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세상에서 듣기 좋고 아름다운 소리.

<김명열칼럼> 세상에서 듣기 좋고 아름다운 소리.

소리란 무엇인가?

소리의 정의를 말하자면, 어떤 물체의 진동에 의해 발생한 공기의 압력변화를 우리는 소리라고 부른다. 고막은 소리를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기관이며 듣기 좋고 아름다운 소리는 감동과 울림을 주어 인간과 교감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듣기 좋고 아름다운 소리라고 하면 음악이 될 것이고 그 음악중에서도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는 합창과 합주가 될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 경직돼있는 몸과 마음에 여유와 안식을 제공해준다. 세상의 소리는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소리, 도구를 사용하는 소리, 악기와 사람의 음성을 조화롭게 표현한 노래 소리 등 다양한 소리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아마도 자연의 소리일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에서 우리는 감동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깊은 산속에서 나무와 숲을 지나치는 바람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소리를 여러분들은 경험했을 것이다.

인간은 아마도 자연이 내는 소리를 닮고 싶어서 음악도 만들고, 악기도, 노래도 만든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바람이 불면 그 속에 묻혀 소리를 내고 비가오면 빗소리에 빠져 그 소리를 내기도 하고 가을 낙엽이 떨어지면 가을의 정취속에서 떨어지는 소리와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출해 내는 자연은 훌륭한 연주자이자 반주자 이며 지휘자이고 연출가 이다. 자연은 곳곳에 각자의 소리와 음률을 내는 악기를 쌓아놓고 필요에 따라 아름다운 소리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 악기들은 각자의 소리를 내되 전체의 음률에 맞추어 조화로움을 유지하고 있으며 자신만이 돋보이고자 큰 소리를 내거나 소리도 지르지 않는다.

더욱 조화로운 음의 의미를 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소리를 줄이는 희생을 감수한다. 이러한 조합과 융화,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위해 자신을 조금씩 맞추어가는 존중의 모습이 바로 자연의 모습이다.

자연은 먼저, 봄이면 자연은 생동하는 소리를 우리에게 귀로 들려주고 눈으로 보여준다. 여름이면 활발한 모습을 자연의 성장과 함께 빗소리를 들려준다. 가을에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장중함의 소리와 자연의 웅장한 결실의 풍성함, 그리고 넉넉함의 소리를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겨울에는 쓸쓸함의 모습과 소박함을 보여주고 빈 공간의 소리를 들려준다. 그러나 겨울은 떠나간 계절의 모습의 황량함과 함께 여백의 의미와 다음에 다가 올 찬란한 봄의 열정을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의 소리는 진솔함, 담백함, 단순함과 함께 표현할 수 없는 장중함과 웅대함을 담고 있다.

때로는 인간을 꾸짖듯이 천둥 번개 소리로 인간의 추악함을 성찰하게 하고 때로는 화창한 봄날에 햇빛 속에 다정함과 따듯한 소리를 가슴으로 전달한다. 자연은 귀로도, 눈으로도, 피부로도, 폐로도, 다양한 소리와 다양한 의미를 전달하고, 순환하면서 그때마다 비슷한 것 같지만 다양하고 또 다른 소리와 메시지를 전해준다. 때로는 생동과 활기를, 축적을, 공허한 여백을 줌으로써 인간에게 인간다움을 회복하며 살수 있도록 교훈을 준다. 자연은 우리에게 잘못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힘들고 지쳐있을 때 안식과 여유를 주고 충전의 기회를 준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마음의 깊이와 넓이를 갖는 자연의 소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자연의 소리도 대단히 아름다우며 인간들의 정서나 삶의 기폭제가 되고 도움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연의 소리 못지않게 너무나 아름다운, 성인 남성들의 가슴을 부풀게 하고 솟아오르는 침을 꿀꺽 삼키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

여러분들은 해군성 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해군성(海軍省)은 해군들을 관리하는 정부 부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까지는 육군성과 구분되어 독자적으로 운영되었으나 합동작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국방부로 통합된 상태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해군성은 이러한 해군성이 아니고 또 다른 해군성이다. 그 해군성(解裙聲)은 즉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라고 한다. 뜻풀이를 한다면, 解(풀 해, 벗을 해), 裙(치마 군), 聲(소리 성) 이다.

옛날 이조시대 때, 어느 절에 혼자서 30년이 넘게 벽만 쳐다보며 도를 닦는 스님이 계셨다. 이러한 고매하고 도를 통달한 스님을 시험해 보고자 호기심이 생긴 황진이가 자신이 여자 됨을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느 늦 여름날 저녁 무렵, 이 깊은 산속에서 갈 데가 없으니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스님에게 애원한다. 용모도 아름답지만 비에 젖어 하이얀 속살이 내 비쳐보이는 여인의 모습은 가히 선정적이다. 거기에 덧붙여 여늬 남자들에게는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가련함이 더해 이러한 유혹을 떨치기란 전봇대를 뽑아 이빨을 쑤시기보다 더 힘든 일이다. 그러나 도가 트인 스님인지라 그는 선뜻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너무나 담담하게 그러라고 승낙한다. 이미 도의 경지에 있었던 터라 여인과 한 방에 있다가 유혹을 해도 파계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깊은 밤, 산사(山寺)의 방에는 희미한 촛불만 타고 있었다. 돌아 앉아서 벽을 보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스님의 등 뒤에서 여인은 조용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해군성 벗을解, 치마裙, 소리聲, ………..

희미한 어둠 속, 숨소리조차 크게 들릴 듯 한 적막하고 조용한 정적(靜寂) 속에서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만큼 아름다운 소리가 세상에 또 어디 있으랴?……. 30년의 고행속 뼈와 살을 깎는 수도승의 고매한 수도 생활은 이 치마 벗는 소리에 한 순간에 무너져버리고 만다.

물론 이 야기는 진짜인지 거짓인지의 진위 여부를 떠나, 당시 성리학자들이 불교를 폄하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짜 이야기라는 소문도 설득력이 크다.

어쨋거나, 조선조 효종때 홍만종의 명엽지해(蓂葉志譿)에서 소리의 품격을 따지는데, 우연히 어느 벼슬아치의 환송 회식에 참석한 정철과 유성룡, 이항복, 심희수 그리고 이정구 등 당시의 학문과 직위가 쟁쟁한 이 다섯 대신들이 한창 술잔을 돌리면서 흥을 돋우다가 ‘들려오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는 시제를 가지고 시를 한 구절씩 읊어 흥을 돋구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자 각자 이러한 시를 읊었다.

청소낭월 누두알운성(淸宵朗月 樓頭遏雲聲)정철 송강(松江) ~ 맑은밤 밝은 달빛이 누각 머리를 비추는데, 달빛을 가리고 지나가는 구름의 소리.

만산홍수 풍전원수성(滿山紅樹 風前遠岫聲)심희수 (一松) ~ 온산 가득찬 붉은 단풍에 먼산 동굴 앞을 스쳐서 지나가는 바람소리.

효창수여 소조주적성(曉窓睡餘 小槽酒適聲)유성룡(西岸) ~ 새벽 창, 잠결에 들리는 작은통에 아내가 술을 거르는 그 즐거운 소리.

산간초당 재자영시성(山間草堂 材子詠詩聲)이정구(月沙) ~ 산골마을 초당에서 도련님의 시 읊는 소리.

동방양소 가인해군성(洞房良宵 佳人解裙聲)이항복(白沙) ~ 깊숙한 골방 안 그윽한 밤에,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

이날 저녁 그자리에 모인 모두는 오성대감 이항복의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가 제일 압권이라고 입을 모으고 칭찬했다.

1938년 1월, 조선일보에 발표된 신춘문예 당선작인 김광균의 시 설야(雪夜)에서 ‘첫 눈’을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비유하고 있다. 깊은 밤에 눈 내리는 소리가 시인에게는 마치 어둠속에서 치마끈을 풀어 치맛자락이 사르르 흘러내릴 때의 신비롭고 매혹적인 소리처럼 들린 것이다. 앞서 설명한 다섯명의 조선시대 학자와 정치가들의 이야기를 다시 곁들여보자. 그 당시 당대에 내노라하는 대 학자요 문장가이며 정사를 좌지우지 하는 정치가들 이었지만, 그들이 아무리 유학의 궤범에 얽매여 살아간다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에 치열하다 보니 어찌 일개 장삼이사(長三李四 = 장씨네 셋째 아들과 이씨네 넷째 아들, 즉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흔히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보통사람들을 칭함)나 무엇이 다르랴………

이 이야기는 음란스럽다기 보다는 얼마나 그윽한 정감과, 함부로 흉내 내기 어려운 멋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오는가. 이 멋진 선량들의 풍류와 해학과 멋! 정말로 한 시대를 풍미하고도 남기에 족하다. 우리는 어찌해야 저들의 그림자라도 쫓아갈 수 있으랴…

멋진 해학과 풍자, 그리고 아름다운 시(詩), 이 모든 것이 지금시대의 범부나 필부들에게는 따라갈 수 없는 고매함과 그윽한 멋이 깃들여 있으니 말이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98/2022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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