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옛날 그 시절의 삼신할미 이야기(민간 풍속 이야기)

<김명열칼럼> 옛날 그 시절의 삼신할미 이야기(민간 풍속 이야기)

한국사람들 치고 나이가 지긋한 연세높은 사람들은 삼신할머니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신에 불과한 삼신할머니의 이야기이지만, 오늘은 그 옛 시절 삼신할미 이야기를 전해드리도록 하겠다.

삼신(삼신할매, 삼신할머니의 정의), 삼신은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인간 세상에서 출산을 돕고, 산모와 갓난아기를 보호하며, 자식을 갖기를 원하는 부인에게 아기를 점지하는 신인데, 삼신할매, 제왕할매, 제왕님네 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여성신격 이다.

삼신의 어원은(삼줄, 삼 가르다)등의 사례로 미루어 본디 (삼)이 포태(胞胎)의 뜻이 있어 포태신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산신(産神)이 한분이라 하는데, 어떤이는 피 만드는 산신, 뼈를 모아주는 산신, 출산을 돕는 산신으로 삼신(三神) 이라 말한다.

사람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아기는 남녀간의 육체적 결합으로 태어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새 생명의 탄생은 단순히 동물적 교합의 결과물이 아니다. 흔히 사람은 아버지로부터 뼈를 빌리고 어머니로부터 살을 빌려 태어난다고 한다. 또 아버지는 하룻밤 신세고, 어머니는 열달 신세라는 말도 있다. 이처럼 새 생명은 부모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태어난다.

하지만 부모의 의지만으로 생긴다고 말하는 건 너무 단편적 이야기다. 우리 조상은 아무리 부모가 아이를 갖고자 해도 신의 점지가 없으면 안 된다고 믿었다. 아이는 삼신할미의 숨을 빌려 태어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선조들은 아기의 탄생을 신의 뜻이라 생각했다. 아이를 낳으면 (얻었다)고 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없는 아기 점지해주고, 있는 아이 수명장수 토록 키워주는 삼신할미를 집안 시렁위에 모신 경우를 보기가 어렵지 않았다. 삼신할미가 아이를 점지해 태중에서 열달동안 잘 키워주고 순산시킨 후 아무 탈 없이 길러주고 복을 내려 준다고 믿었다. 한마디로 삼신할미는 아기를 점지해주고(生), 명을 주고(壽), 키워주는(育) 신이다. 그런데 이 삼신할미는 한명의 임신부만 돌본다고 한다. 그래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산달이 같을 경우, 며느리는 반드시 친정으로 돌아가서 아이를 낳았다. 삼신은 순산을 위해서도, 엄마의 젖이 부족해도, 아기가 잔병치레를 해도 극진히 모셨다. 아기 엉덩이에 있는 푸른 몽고반점도 삼신할머니가 어머니 배속에서 빨리 나가라고 때린 자국이라고 여겼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은 가장 큰 고통이요 불행이다. 옛날에는 ‘불효삼천에 무후위대=無後爲大’라 하여 3천가지의 불효 조목 가운데 아들 낳지 못한 것처럼 큰 것이 없다고 했다. 따라서 아들을 낳기 위해 명산대천이나 바위, 샘, 돌, 서낭당, 칠성당 등에 빌고 또 빌었다.

우리 선조는 아기가 삼신에게서 숨을 빌려 태어난다고 믿어 임신이 안 될 때에는 아들을 여럿 낳은 산모의 옷을 가져다 입으면 삼신이 옮겨와 자식을 낳을 수 있다고 믿었다. 정월 초하룻날 낳은 달걀을 먹으면 아기를 잉태한다고 믿었다. 또한 황소나 수퇘지의 생식기를 몸에 지니거나 삶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어, 아들 낳기를 바라는 집에서는 아예 암컷은 먹지 않고 수컷만 먹기도 했다.

경상북도 지방에서는 남의 논에서 1백개의 이삭을 주워 밥을 짓기도 했다. 심지어 돌부처나 돌장승의 코를 갈아 그 가루를 마시기도 했다. 코를 가루로 먹는 것은 코가 남성의 성기에 비유되기 때문이었다. 서양에서도 성인 조각상의 성기 부분에서 긁어낸 가루를 물에 타마시면 임신을 할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도 임신을 하면 무엇보다도 뱃속의 아기가 아들인지 딸인지를 가장 궁금해 한다. 꿈에 해를 삼키거나 달을 몸에 받아들이면 아들이라고 여겼다. 구렁이, 호랑이, 뱀, 돼지, 장닭 같은 동물이 나와도, 호박, 무, 고추, 호두. 송이버섯, 은행, 오이, 밤, 가지 등이 나와도 아들이라고 여겼다. 반면 암소, 고양이, 말, 실뱀 등은 딸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태몽 외에 임신부의 생김새와 행동을 보고 성별을 분별하기도 했다.

임신부의 배가 펑퍼짐 하고 둥글면 아들이고 뾰족하면 딸을 잘 낳는다고 여겼다. 산모의 입덧을 보고 판단하기도 했는데, 입덧이 거의 없으면 아들이고, 심하면 딸이라 믿었다. 또한 임신부를 뒤에서 불렀을때 왼쪽으로 돌아보면 사내아이고,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딸이라 여겼다. 특히 임신부가 뒷간에 갈때 이 방법을 쓰면 영험이 있다고 믿었다. 또한 임신부가 즐겨 먹는 음식을 두고서도 남녀 태아를 판정하기도 했다. 가령 쇠고기를 좋아하면 아들이고, 돼지고기나 비빔밥을 좋아하면 딸로 생각했다. 솔가지를 넣어서 임신부로 하여금 씹게 한 다음 뾰족한 부분이 나오면 아들, 밑 둥 부분이 나오면 딸이라 여기는 방법도 있었다. 어쨋거나 현대 시대에서 볼 것 같으면 대단히 미개하고 우스운 이야기 이지만, 그 옛적 시절에는 이렇게 태아의 성별을 구별해 보는 풍습들이 전통적으로 민가에 내려오는 관습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었다.

나의 어렸을적 이야기다.

5남매중의 막내둥이로 태어난 나는 가끔씩 형이나 누나가 나를 향해 하는 기분 나쁜 말이 있었다. 나를 두고 ‘너는 다리밑에서 엄마 아빠가 주워온 아이다’ 라는 말이다.

‘그래? 그렇다면 나의 진짜 엄마 아빠는 누구지?’ 나를 다리밑에서 주워온 아이라는 말은 나중에서 안 사실로 순전히 형과 누나가 나를 놀려주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의 농담이라는 것을 알았지만………그 때만 하더라도 나는 형과 누나의 말을 100퍼센트 사실로 믿었다. 그래서 ‘왜 하필이면 많은 형제들 중에 나만 다리밑에서 주워 왔을까?’하며 항상 의문이 생기고 외로움과 따돌림 같은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며 소외감을 느끼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온 식구가 밥상을 둘러싸고 밥을 먹을때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울음섞인 목소리로 ‘엄마, 아빠, 나를 정말로 다리밑에서 주워왔어?’하고 이내 으~앙 하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갑자기 뜬금없는 이러한 항의 섞인 물음에 엄마 아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도대체 누가 그런 못 된소리를 했느냐? 너는 삼신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우리집에 내려주신 소중한 막내아들인데… 그런말 한 사람이 누구야?’ 하시고 나서 둘러앉은 형과 누나를 번갈아 쳐다보셨다. 도둑이 제 발이 저 린다는 말이 있듯이, 잔뜩 겁을 먹은 맏형이 이실직고 했다. ‘어머니, 우리는 농담으로 했는데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 아버지가 냅다 언성을 높이면서 밥상을 탁 치신다. ‘누가 너희들보고 그런 농담을 하라고 했어? 만약 앞으로 또 한번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면 너희들 모두 집에서 쫓아낼 거다, 쫓겨날 각오가 됐다면 그런 말 해!’ 아버지의 불호령이 내리자 형과 누나는 찍 소리도 못하고 주눅이 들어 얼굴이 벌개져서 벌벌 떨었고?, 그 이후로는 두번다시 다리밑에서 주워온 애‘ 라는 말은 쏙 들어갔다.

나는 울 엄마 아빠가 삼신할머니에게 빌어서 낳은 소중한 자식이다. 우리 엄마, 아빠 말씀 인즉 그러하다. 우리집 5남매는 모두가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합세하여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삼신할미에게 빌어서 세상에 태어났다고 한다. 우리엄마가 출산하면 즉시 삼신상에 올려진 미역과 쌀로 국과 밥을 지어 삼신할머니에게 고맙다고 상을 차려 올리고 다시 산모와 아기의 무탈함을 빌었다. 아무리 빈궁한 때라도 삼신상에는 반드시 쌀로만 지은 흰밥과 미역국을 올렸다. 하루 세번 끼니때마다 삼신상을 차렸는데, 산모에게는 이 상에 올렸던 밥과 국을 그대로 먹게 했다. 삼신상은 기도를 드리는 시어머니(나의 할머니)가 주로 차렸는데, 출산 후 삼일동안은 한번도 거르지 않고 끼니때마다 세번씩 올렸고, 그리고 나면 첫 이렛날, 둘째 이렛날, 셋째 이렛날 (삼칠일)에 새로 국과 밥을 떠 놓았다. 삼신할머니께 드리는 기도는 삼칠일이 지난 후에도 계속된다. 특히 어린아이가 아플때면 삼신앞에 그 어머니와 할머니가 맑은 물(냉수) 한 그릇을 떠놓고 빌었다. 옛날 예방주사나 치료약이 귀하던 때에 동네에서, 시골 온 동네에서는 홍역으로 죽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아이들의 출생신고는 홍역을 치르고 난 후에 면사무소에 가서 출생신고를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평소 자기가 태어난 날이나 그 해가 아니라, 홍역을 겪고 난후 출생신고를 하다보니 나이들이 평균 두 서너살이 줄어서 출생신고를 마쳤다. 나 역시 홍역을 세살때 해서 실제 나이보다 2년이나 늦게 나의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하셨다. 어쨋건 간에 이렇게 아이들이 홍역을 치를때도 삼신할머니에게 빌었다. 그런 이후 얼마후 바로 우리집 옆에 감리교 교단 소속의 독립교회가 세워졌다. 교회당이 바로 옆에 있다보니 자연적으로 우리집 형제자매들은 자석에 이끌리듯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믿는 가정이 되면서 미신의 일종인 삼신 할머니는 우리집에서 쫓겨나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고 미개한 행동의 일들을 우리 엄마와 할머니는 행하셨다. 무지속에 철석같이 믿었던 그 삼신할머니의 믿음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뒤늦게 이지만 우리는 그러한 미신을 믿지 말아야겠고, 그러한 고루한 생각도 하지 말아야겠다. 삼신할머니는 아예 없었던 미신속의 할머니였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58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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