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여자로 태어났기에………..(운명론)

<김명열칼럼> 여자로 태어났기에………..(운명론)

얼마전에 나는 어느 여인으로부터 남자가 아닌 여자로 태어난것을 후회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남.녀의 출생은 선택에 의하여 될 일이 아니라고……… 사람은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서 남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서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부모가 결정하는 일도 아니고 어떤 권력기관의 명령에 따라 되는 일도 아니다.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 자연히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는 말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들이건 딸이건 출생할 때 제1성이 울음인 것은 똑같은데, 울며 탄생하는 새 생명이 타고나는 성(性)때문에 차별을 받아야 하는 사실은 매우 부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얼마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아들을 선호하는 사상이 유별나서 산모가 아들을 낳았을경우 득남(得男)의 소식은 그 부모와 일가친척은 물론 사돈의 팔촌에 이르기까지 경사가 났다고 춤울 추게 했지만, ‘딸이다’라는 한마디에 산모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친정집의 부모는 물론 집안 식구 모두에게 아주 슬픈 소식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기야 딸이 하나만도 아닌데 셋째딸, 넷째딸로 태어난다는 것은 우선 타고난 팔자가 출발부터 고달픈 팔자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요즘도 한국에는 아직도 그런 집안이 더러 있지만, 옛날에는 딸을 경멸하는 풍조가 오늘날의 열배, 백배는 더했을 것이다.

왜 딸을 낳는 일을 그렇게도 싫어했을까? 그것은 그 시대의 사회가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옛날의 농경사회란 무엇보다도 농력(農力)이 필요한 사회였는데 여자란 농사일에 적합치가 않고 거칠고 험하고 힘드는 일은 역시 남자가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노동력면에서 보더라도 딸보다는 아들을 선호했다. 또한 그런 사실만이 문제가 아니라 아들은 자라서 혼인이라는 제도를 통해 남의 집 딸을 물어올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득이었을까. 20여년 동안 키워놓은 노동력과 씨받이를 힘 안들이고 얻어오는 셈이니 유형적인 재산도 늘어나는 셈이된다. 시집온 남의 집 딸은 내 집에 와서 가만히 놀고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시골농가의 초가집 지붕위의 박 넝쿨에 바가지 매달리듯 조롱조롱 ‘새끼들’을 낳아주는 것이니 이게 다 재산이 아니고 무엇인가? 반면에 딸은 시집을 못가고 집에 눌러있으면 그야말로 큰 골칫덩어리였고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혼기를 놓친 딸은 마치 제때에 팔리지 못한 한물간 생선처럼 남들의 시선 밖, 관심 밖의 인물이 되었고 한심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보다는 일찍 개명했다는 서구의 사회도 중세기에는 여자들을 열등인간으로 취급하고 온갖 모욕을 다 퍼부었다. 서양의 중세는 카톨릭교회가 전권을 장악한 시대였는데, 성서 자체가 여자를 한심한 피조물로 보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는지 모른다. 한편 중세의 남자들은 성지를 회복한다는 거창한 꿈을 안고 싸움터로 나가면서 스스로 십자군이라 하였다. 그런데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내를 두고 떠나려하니 마음이 놓이지 않고 이른바 정조대(Chaslity Belt)라는 것을 만들어 아내의 허리에 둘러주었을 뿐 아니라 그것에 자물쇠를 채우고 아예 다른 외간 남자와는 상대하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여자로 태어났기에 그런 멸시와 학대를 받았던 것이다. 만일 전쟁터에서 남편이 죽는다거나 열쇠라도 잃고 돌아온다면 평생을 정조대를 차고 살아야 되는 힘겨운 구속감 속에 일생을 마쳐야 했다. 또한 중세의 남성들은 아내 노릇하는 여자와 연인노릇 하는 여자를 따로 갖고 향락에 빠져 여자의 인권을 유린하며 살았다고 하니 여자들의 애환과 비애가 너무나 크고, 상처치고는 너무나 아프고 치욕적인 상처를 간직한 채 통한의 눈물속에 남자들을 원망하며 세상을 떠나갔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 여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나 죄가 없다. 단지 여자로 태어난것이 죄라면 죄였는데 형벌치고는 너무 가혹한 형벌을 받고 세상을 살다 간 동서양의 옛날 여성들이 불쌍하기만 할 뿐이다. 이제 세상은 아주 많이 확실히 변했다. 뭐니 뭐니 해도 남녀의 관계를 놓고 우리들의 의식과 인식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농경사회가 사라지고 산업사회가 등장하니 여성을 가정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두어 둘 수만은 없게 된 것이다. 사회가 커지면서 여성들의 현실참여는 남성들의 입장에서 일종의 ‘필요악’이 된 셈이다. 남자들만으로는 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거리가 많고 여성이 나서서 일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 추세를 막을 수는 없다. 남존여비의 낡은 구시대적 사상으로는 도저히 이해도 못하고 용납도 할수없는 (해괴한) 현상이 수없이 벌어지는 세상이 된 것이다. 상투를 튼 노인이 이 현실의 광경을 본다면 기절초풍, 낙담할 판이다. 여자를 두고 쇼펜하우어가 뭐라고 지껄였던, 니체가 어쩌고저쩌고 입방아를 놀렸던 간에 이브의 후예들의 전성기인 새 시대가 온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남.녀 평등, 여성해방 등의 모토는 이제 구호에만 그치지 않는 구체적 현실인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건, 이브의 후손들은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되어 이젠 오히려 가정에서는 남성들을 지배하는 무서운 존재들로 변신하여 남성들의 간을 오그라들게 만들고 있다.

현대사회는 꼭 남편이 있어야 하고,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해야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남자가 없어도 얼마든지 여자는 아이를 낳을 수 있다. 현재 지구상의 70여억 인구를 보존할 만큼 냉동정자가 있기 때문이다. 아빠의 존재도 굳이 필요치 않다. 이미 남성과 여성의 전통적인 역할은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누구의 핏줄인가의 문제도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사회적으로 남녀의 역할이 모호해지면서 실제로 남성을 결정짓는 염색체는 쪼그라들고 있는 현상이다. 또 남성의 일을 여성이 더 잘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오늘날 세계의 정세를 볼 것 같으면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주요 국가 지도자로 동시에 활약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최근 영국의 리버풀 대학과 리딩 대학의 경제개발학 연구팀이 지도자의 성별에 따른 각국의 코로나19 방역현황을 조사한 결과 눈에 띄는 차이가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여성지도자가 있는 나라가 남성지도자가 이끄는 나라보다 나은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우선 전 세계 191개국 가운데 여성이 국가 수장인 19개국과 남성이 국가 수장인 나머지 국가들의 감염자수, 사망자 수를 비교 분석했다. 분석 과정에선 국가별 인구수와 인구밀도, 성 평등지수, 경제발전 정도 등을 감안해 조정한 수치를 활용했다. 그 결과 여성 지도자가 이끄는 19개국의 코로나19 평균 감염율 건수는, 여성지도자들이 이끄는 나라의 감염자가 나머지 나라에 비해 눈에 띄게 적었고, 특히 사망자는 절반 수준이었다고 한다. 여성지도자가 이끄는 나라는,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 독일의 전 앙겔라 메르켈 총리, 대만의 차이잉원 총리 등이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와 현실을 보면서 지금 세상에는 딸이 더 좋다는 말이 많이 나돌고 있다. 남녀평등 양성주의 원칙에 의해 한국에서 남자(아들)만이 이어받던 호주제 폐지는 아들에게 목숨을 걸지 않게 하는 제도적 바탕이 되었다. 비행기 태워주는 건 아들이 아니고 딸이라는 말은 농담의 말이 아니다. 잘난 아들은 국가에 바치고, 돈 잘버는 아들은 사돈댁에 바치고, 신용불량 백수 아들만 내아들이라는 우스갯말도 있다. 여자가 가정경영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뜻이다. 아들 부양의 기대를 접었다는 얘기다. 키울 때도 딸이 수월하다. 그리고 정감 스럽고 영리하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제도와 유교 중심의 문화가 남녀평등과 여권신장의 흐름으로 바뀐지 오래인 한국에서는 이미 신생아의 남녀비율이 점차 균등해지는데서 보듯이 남아 선호가 여아 선호로 변화되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의 젊은 부부들 사이에는 딸 낳기를 바라는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첫째가 딸, 둘째가 아들이면 금메달, 딸 둘이면 은메달, 첫째가 아들, 둘째가 딸이면 동메달, 아들만 둘이면 목 매달 이라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로 넘길 말이 아닌 귀담아 들을 말이 되었다. 이래서 지금 세상에는 딸이 아들보다 좋다는 말이 나오나보다. 시대가 변했어도 참으로 많이 변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남자를 선호하는 ‘남아 선호’사상이 강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 우리사회는 여자아이를 더 선호하는 부모들이 점점 늘고 있다. 정부 산하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가 작년에 태어난 신생아 2078명의 부모를 대상으로 ‘임신’중 바랐던 성별을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자 중 아버지들의 39%가 딸을 원했고 27%가 아들을 원했으며, 어머니의 41%가 딸을, 30%가 아들을 원해서 부모 모두 딸을 더 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여자의 운명론을 거론하며 딸(여자)로 태어난 것을 불행으로 여기고 후회하기도 했지만, 지금 세상에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 더 좋고 아울러 여성의 위상도 남녀 차별없이 동등하다. 이제는 여자들이 살맛나는 세상이 된것이다. 그리고 부모님들 역시 늙어서 효도를 받는 것은 아들이 아니고 딸이라는 것을 당연시 하게 여기며, 딸 둘 가진 부모는 비행기에서 죽는다고 한다. 딸들이 하도 많이 해외여행을 자주 보내주기 때문에…………. 반면 아들 둘 가진 부모는 길바닥에서 죽는다고 한다. 이 아들도, 저 아들도 며느리 눈치 보며 밀쳐내다 보니 길가를 헤매다 길거리에서 객사한다는 것이다.

별도로 드리는 말씀은, 글의 내용이 읽기에 너무 부담스러웠다면 이곳의 우스갯 말을 읽고 한바탕 웃어보길 바라겠다.

한 사나이가 하나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사내가 하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은 왜 여자들을 아름답게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이 대답하시길 “너 같은 사내들이 여자를 사랑하라고……” 그 사나이는 다시 “그렇다면 왜 여자들을 바보로 만드셨습니까?”고 여쭈었다. 하나님이 대답했다. “그래야 여자들이 너 같은 사내들을 사랑할테니까………”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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