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감사하는 생활

<김명열칼럼> 감사하는 생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감사하는 사람과, 받은 은혜를 잊고 사는 배은망덕한 사람이다. 은혜를 기억하고 사는 사람의 삶은 성실하고 책임적이다. 이런 사람의 삶에는 감사가 넘쳐난다. 자연히 삶이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지만 불평하지 않는다. 그러나 은혜를 잊고 사는 배은망덕한 사람의 삶은 무절제하고 이기적이다. 그들은 적게 일하고 많은 것을 기대하며 늘 불평속에 산다.

노르웨이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사탄이 씨를 뿌릴 수가 없다’ 이 속담의 배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에 사탄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지구 곳곳에 온갖 나쁜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미움의 씨, 슬픔의 씨, 욕심의 씨, 시기 질투의 씨, 싸움의 씨 등등, 이러한 씨들은 어디에 뿌려도 너무나 잘 자랐다. 그런데 유독 한 동네에서만은 효력이 없었다. 아무리 씨를 뿌려도 싹이 나지 않았다. 이 마을은 세상 모든 것, 범사에 감사하는 마을이었다.

감사의 사람이 되려면 무엇이나 비교를 하지 않아야 한다. 비교는 진리가 없다는 뜻이다. 풍족하면서도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비교의식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세상이 주는 기쁨에 새삼 감사를 하여야 한다. “이 세상 이 땅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체감하는 사람은 결코 혼자가 아니며 삶이 지루하지 않다(레이첼 카슨)”.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주변 세계에서 무엇을 보느냐는 상당부분 선택의 문제다. 당신은 매일 주변의 사물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들 속에서 아름다움, 유머, 매력 또는 신비를 발견하는가?.

아침에 집을 나설 때 그냥 멍하니 무관심하게 사물을 보는가. 아니면 하늘의 색깔과 구름의 모양을 제대로 보려고 하는가?. 길 가를 잰 걸음으로 달려가는 강아지나 또는 푸르른 나무 위를 활개를 치며 날아가는 새를 보고 즐거움이나 상쾌감을 느낄 정도로 녀석들을 자세히 바라보는가?.

우리는 일상적인 일을 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생각에 몰입해있거나 주변 세계에 무심해진다. 이따금 공상에 빠지는 것은 전혀 문제될게 없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일에 더욱 유념하고 집중할수록 그만큼 더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다. 뭔가에 유념하는 것은 선택이며, 연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식사를 하는 중이든, 화초에 물을 주거나 보고서를 쓰거나, 커피를 마시며 명상에 잠겨보기도 하고, 소나무 숲 향을 맡으며 숲길을 산책하는 것, 자신의 마음이 산만해질 때는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는 자연과 주변의 신비에 초점을 부드럽게 옮겨보자. 나의 생각에 생의 신비에 눈을 뜨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헬렌 켈러의 엣세이 ‘사흘을 볼수있다면=Three Day”s to See’를 읽고 또 읽는 것이다. 생후 19개월 무렵 병으로 시력과 청력을 잃은 헬렌 켈러는 이 글에서 딱 3일간만 본래의 감각을 회복할 경우 무엇을 할 것인지 기록한다. 여기서 그녀는 한시간 동안 숲을 산책하고 돌아온 친구와 나눈 대화를 이야기한다. 켈러가 숲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자 친구는 이렇게 대답한다. “뭐 특별한건 없었어” 켈러는 어떻게 숲을 걸으면서 특별한 것을 하나도 못 보았다는 것인지 의아해 한다.

“눈이 안 보이는 나는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한가지 힌트를 줄 수 있다. 이것은 시력이라는 선물을 최대한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충고다. 마치 내일부터는 앞을 못 보게 될 것처럼 눈을 사용하라. 내일 귀머거리가 된다 생각하고 온갖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음악, 새들의 노래 소리, 오케스트라의 강력한 선율에 귀를 기우려라. 내일부터는 더 이상 촉각을 느끼지 못한다 생각하고 만지고 싶은 사물을 만져보라. 내일이면 후각과 미각을 완전히 잃어버릴 것이라 가정하며 꽃향기를 맡고, 한입 한입의 음식을 음미하라. 모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라. 세상이 드러내는 온갖 기쁨과 아름다움에 감사하라”. 때로 우리는 그저 모든 감각을 열고 세상의 신비를 흡수하기만 하면 된다.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지만 우리는 우리 주변과 내면에 있는 눈과 귀와 입과 코와 온 몸으로 감각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보물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고 감사할 일인지 일깨워준다.

사람들이 대개들 말하기를, 매년 11월달과 12월달은 감사의 계절이라고들 말한다. 신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신 이 땅에 인간들에게 일용할 양식들을 결실을 맺게 하여 다음 한해동안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결실을 맺은 곡식을 추수하여 미래에 대비하고, 주신 축복과 은혜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감사의 계절이라고…………….

감사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나는 이따금씩 가까운 분들에게 감사의 반대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라고 물어보면 ‘안 감사’ 가 아니냐고 반문하면서도 자신이 없어 한다. 그것은 사실 감사의 반대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 기쁨의 반대말은 슬픔, 웃음의 반대말은 울음 이라고 빠르게 대답을 할 수 있으면서 감사의 반대말에는 머뭇머뭇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딱히 반대말이 없기 때문이다. 말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사소통에 필요한 것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감사의 반대말은 구태여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니 반대말이 없었다는 것은 이세상의 모든 것에 감사하라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성경말씀 데살로니가전서 5장18절에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은 예수 안에서 너희를 위한 하나님의 뜻 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어, 사실 기독교인들은 범사에 감사하며 살려고 한다. 이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십계명처럼 의무적으로 꼭 지키기를 강요한 것이 아니라 피조물인 인간들이 감사하면 너희들 신상에 좋으니 그렇게 행하라고 권한 것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들에게 나쁜 것을 시키겠느냐고 생각해보면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은 정말 피조물인 우리들에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왜 우리는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 살지를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감사의 반대되는 무엇인가가 우리가 감사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회사에서 직원들은 월급을 받으니 당연히 회사에 충성하고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직원들에게 감사하지 않게 된다. 미국 노동성에서 사람들이 직장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를 조사해보았더니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이 자기들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치를 알아주지 않으니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상대의 가치를 인정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어 하는 직장에 매년 선정되는 소프트웨어 회사인 SAS는 연봉이 미국에서 많은 회사는 아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직원들에게 회사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를 느끼게 하는 회사이다. 그리고 직원들도 내가 열심히 일한 댓가로 매월 월급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특별히 감사할 일이 없다. 그리고 가정에서도 남편은 돈 벌어오는 것이 당연하고, 아내는 집에서 집안일 하고 애들 키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면 아내의 가사 노동에 대하여 감사할 것이 없다. 그러나 남자들이 아내가 아프거나 시골에 있는 친정에 가야 할 일이 있어 집안일을 해보면 아내의 가사 노동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집에서 하루하루 일어나는 집안일 하는 것이 직장에 나가서 돈을 버는 일 못지않게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아내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감사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모든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습관 때문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감사의 반대는 ‘안 감사’가 아니라 ‘당연’ 이라고 생각한다. 잘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이란 없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자. 심지어 현재 일어난 일들이 지금 나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지만 세월이 흐른 후에 보면 그것이 또 다른 축복의 통로였음을 알게 된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1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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