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이 추운 겨울에, 매화꽃이 피었네요.

<김명열칼럼> 이 추운 겨울에, 매화꽃이 피었네요.

지난달 1월26일 아침, 전파를 타고 본국에서 전송되는 TV조선 뉴스9의 한국뉴스를 시청하다가, ‘올 겨울 첫 한강결빙, 제주 매화 만발’이라는 제하의 뉴스를 보게 되었다.

이 엄동설한 겨울의 추위속 제주도에서 피어난 매화는 평년보다 46일이나 빨리 피어났다고 한다. 때아니게 철모르고 일찍 피어난 매화의 소식을 들으며, 매화꽃 이야기를 적어본다.

봄은 아직도 멀기만 한데……….

봄은 원초적으로 아픔을 잉태하고 있나보다. 아직도 켜켜이 얼음이 두꺼워지고 있는데, 이 추운겨울에 어쩌려고 그렇게 철모르고 일찍 너만이 피어났는지?…. 세상은 아직도 한 겨울, 땅도 얼었고 나무도 풀도, 산도, 호수도 얼었는데, 살기조차 힘들어진 세상조차 얼어서 경제는 풀리지 않고 살림살이 역시 꽁꽁 얼어버렸는데 오직 너만이 얼지 않고 피어났구나…….! 너의 그 절개, 너의 그 인내, 너의 그 생명력, 나도 이제부터 너를 닮아 그리 하여야겠다. 이직 봄은 멀기만 한데 유독 너만이 봄을 재촉하듯 피어나는구나. 아직도 겨울은 깊어지기만 한데 오직 너만이 향기롭구나.

매화는 봄의 전령이다. 이제 곧 동백꽃이 피고 돌담길 모퉁이 개나리도 피어나고 산등성이에는 핑크빛 목도리를 두른 진달래가 온 산야를 덮어주겠지……..그러한 꽃들로 인해 천지간에는 봄의 꽃향기로 술 취한 취객처럼 꽃향기에 취해 흐느적거릴 것이거늘……. 하지만 그 봄으로 가는 시간이 멀기만 하다. 아직은 1월 하순, 몇번의 살을 외이는 추위를 견뎌야 하고, 또 몇번의 눈보라를 견뎌야 한다. 삭풍과 한파가 몰아치는 엄동, 그 한복판에서 희망을 노래하며 꽃을 피우고 생명의 향기를 전하는 네가 반갑기만 하다. 화사한 매화꽃을 피우기 까지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이 있었을까. 얼음도 돌이 되고,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이때, 홀연히 피어난 너의 모습에 숨죽이고 간졸이며 꽃잎조차 얼어버릴까 노심초사 안전을 빌어본다.

매화에 대해서는 옛부터 다양한 비유와 매화를 예찬하는 시구(詩句)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나역시 한마디 거들어 비유의 글을 써 올린다면, 봄의 전령사로서의 매화, 절사(節士)로서의 매화, 정인이나 연인으로서의 매화, 향기로서의 매화, 미인으로서의 매화, 친구로서의 매화, 평화와 화해로서의 매화, 고결한 정신으로서의 매화 등등으로 구분하여 비유의 말씀을 드리겠다.

그럼 먼저 봄의 전령 매화 이야기다. 봄부터 피어나는 여러 꽃중에 가장 먼저 피어나는 매화를 가리켜 봄의 전령이라 칭했다. 매화는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라 하여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기도 한다. 매화의 꽃말은 인내, 기품, 고결한 마음이다. 매화는 타이완(대만)의 국화(國花)이기도 하다. 다음은 절사로서 매화인데, 절사란 임금에 향한 신하로서의 충절과 임에게 향한 여인의 절조(節操)를 뜻하며, 정절을 굳게 지키는 사람을 말한다. 정인이나 연인으로서의 매화는, 정인(情人)은 대부분 낭자 낭(娘子)나 기녀(妓女)를 가리키는 것이며 풍류와 호화를 즐기던 선비 출신들이 주로 시의 주제로 많이 다루었다.

다음은 향기로서의 매화다. 매화는 평생 추위와 함께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조선시대 4대 문장가중 한사람인 상촌, 신흠(1566~1628) 선생의 수필집 야언(野言)에 나오는 시구(詩句)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은 천번을 이지러져도 본질은 남아있고, 버드나무는 백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난다’는 뜻이다.

퇴계 이황 선생은 매화를 늘 곁에 두고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 매화의 향기는 ‘귀로 듣는 향기’라고 했다.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마음을 가다듬고 섬세하게 느껴야 제대로 매화향기를 알게 된다는 뜻이 담겨있다. 조선후기 실학자 홍만선(1643~1715)은 산림경제에서 겨울 매화의 향기는 사람을 감싸고는 뼛속가지 싱그럽게 만든다고 했다. 그 향기가 진정 귀하게 느껴진다.

이번엔 미인으로서의 매화 이야기다. 동양의 전통적 미인의 조건으로는 피부와 이(齒), 손이 희어야 하는 삼백(三白)을 비롯하여 삼흑(三黑=눈동자, 속눈썹, 눈썹)과 삼적(三赤=입술, 뺨, 손톱), 세곳이 넓어야 하는 삼홍(三弘=가슴, 이마, 미간)과 삼대(三大=입, 유방, 엉덩이) 그리고 삼소(三小=허리, 발, 유두)를 들 수 있지만, 시나 가사에서 매화를 미인으로 의인화(擬人化) 했을 때는 몸이 가냘프고 야윈 수골(瘦骨)로 나타내고, 피부 색깔은 빙기옥골(氷飢玉骨)과 설부(雪膚=흰눈과 같은 하얀 피부)처럼 희고 깨끗해야 하며, 엷은 화장기가 있어야 하고, 의복은 소복(素服)처럼 깨끗한 흰옷으로 표현된다.

매화는 건강과 장수로서의 대명사로 표현된다. 매화나무는 세포의 조직이 매우 조밀하므로 목질이 단단하고 천년 이상을 살기 때문에 수명이 긴 수종에 해당한다. 이른 봄 거친 줄기나 몸통에서 예외없이 새싹이 돋아나고 눈보라 속에서도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것을 보면 매화가 건강과 장수를 상징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아울러 매화는 친구로서의 매화도 상징된다.

정신적인 빈곤의 풍조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세한삼우도(歲寒三友圖)를 보고 있노라면 매화와 소나무, 대나무가 어우러져 고고함과 절개와 지조를 나타내는 멋이 넘쳐난다. 삼우 가운데는 공자가 말하는 유익한 세사람의 벗과 손해를 끼치는 세사람의 벗(益者三友, 損者三友)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공자가 말하기를, 더해주는 세가지 벗이 있고, 덜어내는 세가지 벗이 있다. 강직한 이를 벗하고, 신실한 이를 벗하고, 많이 듣고 배운이를 벗하면 보탬이 된다. 굽실대는 이를 벗하고, 면전에선 낯빛을 부드럽게 하고 뒷전에선 비방하는 이를 벗하고, 말을 앞세우고 실상이 없는 이를 벗하게 되면 덜어내게 된다. 이상은 공자의 말이다.

옛날 중국의 철학자이며 사상가였던 소옹(1011~1077)은 매화꽃 다섯잎이 평화, 화해, 행운, 관용, 인내의 상징이라고 했다. 따라서 대만과 중국이 오랫동안 대결과 단절을 끊고 대만 항공인 차이나 에어라인이 중화인민공화국 본토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중화민국의 국적 표시인 청천백일기를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홍매(紅梅)로 바꾸었던 일은 화해를 상징하는 유명한 사건으로 알려지고 있다.

매화는 아울러 절개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 절개의 상징성은 충절과 연결된다.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인 성삼문은 매화와 대나무의 정취를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고자 자기의 아호를 매죽헌(梅竹軒)이라 했다. 성삼문은 매화와 대나무가 가르쳐준 도(道)와 미(美)를 사랑하고 공경하였다. 그리고 그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곧 천하의 정도(正道)요 정리(正理)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궤석(几席)에 놓여있는 매화 분을 바라보면서 인세(人世)의 진훤(塵暄)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형장의 이슬로 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매화에서 고통을 이겨내는 끈기를,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비련을 본다. 한편으로는 제아무리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희망을 찾는다. 쉽게 사랑하고 헤어지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매화와 같은 사랑을 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스마트폰 문자대신 시간이 걸리고 성가시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담아 손편지를 써 보면 좋을 것 같다.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폭이 달라질 것이다. 잘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꽃을 피워낼, 내면의 아름다움을 잘 찾아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마음으로 매화를 즐기는 우리가 됐으면 싶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93/2024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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