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획 <5>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여러가지 이야기.
(지난주에 이어서………….)
우리의 근대사에 박정희 전 대통령만큼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어떤이는 권력유지를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독재자로 그를 떠 올린다.
또 다른 어떤이는 서민을 위해 눈물을 흘리던 진짜 영웅으로 추억 한다. 과연 인간 박정희의 진실과 진짜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글을 써 올리며 그의 어두운 면 보다는 밝고 빛나며, 일반 서민과 별 다름없는 그의 생활상 일부를 발췌하여 독자들에게 진솔하게 글로 써 알려드리는 바이다. 즉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에 촛점을 맞추고 그의 생애에 있었던 숨겨진 이야기들을 소개하여드리고 있다. 혹자의 사람들이 평가하는 ‘냉혹한 권력자‘의 이면에는 또 다른 모습이 숨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넥타이와 만년필, 전기면도기, 이 세가지 외에는 모두 국산으로 쓸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했다. 국산 넥타이는 매다보면, 잘 풀려서 상공부에 특별히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풀리지 않게 하는 납처리 기술을 당시 국내에 도입할 처지가 못 되었다. 전기면도기는 쓸만 한 국산 제품이 없었다. 그의 죽음 직후(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둔 후 곧바로 근처에 있는 국군서울 통합병원으로 시신을 옮겨갔음) 국군 서울 통합병원의 의사는 낡고 구멍난 허리띠와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을 보고 대통령의 시신인지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전속 이발사는 박대통령의 런닝 셔츠가 너무 낡아서 목 부분이 나달나달 해진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한다.
먹거리에 있어서도 사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국민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데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순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청와대에서 각료들과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 으례히 점심으로 우동이나 비빔밥을 즐겼다. 궁핍하게 자란 그는 가난의 슬픔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바지를 걷고 논두렁에 앉아서 서민(농군)들과 막걸리를 마시는 그의 모습은 동 시대인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특히 1964년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들을 파견한 뒤 그해 12월 루르탄광지역을 격려차 찾았던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재독 한인단체가 발간한 ‘파독광부 45년사’ 에 따르면 그는 준비된 연설문을 밀쳐내고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해도 후손을 위해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라며 연설하다 말을 잇지 못하고 흑흑 흐느껴 울었다. 흐느껴 우는 대통령을 바라보며 광부와 간호사들도 눈물을 흘렸고, 이내 장내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박대통령은 광부들에게 파고다 담배 500갑을 선물로 주고 차에 올랐다. 당시 통역을 맡았던 백영훈 박사는 박대통령은 이들의 모습을 보고 “앞으로 국민이 밥 세끼를 배불리 먹을 때까지 외국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장애인 복지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는 장애인복지 이야기를 꺼내면 “성한 사람도 먹고살기 힘들다”는 면박을 받을 때였다. 박대통령은 국내 최초의 장애인 재활 복지시설인 정립회관을 설립하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영부인인 육영수여사의 각별한 관심도 도움이 되었다. 친 조카가 소아마비를 앓고 있던 육여사는 1965년 한 장애인단체에 당시로서는 큰 금액인 20만원을 쾌척했다. 이 돈이 정립회관 터의 계약금으로 지불됐다. 육 여사 별세 이후에는 박대통령이 직접 지원에 나섰고 정립회관의 현판글씨를 직접 쓰는 등 애정을 보였다. 서민들은 박대통령의 ‘막걸리 행보’를 고단한 삶의 위안으로 여겼다.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이 여전히 박대통령을 가슴 뭉클하게 떠올리는 이유다. 몇년전 어느 모임의 사석에서, 박정희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한국(1960년)을 경제대국으로 만들어놓은 훌륭한 지도자라고 내가 칭찬을 했더니, 어느 사람이 하는 말 “박정희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한국을 경제대국으로 만들어놓았을 것입니다” 라고 말을 한다. 이순신 장군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왜군을 간단하게 물리쳤을 것이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오직 이순신장군만이 일본해군을 물리쳤던 것처럼, 오직 박정희 대통령만이 한국을 경제대국으로 만들어놓을수가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에 독재를 했었기에 국민들은 그를 미워했고 심지어 증오까지 했다. 그 짧은 기간에 경제부흥을 일으키는데는 아마도 독재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나라의 독재자들을 보라. 독재자들은 다들 자기나라의 경제를 망쳐놓았다. 그런데 오직 박정희 대통령만이 한국경제를 발전시켜놓았다. 세종대왕은 한국인에게 한국의 얼을 심어주었다. 이순신장군은 한국을 지켰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을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 나라로 만들어놓았다. 이 3명의 영웅들이 한국의 특출하게 훌륭한 3명의 한국인인 것이다. 그리고 다음은 지난주에 이어서 박대통령의 집권시절 있었던 숨은 비화의 이야기들을 다시 들려드리도록 하겠다.
박정희 대통령의 일화 한토막.
1979년 5월23일(박대통령 서거 5개월 전), 극심한 가뭄으로 농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아주 늦은밤, 마침내 기다리던 단비가 내렸다고 한다. 모두가 곤히 잠든 시간, 박정히 대통령은 조용히 운전기사를 깨워 단둘이 농촌 들녘으로 향했다. 논이 보이자 차를 세우고 박대통령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논 한가운데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캄캄한 밤 어둠속에 논 한가운데로 들어간 박대통령이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자 운전기사는 걱정이 되어 바지가랭이를 걷어 부치고 논 가운데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박대통령은 논바닥에 주저앉아서 어린애처럼 펑펑 울고 있었다.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졌던 논바닥에 물이 흥건히 고여 있고, 심어놓은 벼 싹들은 물을 머금고 생기가 나고 있었다. 박대통령은 벼포기(모를 심은지 얼마안됨)를 붙잡고 “하느님께서도 나의 마음을 아셨다”며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칠흑 같은 밤인데도 대통령의 얼굴엔 흘러내린 눈물이 범벅이 되어 번쩍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운전사도 박대통령을 따라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다음은 피붙이 혈육인 친 누나도 멀리한 박정희 대통령의 이야기다.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그가 어릴 때 그를 등에 업고 다니며 극진히도 돌봐주던 누님이 딱 한분 계셨다. 동생이 대통령이 되었을 당시, 누님은 경제적으로 너무나 힘이 들어서 올케가 되는 육영수여사에게 좀 도와달라고 어려운 부탁의 편지를 보냈다. 너무나 힘이든 나머지 견디다 못해 할 수 없이 마지막 방법을 선택했다. 편지를 받아든 육여사는 친인척 담당 비서관에게 이 편지를 건네주었다. 당시 이 비서관은 박대통령 대구사범 동기생이었고, 박 대통령의 집안일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박대통령 모르게 은행에서 대출을 알선해 박대통령의 누님 아들에게 택시 3대를 사서 운수업으로 먹고살도록 주선을 해주었으나, 나중에 이러한 일들을 우연히 알게 된 박대통령은 크게 노하여서 친구이기도 했던 담당 비서관을 파면하고, 부인인 육여사에게는 앞으로 어느 누구에게든 편의를 봐주면 안된다는 대통령의 올 곧은 마음을 전했다. 아울러 조카가 운영하는 택시 3대를 즉시 처분함과 동시에 누님과 조카를 고향으로 쫓아버렸다. 이 조카는 “삼촌, 대한민국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습니다”라며 울먹이며 대들었지만, 박대통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체 단호하게 고향으로 쫓아버렸다. 누님도 ” 이럴 수가 있느냐?”며 항의하고 원망을 쏟아 부었지만, 박 대통령은 ‘누님, 제가 대통령 그만두면 그때 잘 모시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라며 냉정하게 누님을 외면했다. 그후 누님은 할 수 없이 대구에서 우유배달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대통령인 동생을 원망하면서…..
단 한분, 그것도 자신을 업어 키우며 극진히도 돌봐주었던 단 한분의 누님이 엄청나게 어렵게 살고 있는데, 대통령이 된 지금, 이렇게도 냉정하게 뿌리친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총을 들고 혁명을 일으킨 진정 메마른 눈물을 가진 독재자였기 때문에 감정이 없는 그런 인간이었을까?….
피를 나눈 혈육의 정 까지도 마다하고 공과 사를 분명히 하며, 사리사욕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것이 아니다. 이는 국가관이 확실한 애국심을 가지고 이나라 4천만 국민(그당시 한국 인구)을 먼저 생각하는 탁월한 영웅, 대한민국 역사 이래 진정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후 몇십년이 지난 후,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 역시 집권당시 청와대에는 여 동생인 근형씨와 남동생인 지만씨를 출입을 하지 못하게 한 그 일화도 유명한 사실 이야기다. 역대 모든 대통령들이 친,인척 비리로 얼룩져 불명예스럽게 국민들의 지탄을 받은 사실에 비해 진정 나라를 위하고 올바른 국정을 운영한 구국의 영웅다운 훌륭한 부녀이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01/20220302 <1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