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한 겨울의 망중한(忙中閑)

<김명열칼럼> 한 겨울의 망중한(忙中閑)

모든것이 정지된 듯한 고요하고 조용한 겨울철, 한 낮이 조금 기울어진 한가로운 오후 시간이다. 하루종일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나 바쁜 시간속에 휴식의 여유마저 잃어버린 개미처럼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가끔씩은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기계가 멈춰 서듯이 일손을 놓고 오후의 망중한(忙中閑)을 즐겨보는것도 좋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나 자신도 잠시 휴식을 취하며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갓 끓여낸 커피잔을 앞에놓고 여유롭게 창밖을 응시한다. 맥 없이 의자에 앉아 회상에 젖어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영낙없이 고독하고 외로운 한 남자가 된다. 하늘은 파랗고 햇볕은 따스하다. 창밖 팜추리가 물그림자에 비쳐 바람에 일렁이며 그 물살 위를 여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물 오리떼들과 잘 어우러져서 조화로운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해주고 있다.

저렇게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겹쳐지는, 희미하게 반 투명으로 비치는 나의 반사된 모습은 스스로를 읽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가끔씩은 갑자기 가슴속 깊은 곳의 아련한 추억들이 떠오른다. 대체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유리창에 보인다. 추적 추적 소리를 내며 떨어진 낙엽위에 물방울을 튕기며 쏟아지는 겨울비가 내리는 그런 날이면 더욱 그렇다.

아 ~ 그것은 아마도 외로움일 것이다. 진정 외로움은 아닐 것이라고 부정을 해 보지만, 그럴 때마다 창 너머의 풍경을 배경삼아 커피잔을 들이키는 스스로의 내 모습을 발견한다. 이렇게 뜨겁고 향기로운 커피는 찬바람 부는 겨울날 오후 창밖의 풍경과도 궁합이 매우 잘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 방 안을 채우는 조용한 음악까지 곁들이면, 숲 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잔잔히 파도치며 울렁이는 호수의 물소리가 들려오며 조그마한 내 서재의 방 안에서는 광활한 대지의 서막이 펼쳐진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외로움에서 벗어나, 나름의 행복을 꿈꾸게 된다. 그리고 그제서야 유리창에 비친 모습 속에 내가 아닌 아상(我想)속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어느 애주가 친구는 무더운 여름밤엔 시원한 맥주가 최고이고, 낙엽이 지는 가을날에는 와인, 그리고 추운 겨울철에는 추위를 녹이며 온몸을 후끈 달궈주는 보드카가 최고라고 했는데…….나는 이 시간 이 계절 나에게 가장 안성맞춤인 음료수는 단연 뜨거운 커피가 최고라고 하고 싶다. 우리들 곁에 찾아와 머물고 있는 이 겨울은 반성과 참회의 계절이다. 탐스러운 열매도, 나뭇잎도 전부다 떨구고는 속살을 훤히 내 보인채 서있는 겨울 나무들, 잘못을 뉘우치기라도 하듯 추위조차 아랑곳 하지 않고 그 무엇을 깨닫기 위해 그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가? 칼날 같은 매서운 북녘 바람에 모진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냥 묵묵히 서있는 나무들, 지난여름 가마솥 불볕 더위에도 끄떡없이 견뎌내며 푸르름을 자랑하던 잎새들이 아닌가…… 진정 소중한 생명이었기에 지나친 욕심도 속죄하고 깊이 뉘우치며 가장 고통스럽게 고행(苦行)의 도를 닦으며 자신의 넋을 구원받기 위해 참회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뼈대만 앙상하게 서 있는 연하고 약한 나무들까지도 매서운 바람에 잠잠히 그 아픔을 참으면서 추운계절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가. 가슴깊이 잘못을 뉘우쳐 참회하느라 영하의 수은주에 떨고, 강한 바람에 부러지는 수난도 이겨내고 있는 겨울 나무들에게 과연 우리네 인간들이 저 초목보다도 슬기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들 역시 탐욕의 댓가를 가장 비참하고 끔찍하게 겪어내야 하는 건 아닐까? 마땅히 고통의 매를 맞는다 해도 거절할 수 없는 우리의 게으름과 악습들……. 행운을 은근히 기대하며 살아오진 않았는가. 겸손함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스스로 잘난 체하며 오직 물질과 황금만을 탐했던 숱한 허욕들을 이제는 깨끗이 씻고서 뉘우치고 참회하며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이 겨울한 철이 필요할 뿐이다. 때로는 당당하게 행동했다고 하지만 교양도 없고 문견(聞見) 또한 부족하다는 걸 해마다 겨울에 와서야만이 깨달을 수 있기에 혹독한 매질로 자신을 때려서 발가벗은 진실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밤이 아니더라도 좋다. 그저 평범한 삶을 얘기하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진실로 뉘우칠 수 있는 삶이길 바라자. 진정 겨울은 잘못된 지난날을 반성하고 참회하여 새롭게 살아가도록 마음을 다잡아주는 계절이라고 한다면, 비록 우리의 영혼이 보잘 것 없을지언정 스스로를 다스려 긴 겨울의 고행을 거친다면 아름다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

이 깊은 겨울, 겨울의 하얀 눈이 내려 이 세상 모두가 황홀하다면, 은백색의 깨끗하고도 성스러운 눈길에 발자국을 수놓아 가자. 자신도 모르게 진정 자신도 모르게 눈위에 무릎도 꿇으면서 그저 감격스럽고 고맙기 그지없다면 눈속에 엎드려 자신을 아름답게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나쁜 욕심들이, 인간 본위 본능의 탐욕이 비워져 간다면 한없이 편안하고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리라. 거기다 자신을 아름답게 바꾼 기쁨의 눈물을 채울수 있다면, 진실로 우리는 새롭게 태어나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한겨울에 들어선 깊은 겨울이 은빛 갑주를 철렁이며 다가오는 봄을 향해 힘차게 진군하고 있다. 아직은 봄을 이야기하기에는 철 이른 감이 들지만, 그래도 이 추운겨울이 지나가는 먼 길목에는 봄이 가냘픈 손짓을 보내며 따스한 햇볕을 등지고 마중을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다.

낮게 드리운 하늘은 안개로 자욱하고 헐벗은 나무들은 추위에 떨며 살갗에는 소슬한 바람이 스쳐간다. 불안함이 짙어지고 낯선 곳에 혼자 던져진 것만 같은 소외감도 엄습해 온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알 수 없는 것이, 한편 외로움과 고독속에 한없이 빠져 들어가 보고도 싶다. 늪에 한번 발을 담그면 밑바닥에 닿은 후에야 비로써 헤어 나올 수 있는 이치인가보다. 사람은 철저한 소외, 불안과 절망속에서도 위안을 찾고 이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이렇게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속에 인간다움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계절은 인간존재의 불완전성과 함께 인간 존재의 존엄과 회복을 생각하게 된다.

일년 4계절,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 속, 봄, 여름, 가을이 제 몫을 다해야 하는 것 처럼 겨울또한 제 본색을 잃지 않고 폭설을 내려주고 강물이 꽁꽁 얼어붙는 맹추위를 던져주며 나뭇가지들이 찬바람 추위속에 떨며 씽씽 울고 있는 매서운 맛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 겨울다운 모습이다. 지금은 온난화다 이상기온이다 뭐다 해서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의 계절지도가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말도 생겨나는데, 딱부러진 겨울을 피하고 싶어 할 이유가 없다. 그래야 계절의 톱니바퀴는 온 힘으로 맞물리며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속담에 “겨울이 따듯하고 여름이 서늘한 해는 나쁜 일이 많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겨울은 겨울답게 춥고 여름은 여름답게 뜨거워야 한다. 겨울은 회상과 우울과 고독의 계절이다. 그것은 지나간 화려했던 계절들을 돌이켜보고 해(年)가 지나가는 허탈감속에서 차가운 밤 바람소리에 가슴 죄는 계절이며 집 떠난 방랑자가 방랑의 고독을 다시한번 느껴보는 계절이기도 하다. 사방이 멈춘 듯이 고요한 오후, 뜨거운 커피잔을 앞에 놓고 회상에 젖어 생각나는 대로 펜을 움직이며 글을 쓰다 보니 어느듯 뜨거운 커피가 식어서 냉커피처럼 차거워 졌다. 우리네 사람들의 마음은 이렇게 뜨거웠다 차거워지는 변덕스러운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뜨거운 커피가 차갑게 식어지면 그 맛을 잃듯이 사람도 따듯한 마음이 식어져 차가운 마음의 소유자가 되면 그만큼 사람의 가치와 품격을 잃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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