도 소중한 하늘이 선물로 준 보석중의 보석과도 같은 소중한 존재들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생사고락을 같이 할 수 있다 던지, 자신의 모든 것을 사심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 한 사람만 있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만큼 세상에 살면서 참된 친구를 사귀기는 그리 쉽지않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그렇다. 출생과 성장 배경, 그리고 모든 생활여건이 다른 가운데서 살아온 인간이 의기투합하여 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로 사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어린시절 함께 자라며 친하게 지냈던 고향친구가 있었다. 그러한 절친이 최근 지난달 6월27일 전 대통령 트럼프 후보와 대선후보 첫 TV토론에서 기대 이하의 토론으로 궁지에 몰리며 후보 교체론에 직면하게 되자, 바이든 대통령에게 어린 시절 고향의 이웃친구 마저 후보에서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7월1일자 LA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시인이며 소설가이고 또한 버몬트주 미들버리 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제이 파리니는 토론 다음날인 28일 미국 CNN방송에 나와 “조에게, 이젠 떠날 시간이다”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을 보냈다. 파리니는 바이든 대통령의 고향인 미국 펜실바니아 스크랜턴에서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이웃친구이자 후원자다. 파리니의 모친은 바이든의 모친과 가까운 사이였으며 바이든이 어릴 때 종종 그를 돌봐주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니는 서한에서 “당신과 나는 수십년전 우리 집 부엌식탁에 함께 앉곤 했다. 나는 오랫동안 당신의 팬 이었다” 며 “미국역사상 당신만큼 마음이 넓고 중용감각을 지닌 지도자는 몇 없을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또 1-6의회 폭동 여파와 코로나19 대 유행 수습, 우크라이나 지원 등은 바이든 대통령의 성과로 꼽으면서도 “모든 게 좋지만 이제 당신도 나처럼 노인” 이라며 우리 몸은 이전처럼 협조적이지 않고 때로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다 고 지적했다.

파리니는 멍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토론장에 들어온 바이든 대통령이 늙고 창백하고 연약해 보였으며 발언 역시 두서없고 앞뒤가 맞지 않았다 면서 “내가 당신을 위해, 또 나라를 위해 울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당신은 진정성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며 나라와 당을 위해 그렇게 해 달라, 사기꾼이자 협잡꾼인 트럼프가 또 다른 4년을 집권할 것이라는 위협은 “실존적” 이라고 강조했다.

어릴적 함께 자라며 친하게 지냈던 고향친구의 이러한 우정어린 충고와 권면(알아듣도록 타 일러서 선한 일에 힘쓰게 하는 일)은 고향친구가 아니면 그 누구도 감히 현직 대통령에게 할 수 없는 진언이자, 진정으로 친구를 사랑하고 아끼며 위하는 우정어린 눈물의 호소라고 할 수 있다.

친구간의 우정은 참으로 귀하고 소중하다. 5천달러를 받는 것은 행복이 2% 증가하지만, 진정한 친구 한, 두명 두는 것은 2만달러를 받는 것과 같다.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삶에 좋은 보너스가 된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정서적 안정은 부와 명성보다 훨씬 값진 것이다. 우리의 삶에 최고의 복지는 훌륭한 친구를 가까이 두는 것이다.

피를 나눈 사이를 우리는 형제자매라고 한다. 뜨거운 심장을 나눈 사이를 우리는 연인이라고 한다. 생활을 같이 공유하는 사이를 우리는 부부라고 한다. 계약상의 이익을 공유하는 사이를 동업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친구는?……… 공유하는 것이 없다. 다만 우정을 공유한다. 언제나 나를 위해 흘려줄 뜨거운 눈물을 지니고 있고, 내가 불리한 처지에 놓여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 나를 이해하고 내 편에 서서 동감하며 함께 영혼을 공유하는 사이가 진정한 친구이다. 그런 친구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행운아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때는 친구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남아있을 때 이고, 세상에서 가장 울고 싶을 때는 친구가 내 곁을 떠나갈 때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믿고 싶은 것은 친구가 날 사랑하는 마음이며, 친구가 가장 친하게 느껴질 때는 서로가 손을 꼭 잡고 마주앉아 대화를 나눌 때 이다. 내가 외로움을 느낄 때는 친구가 내 곁에 없다고 생각될 때이며 내가 가장 바라고 싶은 것은 친구의 마음속에 내가 영원히 머물러 간직되는 것이다.

<문학 작가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15/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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