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나의 마음에 평안을 찾아서……..

<김명열칼럼> 나의 마음에 평안을 찾아서……..

 

엣날 이곳에 이민 오기 전, 한국에 살고 있을 때의 젊은 청년시절 (학창시절)에는 친구 및 지인들과 함께 등산을 참으로 많이 했다. 한국의 웬만한 명산을 비롯한 일반 야산 까지 두루 두루 돌아다니며 많은 산을 등산했다. 그런데 그러한 명산 속에는 어김없이 유명사찰(명산대찰 名山大刹=이름난 산과 큰 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때는 등산을 하다 목이마르면 절에 들러 바위틈으로 흘러내리는 약수를 받아마시고 또한 그 물을 수통에 담아오기도 했다.

절에 들어가면 불교신자도 아니면서 무엇에 이끌리듯이 대웅전 앞에서 합장을하고 부처님께 허리굽혀 절을 올린적도 여러번 있었다. 어느사람(사찰생태 연구가 김재일씨)는 절이 좋아서 전국 108곳 사찰을 찾아다니는데 무려 7년이 걸렸다고 한다. 북한의 금강산 건봉사에서 땅끝 해남의 미황사를 거쳐 바다건너 제주도 한라산의 관음사 까지, 바다위에 뜬 서산 간월암에서 해발 1244m의 설악산 봉정암까지, 서울의 도심속 봉은사에서 산중 오지인 산내 암자에 이르기까지 안 가본 사찰이 없다고 했다.

나는 이 사람처럼 그러한 사찰을 전부 방문하지는 못했으나 그중에 몇군데는 등산과 더불어 절에 들어가 무공해의 산채나물과 하얀 백미의 쌀밥, 그리고 창자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물도 얻어 마셨다. 맛있는 밥을 얻어먹고 답례로 주머니속에서 얼마간의 시줏돈을 보시 하기도 했다. 그러고 난후 근처의 시원한 나무그늘 밑 바윗돌 위에 걸터앉아 산등성이 너머로 유유히 바람타고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보고 있노라면 왜 그런지 나의 몸과 마음은 차분해지고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왜 사람들은 절에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할까? 생각을 해 보았다. 절에 가면 부처님도 계시고, 스님도 있고, 신중단도 있다. 스님들은 밤낮없이 염불을 하고 있다. 염불은 단순히 경전을 읽고 외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속 염불속에는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특별한 기(氣)가 울려퍼지는 소리이다. 법당에서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 스님의 염불 소리는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달래주고 또한 수없이 떠도는 보이지 않는 영가(靈家)들의 마음까지도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글 내용중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는 것을 보았다. ‘자연이 대 우주라면 사람의 마음은 소 우주입니다. 어떤 누구도 우주를 움직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단지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것뿐, 그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 절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스님이 부처님을 대신하여 경전을 외우고 존재하는 모든 마음자리를 편안하게 하여 최후에 극락왕생 할수 있도록 길을 가르쳐주는 곳이 절이고 경전이다. 경전이란 우리가 가는 길을 깨우쳐 주는 나침판인 것이다.

이상은 절에 가서 보고 듣고 얻은 것들을 종합해서 내 나름대로 적어본 것이다.

‘내 마음을 다스려야 삶을 다스리고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우리들의 삶은 수많은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 아픔, 생활의 슬픔, 등등 수없이 많은 불행의 쓰나미가 항상 내 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이와 같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들 말하기를 환경의 구속을 받고 산다고 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환경과 운명은 언제나 똑같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한 장애와 어려움을 극복 못하고 사는 사람은 슬프고 불행하게 살게 되고,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은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과 내 운명을 다스리기 전에 나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마음을 다스리면 환경과 운명을 다스리는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성경말씀에 보면 잠언 16장32절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견고한 성을 빼앗는 것이 쉬운 일일까?.

성 안을 지키고 있는 군대들이 성안에서 끊임없이 강력하게 저항을 하는데 성을 빼앗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일까? 그러나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성을 빼앗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면 그 마음에 다스리는 능력이 발생하여 성을 무너뜨리고 마는 것이다. 성을 빼앗으려고 하기 전에 마음을 다스리면 성이 무너진다는 말은,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환경과 운명의 성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절에 가보면 대부분의 스님들 세납(나이)이 일흔을 훌쩍 넘긴 분들이 많이 있다. 겉으로 살펴보면 연세가 많지 않은것 같은데 물어보면 의외로 나이들이 많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은 외지인이나 또는 절 안에서 함께 기거하는 동자승에게도 같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하루는 동자승이 무례를 무릎 쓰고 세납(연세)을 물었다. “큰 스님, 올해 세수가 어떻게 되십니까?” “그건 왜 물어 이놈아” “그냥요, 이리봐도 저리 봐도 헷갈려요” “허허 이놈봐라, 세속에서 산 세월이 20년이요 부처님하고 산 세월이 60년이니 갈 날이 꼭 1년밖에 남지 않았다”. 대개 스님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81세에 열반하셨으니 81세까지 사시려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알고 있는 스님들은 부처님보다 오래 사신분들이 많고 아직도 정정하다. “그럼 여든이시네요” “그놈 계산도 잘하네, 이놈아 그런데 너 사람이 오래 사는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 하냐?. 사람이 오래 살고 싶으면 마음이 먼저 건강해야 한다. 우리 몸에는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義)의 육근(六根)이라는 여섯 도둑놈이 있는데, 이 여섯놈의 욕심이 지나쳐 사람의 생명을 빨리 거두어 간다. 그러니 이 도둑놈들을 잘 다스려야 하느니라” “스님, 여섯놈의 도둑놈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1) 예쁜 것만 보려는 눈이라는 도둑놈, (2) 그 자신에게 좋은 소리만 들으려는 귀라는 도둑놈, (3) 좋은 냄새만 맡으려는 코라는 도둑놈, (4) 맛있는 것만 쳐 먹으려는 입이라는 도둑놈, (5) 쾌감만 얻으려는 육신이라는 도둑놈, (6) 그리고 명예와 권력에 집착하려는 생각이라는 도둑놈, 그리고 이 여섯 도둑놈을 다스리는 놈이 바로 마음인데, 이를 잘 다스려야만 오래 살 수 있다. 이 여섯 도둑놈들이 자꾸 번뇌를 일으켜서 우리 몸을 빨리 망치게 하기 때문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108번뇌라는 숫자는 안이비설신의 육근과 색석향미촉법의 육경, 좋음, 나쁨, 평등 이라는 호악평등(好惡平等)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가 끊임없이 작용하여 생긴 것을 말한다.

즉 육근에 육경을 더하면 12개, 거기에 호악평등 3을 곱하면 36, 여기에 과거, 현재, 미래의 3을 곱하면 108이 된다. 말하자면 108번뇌는 우리가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반복하여 작용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육근이라는 번뇌의 도둑을 조종하는 내 마음을 잘 다스려야만 건강한 삶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1) 제행무상(諸行無常)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형태 있는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 ‘나도 죽고 너도 죽는다’라고 인정하고 세상을 살아라. 죽음을 감지하는 속도는 나이별로 다르다고 한다. 청년에게 죽음을 설명한들 자기의 일이 아니라고 팔짱을 끼지만, 노인에게 죽음은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다. 언제 죽음이라는 멍애를 짊어지고 버스를 타고 떠나가듯이 버스가 오면(죽음이 닥치면) 버스를 타고 떠나야 한다. 종교, 부모, 남편, 아내, 가족 등 어느 누구도 그 길을 막을 수 없고 대신 가지 못하며 함께 가지도 못한다. 하루하루, 촌음(寸陰)을 아끼고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2)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헤어짐이 세상사 법칙이고 진리이다. 사랑하는 사람, 일가친척, 남편, 부인, 자식, 부모형제, 명예, 부귀, 영화, 이 모든 것을 영원히 움켜쥐고 싶지만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간다. 인생살이는 쉼 없는 연속적인 흐름인줄 알아야 한다. 매달리고 집착하고 놓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이 바로 괴로움의 원인이며 만병의 시작인 관계로 내 마음을 새털같이 가볍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3)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운사람, 싫은 것, 바라지 않는 일, 등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 원수, 가해자, 아픔을 준 사람,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은 살다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고, 가난, 불행, 병고, 이별, 죽음 등등 내가 피하고 싶은 것들이 나를 찾아온다. 세상은 돌고 돈다. 빙글 빙글……. 주기적 사이클로……

나도 자연의 일부인 만큼 사이클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이를 라이프 스타일 (Life Cycle)이라고 한다. 현명하고 지혜롭고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은 능히 헤쳐 나가지만 우둔하고 어리석고 매사에 소극적인 사람은 그 파도에 휩쓸리고 만다. 때문에 우리는 늘 마음을 비우고 베풀며 살자.

(4) 구부득고(求不得苦) 구하고자, 얻고자, 성공하고자, 행복하고자 하지만 세상살이가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내가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어지면 고통도 없고 좋으련만 모든 것은 유한적인데 비해 사람의 욕심은 무한대 이므로 아무리 퍼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와 같다. 그러므로 욕심덩이가 가득한 마음을 조금씩 덜어 비워가야 한다. 자꾸 덜어내고 가볍게 할때 만족감, 행복감, 즐거움이 나를 따른다. 마치 형체를 따르는 그림자 같이………..

‘모든 일은 나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라는 말이 있다. 마음을 어떻게 먹었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워하는 사람도 내가 고운 눈으로 곱고 사랑스럽게 봐 주면 정이가고 사랑스런 사람이 된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내 마음을 고쳐먹고 소중하게 여기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된다. 모든 것은 나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안될것 같은 일도 내가 굳게 마음을 먹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어주는 힘이 바로 나의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

옛날 조선시대 학자 퇴계 이황은 명나라(1424년)에 저술된 ‘구선활인심법’에서 그 가운데 심신의 수양과 관련이 깊은 상권의 내용을 필사하였다. 필사하면서 제목을 ‘활인심방’이라고 붙였고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병은 마음으로 말미암아 생긴다’ 활인심방에는 마음은 사람의 근본이어서 마음을 잘 쓰면 병 없이 오래 살지만 마음을 잘못 쓰면 병이 나서 일찍 죽게 된다고 적혀있다.

옛날 신성(神聖)의 한 의사는 사람의 마음을 살필 수 있어서 미리 병이 나지 않게 하였다. 오늘날의 의사는 사람의 병을 다스릴 줄만 알고,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 줄 모르니 이는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추구하며 근원을 추궁하지 말고 그 말류만을 다스리는 것이니, 병이 낫기를 바란다면 어리석지 않겠는가?

비록 한때 요행으로 낫게 하더라도 이것은 세상의 용렬한 의사로 취할 것이 못 된다. 병은 마음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업은 마음으로 말미암아 짓게 된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에서 병이 생긴다는 이야기는 과거에만 해당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현대사회는 엄청나게 복잡하다. 복잡한 사회를 살다보면 온갖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한 삶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는 모두 마음과 관련된 병들이다. 그러나 과학은 객체를 알지만 주체인 마음을 알지 못한다. 과학적 교육만 하는 학교에서는 마음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교육과 학문이 마음을 버리고 돌보지 않으니 어찌 병이 나지 않겠나?………..

‘성인은 병이 나기 전에 다스리고, 의사는 병이 난 뒤에 다스린다’ 병이 나기전에 다스리는 것을 ‘마음을 다스린다’고 하고, 또는 ‘수양 한다’고 한다. 병이 난 뒤에 다스리는 것은 약과 음식, 혹은 침과 뜸 이라고 한다. 다스리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지만 병의 근원은 하나이니, 사람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생기지 않는 것이 없다. <이상 활인심방 서문>

최근 우리 사회에는 화를 참지 못하고 병이 나는 이들이 많다. 병원에 가서 보면 스트레스 환자들이 대부분 이들이다. 이들은 마음을 다스릴 필요성과 그 방법을 알지 못해서 이다. 병을 고칠 의료시설과 기술은 넘치지만, 정작 병을 예방할 수 있는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는 모두가 어둡다. 우리도 퇴계처럼 ‘활인심방’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마음을 잘 다스린다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정신적으로는 물론, 육체적으로도 더욱 건강하게 살아 갈 것이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00/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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