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금강산 관광때 있었던 일들의 이야기<3>

<김명열>금강산 관광때 있었던 일들의 이야기<3>

지난주에 이어서..

남한측 관광객 한명이 북한의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끌려갔다는 소식을 접한 현대아산측과 한국정부측 관계자들 역시 벌집을 쑤셔놓은 듯 난리가 났고, 곧이어 비상소집이 이루어져 긴급회의를 했으며, 북한측에 선처와 용서를 바라는 사절단을 보내 협상을 시도했다.

그 관광객이 찍은 사진을 북한군이 검색을 해 보니, 그곳에는 북한군인의 모습은 없었고, 벼가 심겨진 논두렁의 모습만 담겨 있었다고 한다. 하늘이 도와서인지, 그 사람은 북한군인들의 일하는 모습을 찍는다는 것이 버스가 빠르게 달리다 보니 그 모습을 지나쳐 논두렁의 벼가 심어진 모습만 찍혀있어서 간첩, 스파이 누명을 벗을 수 있었고, 그 대신 ‘북한의 벼농사가 잘 안된 것을 찍어 남한에 가서 체제 선전용으로 사용하려고 촬영한 것’이라고 뒤집어씌우고 우기는 바람에, 협상에 협상을 거듭한 끝에 적지 않은 벌금을 북한측에 지불하고 그 남자는 오후 늦게 풀려났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전해들은 이야기임).

어쨋거나 삼일포 구경을 가면서 일어났던 무서운 사건의 이야기를 적어보았다. 삼일포를 가면서 차창 밖을 보니 군데군데 군인들의 병영 막사가 보였고, 저쪽의 산모퉁이 안에는 위장망을 쳐놓은 대포 같은 것도 보였다. 이렇게 군용 시설들이 있으니 그들은 그곳을 지나가는 남한의 관광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하며 감시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 관광객이 멋모르고 사진을 찍다가 된통 걸려가지고 혼쭐이 나서 돈만 털리고 돌아왔다. 이곳에서 휴전선이 바로 코앞이고 보니 그 군인들의 신경이 예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과 같은 비슷한 사건이 1999년 6월20일에도 금강산 관광 중 남한 측 여성 관광객 한명이 북측에 붙잡혀가 억류되었다가 6일만에 풀려난 사건이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1999년 6월20일, 남측 여성관광객이 북측 안내원과 대화를 나누던 중 귀순공작을 이유로 북한에 억류되면서 금강산관광이 일시 중단되었다. 동년 7월30일 남한측의 현대아산과 북측의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가 베이징(북경)에서 관광세칙과 신변보장 합의서를 체결했고, 다음달 8월 5일부터 금강산관광이 재개되었다.

금강산관광객 억류사건은 남북을 왕래하는 사람들의 신변안전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당국간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고, 이후 남북정부간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 체결이라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2008년 7월, 금강산관광객 피격 사망사건과 2009년 3월30일 개성공단 내 현대아산 근로자 억류사건이 발생하면서 합의서 개정의 필요성이 다시 재개되었다. 2010년 2월 개성에서 당국간 실무회담이 개최되었으나 아무런 진전없이 종료되었고 현재 까지도 금강산관광은 중단된 상태에 있다.

사진 촬영을 하다 붙잡혀간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며 궁금증과 걱정속에 분위기는 착 가라앉은 상황에서 우리 일행을 태운 관광버스는 삼일포에 도착했다.

금강산관광지구가 위치한 강원도 북측지역 온정리에서 동쪽으로 12Km, 자동차로 30여분을 달려야 도착할수 있는곳에 삼일포라는 호수가 있다. 삼일포는 바다가 아니라 호수다. 원래 이곳은 바다와 연결된 포구였으나 3천년전에 토사가 흘러 바닷물을 막으며 호수가 된 석호라고 한다. 호수 서쪽은 국지봉 등 나지막한 36개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막아 서 있으며 동쪽은 평지로 트여있어 동해를 바라볼 수 있다. 삼일포는 타원형으로 동서(8Km) 보다 남북(15Km) 방향이 더 길며 호수 가운데는 와우도(臥牛島)를 비롯한 4개의 바위섬이 있다. 경치가 아름다워 옛 부터 일찍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북한은 이 호수를 천연기념물 지리부문 제218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삼일포는 입구에서부터 ‘김정숙 여사 사적지=김일성 부인’, ‘민중의 기(旗),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로 시작되는 ‘적기가’등이 커다란 자연바위에 적혀있었다. 그것을 본 남측의 여행객들이 그 글씨들로 인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 살펴보았는데, 실상 여행객들은 크게 개의치 않고 그대로 인정하며 관광을 즐겼다. 오히려 그런 구호성 문구들 앞에서 사진 한장 찍기를 잊지 않았다.

삼일포관광 북한 안내원 김모양(나이가 23세라고 함)은 인물 또한 밉상이 아니다.

어딘지 모르게 남한의 여성과는 다른 분위기와 미모를 풍기는 김양은, 북한의 유행가를 불러주는가 하면 호기심어린 질문을 친절하게 받아넘겨, 북한의 사람들과 한 마디라도 나누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의 갈증을 풀어주었다. 어느 관광객이 그녀에게 물었다. “아가씨 아직 미혼인데 멋있는 남측의 총각과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은 어때요?”. “글쎄요, 아직도 그런 총각은 구경꾼들(관광객)중에는 없었드랬어요, 좋은 총각 있으믄 소개해주시라요, 여기 손님들중에 나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시라요.” 이 말에 수많은 관광객들 중에서 ‘여기요, 나요 나,’ 등등 남한에서 관광을 온 젊은 청년들이 손을 들고 신청을 했는데, 그 아가씨 하는 말 “지금은 내가 일 보느라고 바쁘니까시 나중에 보시자요” 하며 임기응변도 대단하다. 그 안내원 아가씨는 노래도 무척 잘했는데, 관광객들의 요청에 의해 몇곡을 불렀는데, 고음 이었지만 음색도 곱고 박자와 음정도 고르게 노래를 썩 잘 불렀다. 금강산 관광중에 북한측 접대원이나 안내원과 사진을 찍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잘못 사진을 찍었다가는 체포되어 끌려가기가 십상이다. 그렇지만 나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사진 한장 찍어보기로 작심했다. 마침 곁에는 지도원(감시원)동무가 있었다. 그의 곁에 가서 ‘지도원 동무 아저씨, 죄송하지만 기념으로 사진 한장 저 안내원 아가씨 곁에서 찍으면 안되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그 지도원 동무는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내가 그렇게 스파이나 깡패,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던지, “딱 한장만 찍기라요, 날래 찍으시라요” 한다. 그래서 잽싸게 그 노래하는 안내원 옆에 가서 한장 박았다.

금강산 이곳저곳을 구경다니다 보면 일정한 지점, 장소에는 외화벌이 노점상들(아가씨 2명 1조)이 있는데, 자기들의 음료수, 빵, 과자 등을 팔아달라고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손짓을 한다. 나처럼 수더분하고 늙수구레한, 마음씨 좋게 보이는 아저씨에게 다가와 아양을 떨면서 “이거 안 팔아주면 다리가 저려서 못가요”하고 길을 막는다. 그녀들의 간절한 청을 뿌리칠 수 없어 싱가폴과 합작으로 만들었다는 캔 커피를 하나에 3달러를 주고 사서 마셨는데, 맛도 없고 비위도 상해서 먹는 척만 하고 어느 만큼 내려와서 버렸다. 기념으로 과자하나 사볼까…? 생각하며 봤는데 위생상태가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선뜻 사지 못하고 망설이다 그만 자리를 떴다.

삼일포 앞에는 큼지막한 2층짜리 건물이 있는데 2층은 북한의 유명 화가들의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아래층에는 음식을 파는 카페겸 식당, 그리고 건물 앞 넓은 마당에는 장 마당처럼 각종 북한산 물건들을 내다놓고 팔고 있었다. 그 옆에는 장작불을 피워놓고 그 위에 그릴을 얹어 돼지고기를 구워서 팔고 있었다. 옆의 기다란 테이블에는 각종 주류와 음료수들이 진열되어 있어 관광객들의 구미를 자극하고 있었다.

장작불에 굽고 있는 돼지고기 냄새가 너무나 맛있게 코 속을 유혹한다. 가까이 가 보니, 삼일포관광은 아예 포기한 듯 죽치고 앉아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여러 팀이 있다.

북한산 술이 남측에서 온 관광객들에게는 호기심과 흥미, 관심을 끌어서 그런지 그들 앞의 테이블과 나무그늘 돗자리 위에 둘러앉은 술꾼들 앞에는 술병들이 어지럽게 놓여 져 있다. 때가 늦은 점심때인지라 우리가족은 그곳에서 팔고 있는 돼지고기 3인분을 주문하여 먹기로 했다. 1인분 한접시에 15달러인데, 밥 한공기와 김치가 함께 나왔다. 나는 북한에서 유명하다는 대동강 맥주 한병을 사서 돼지고기 안주와 곁들여 먹었다. 쌀밥을 한숟갈 입속에 넣었는데, 맛이 좋다. 그러나 맥주 한병에 돼지고기 한 접시를 먹다보니 배가 불러 쌀밥은 둬숟갈 뜨고 나서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때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접대원 한명이 “아이고 그 아까운 쌀밥을 왜 버리십네까?” 하고 소리를 친다. <김명열 문학작가> 다음주에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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