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세상의 모든 것은 내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

<김명열칼럼> 세상의 모든 것은 내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

어느 한 신학생이 입이 퉁퉁 부어있었다. 교수가 왜 그렇게 됐냐고 물으니, 학생이 대답하기를 “이놈의 입이 실수해서 제가 크게 망신을 당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주먹으로 입을 쥐어박았는데 이렇게 됐습니다” 그말을 들은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그 입이 무슨 죄가 있냐? 쥐어박으려면 너의 마음을 쥐어박아야지”. 이렇듯 마음은 참으로 중요하다. 마음을 헬라어로(카르디아)라고 하고, 히브리어로는 (레브)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마음, 영혼으로 번역 한다.

즉 마음이나 영혼이나 성경에서는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마음이 뭘까?. 성경에서 마음은 세가지를 뜻한다. 인간의 내적인 생명, 영혼의 모든 힘과 기능의 근원과 자리, 인격의 중심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은 인생의 출발점이고 종착지이다.

모든 문제는 언제나 마음에서 비롯되고 마음에 있다. 우리는 이 마음을 잘 지키고 가꾸며 살아야 한다.

구약성경 잠언에서는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니 마음을 지키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다.

마음은 크게 세가지 능력이 있다. 먼저 아는 능력으로 알고, 깨닫고, 이해하는 모든 지적인 능력을 말한다. 둘째로 마음은 감정을 느끼며 서로 공감하며 살아가게 하고, 마지막으로 마음먹은대로 행동하게 하는 의지적인 능력이다. 그래서 마음은 무엇인가를 새 길수도 있고, 열수도 있으며 무엇인가를 간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감추거나 위장할 수도 있다.

어느 부인이 남편에 대한 고민을 법륜스님에게 털어놨다. 부인의 말을 듣고난 법륜스님은 세상만사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지요. 즉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면서 고민에 대한 답을 주었다. 이 말은 불교에서 나온 말로 “모든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든 마음먹기에 따라 이루어진다”라는 뉘앙스로 들리기도 한다.

“일체유심조란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은 불교의 사상으로 세상 모든 일체를 오직 마음이 만든다”라는 뜻이다. 엄격히 말한다면 “세상은 마음 먹은 대로 된다”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체유심조와 관련해 자주 인용하는 것이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의 이야기다. 원효는 어릴 때 황룡사로 들어가 머이를 깎고 승려가 되었는데, 34세가 되던 661년(문무왕 1년) 8세 아래인 의상과 함께 공부를 좀 더 하기 위해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당항성에 이르러 날이 저물어 어느 무덤 앞에서 잠을 잤다. 한 밤중에 목이 너무 말라 물을 찾다가 옆에 바가지에 있는 물을 아주 맛있게 마시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간밤에 마신 물은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 원효는 너무 놀랍고 역겨운 나머지 구역질을 하였고, 그 순간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해골에 담긴 물은 어젯밤 달게 마실 때나 오늘 구역질 날때나 아무것도 변한 것도 달라진 것도 없지만, ‘어제와 오늘 달라진 것은 자신의 마음’ 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생겨나므로 모든 것이 생긴다’ 라고 읊었다고 한다.

사물 자체에는 정(淨=깨끗할 정)도 부정(不淨)도 없으며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달렸음을 알고, 원효는 그 길로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왔다.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좋은 것과 싫은 것, 선한 것과 악한 것, 등의 모든 분별은 자기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지 물질 그 자체에는 깨끗함도 더러움도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만약 지난밤에 마신 해골물이 본래 그 자체가 더러운 물이었다면 그때 이미 토했을 것인데, 그것을 냉수라고 믿었기 때문에 시원하고 맛좋은 냉수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아침에 와서는 그것을 더러운 송장에서 나온 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장이 뒤집혀 구역질을 했던 것이다. 해골물이 더럽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더러운 것이 되고, 깨끗하다고 생각하면 깨끗한 것이 되는 것이다.

원효는 모든 것이 외부의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다. 인간만사 모든 일은 사람의 마음에 따라 바뀐다는 뜻으로, 마음에서 길흉화복, 흥망성쇠, 희로애락 등이 결정되는데, 인간의 마음이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좋은 일과 선한 일일수도 있고, 나쁜 일과 악한 일일수도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세상일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해 보이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한 것이 아닐까 ? 라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이 머물러 있는 곳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삶이 편할 것이다. 어차피 오늘도 하루의 삶을 산다면 불평을 감사로, 부정을 긍정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보자. 지금 나 자신의 모습은 나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좋은 생각, 바른 행동, 매사 발전적인 생각으로 나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보자. 모든것이 마음먹기에 따라 이 세상이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이 세상에 근심 없는 사람이 있을까? 많건 적건 간에 우리는 늘 근심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인데도 낙천적인 사람과 비관적인 사람이 있다. 역경 낙천지명(樂天知命) 이라는 말처럼 하늘(天)을 즐기고, 명(命)을 알면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오오. 김동명 시인은 마음을 호수로 비유했다. 평소 잔잔하게 맑아 보이는 호수도 돌풍이 불면 물결친다. 호수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찌꺼기들이 호수를 흐트러트린다. 사람의 마음은 호수와도 같다. 별 걱정없이 평온 하다가도 막상 누군가로부터 욕을 듣거나 비난의 소리라도 듣게되면 마음은 곧장 흔들린다. 호수를 흐리는 찌꺼기들처럼 마음에서 별별 생각들이 다 일어난다. 감정은 마음을 오염시키고 아프게 한다. 이것이 일종의 마음의 독소이다. 마음의 면역력을 키우려면 마음의 호수바닥을 청소할 필요가 있다. 외부에서 아무리 강한바람이 분다 한들 청정한 마음은 여여(如如=같을 여)하지 않겠는가………..

불교에서 마음의 독소로 세가지를 꼽는다. 탐욕(貪=탐낼 탐), 분노(嗔=성낼 진), 어리석음(痴=어리석을 치) 에서 온갖 걱정과 근심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삼독(三毒)이다. 좋다고 여기는 것을 더욱 원하는 마음, 싫은 것에 화나는 마음, 좋고 싫음에 가려 대상을 그대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마음의 독이다.

탐욕은 마치 거센 불길과도 같다. 식욕, 수면욕, 성욕과 같이 본능적인 욕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취욕들을 잘못 다스렸다간 자칫 마음을 잿더미로 만들지도 모른다.

분노는 칼과 같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끊어내고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어리석음은 어둠이다. 대상을 자기 식대로 판단하는 오류는 삶을 어둠의 나락에 빠지게 한다.

독은 어떻게 생기는가? 흐르지 않고 정체될 때 생긴다. 고인물이 썪는 것 처럼, 몸도, 마음도, 인간 사회도, 머물렀을 때가 문제다. 건강은 순환과 소통에서 유지된다.

몸도 마음도 독소에 의해 면역력이 떨어진다. 마음의 독소는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생각이다. 특히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한정된 정보에만 의지하면 마음에 독이 커진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자기 생각이 최선이라고 착각한다. 이는 소통의 부재를 낳는다.

여기서 소통은 내,외면이 모두 포함된다. 내면의 소통은 자신을 아는 것이고, 외부와의 소통은 사회적 교감 능력을 말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음의 해독제로 (희망)을 꼽는다. 희망은 암처럼 자라나는 절망에 대한 해독제라고 했다. 몇년전 교황은 터키 이슬람 사원을 방문해 이슬람 지도자와 합동예배를 올림으로써 종교간 화합을 위한 큰 발걸음을 내 디딘바 있다. 천년동안의 반목에서 화합으로 나아가는 희망의 빛을 우리에게 주었다. 삶을 단순화 하면 마음도 단순화 된다. 여기에다 긍정과 희망,감사와 용서라는 양식을 섭취하면 마음에 새로운 길이 나기 시작한다. 사실 자신의 마음은 자기 자신이 길들이기 나름이다.

긍정과 희망적인 생각의 반복은 마음의 길을 새로 닦는 작업이다. 긍정의 고속도로가 깔리면 삶의 패턴이 긍정적으로 변화된다. 이렇게 모든 세상사의 일과, 행복과 불행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97/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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