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겨울이 머무는 곳 “겨울의 색깔”

<김명열칼럼> 겨울이 머무는 곳 “겨울의 색깔”

서울에 사는 어느 지인의 이야기다. 그 지인의 친구가 몇년전에 식당을 개업했었다고 한다. 그 식당주인은 내부를 리모델링 하면서 식당 안의 벽이나 천정 등을 청색계열의 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 주인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들었다고 큰소리를 쳤다. 내가 알고지내는 그 지인은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나와 어느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근무했었다.

그러다가 미술학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미적인 감각이나 색깔의 조화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그 지인이 보기에 영~ 아니올시다였다. 푸른색은 이성적인 색이긴 하지만 차가운 느낌이 든다. 음식을 먹으면서 차갑다는 느낌을 받으면 소화가 제대로 될까?……. 그 지인이 얼마후 다시 식당에 들렀을때 그 식당주인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손님이 뜸 하다는것이다. 지인이 그 친구에게 권했다. 돈이 좀 들더라도 밝은색으로 바꾸어 보라고……… 식당주인은 그후 천정과 벽은 분홍색으로, 의자와 탁자는 노란색 계열로 바꿨다. 그뒤 차츰 차츰 손님이 늘어났다.

색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을 ‘색채심리학’이라고 한다. 색채 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보통 적색 계통의 색인 빨강, 오렌지, 노랑, 등은 따듯한 느낌을 주고 파랑, 청록, 하얀색 등 청색계통의 색은 차갑고 추운 느낌을 준다고 한다. 어느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컵 두개에 다른 색깔의 물감을 섞고 실험을 했다. 물의 온도는 같았음에도 파란 물감을 넣은 컵 안에 손을 넣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붉은 물감을 넣은 컵 안에 넣었을 때보다 더 차갑다고 말했다. 바로 이처럼 색감이나 온도감 등, 다른 감각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 느낌을 좌우하는 것을 공감각(共感覺)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색채학자 루이스 체스킨은 색이 질병도 치료한다고 했다. 어떤 공장에서 검은상자에 제품을 담아 화차로 운반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후가되면 노동자들이 심한 피로감과 함께 몸의 이상을 호소했다. 고심하던 경영자는 심리학자에게 조언을 구한뒤 상자를 연두색으로 바꾸었다. 놀랍게도 불평이 없어지고 노동 효율도 높아졌다. 여기에서 검정은 무거운 색, 연두는 가벼운 색으로, 무거운 색깔은 사람의 심리에도 무거움을 준다.

사시사철 우리들이 맞이하는 계절은 무슨 색일까? 봄은 겨울의 어두운 색에서 밝은 색으로 바뀌는 계절이다. 흔히 봄철의 햇빛과 봄바람은 노란색의 이미지가 있다. 여름은 폭염이 작열하고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그냥 느낌으로도 땀이 솟아오르는 붉은색이다. 가을은 하늘에서 시작한다. 투명한 남빛으로 변하면서 부쩍 높아진다. 공기는 맑고 기온과 습도가 낮아지면서 공부하기 좋은 때다. 색깔로 치면 푸른색이다. 그래서 시인들이 봄을 감성의 계절, 가을을 이성의 계절로 부르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곁에 자리하고 있는 겨울은 무슨 색깔일까? 단연코 눈과 얼음의 흰색이다. 어릴적 눈만내리면 강아지랑 이리뛰고 저리뛰며, 친구들과 눈싸움도 하며 신나게 놀았던 추억이 새삼 떠오른다. 손을 호호 불면서 눈사람을 만들고 얼음판 위에서 팽이도 치고, 썰매도 타면서 마냥 행복했다.

상상학에서도 눈과 얼음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본다. 바람에 날리는 눈은 예기치않은 행운을 나타내며, 스케이트 타는 꿈은 일이 잘 될 것이라는 표시다. 고드름을 보면 좋은 동료를 만난다는 징조이고, 고드름을 먹으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됨을 의미한다. 겨울의 대지는 하얀 눈이 세상의 어려움을 덮어주기 때문인지 행운과 성공을 상징한다.

우리네 시골에서 눈은 풍요와 즐거움이었다.

코로나19 질병의 확산과 감염의 우려속에 한번도 경험해 본적이 없는 겨울을 맞고 있다. 12월초 일찍 찾아든 추위와 함께 급속도로 확산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덩달아 사람들의 마음도 추위와 함께 움추러들고 있다. 거리두기 강화로 상점들은 일찌감치 문을 닫는 점포들이 많아졌고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귀가를 서두른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를 맞아 휘황찬란한 불빛속에 한창 흥청거려야 할 도시의 밤거리에도 찬바람만이 휑하니 불고 있다. 연말의 그 많았던 모임들도 취소나 축소가 되고, 어쩌다 약속이 생겨도 마스크부터 챙겨야 하는 불편한 날들이 마냥 지속되고 있다. 인간은 늘 관계속에서 살아가야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가장 두려워져버린 세상이다 보니 올 겨울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추위를 타는 것만 같다.

섬머타임이 해제되고 본격적인 겨울철에 접어들면 해는 일찍 지고 밤은 황소꼬리만큼 길어진다. 밤이 긴 겨울밤이 되면 그만큼 고요히 앉아서 생각이나 사색에 잠기는 시간도 많아진다. 옛날 어렸을 적 시골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지금은 아련한 추억속의 잊혀져가는 한장의 빛바랜 사진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 까지 내가 겪었던 모든 일들과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세세히 기억해보는 긴긴 겨울밤을 좋아한다. 까마득히 잊어버렸던 일들을 건져내기도 하고, 사소한 일에 담겨있는 의외로 큰 의미에 놀라기도 하고, 극히 개인적인 사건으로 알았던 일에서 넘치는 사회적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만나고 헤어진다는 일이 정 반대의 의미로 남아있는 경우도 없지 않아 새삼 놀람을 금치 못할때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것에서 만나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의 이러 저러한 지금의 내 모습이다. 그래서 이렇게 기나긴 겨울밤의 사색은 찬 물속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것처럼 마음이 내키지 않는 때도 있지만, 이는 자기와의 대면시간이며 자기 해방의 시간이기 때문에 소중히 다스리지 않을 수 없다. 과거를 파헤치지 않고 어찌 그 완고한 정지(停止)를 일으켜 세울 수 있으며,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않고서 어찌 새로운 것으로 나갈 수 있으랴 생각이 든다.

겨울은 조용히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정든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람과 조곤 조곤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한 계절이다.

모든 걸 떨어버리고 온 몸뚱아리를 송두리째 가감없이 보여주는 계절, 그렇게 가장 정직한 계절이 겨울이다. 황량한 겨울이라고 불평하지 마라. 황량한 것은 겨울이 아니라 불평을 일삼는 사람의 마음이다. 찬바람과 강물이 얼어붙은 겨울의 하늘은 너무나 파랗고 투명하다. 이제서 보니 겨울은 참으로 맑다. 맑음에서 또 새로운 생명의 움이 틀 준비를 하고 있다. 새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봄을 위해서 겨울은 그렇게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청량한 사색은 겨울만의 자랑이다. 겨울은 바람의 집이다. 천지를 떠돌던 바람들이 모두 다 겨울로 모여든다. 바람은 산에 안기고 나무의 허파 깊숙이 파고든다. 수시로 화가 나서 바다의 귀싸대기를 세차게 때리기도 한다. 바다는 엉엉 울면서 바람에게 한 자락을 내어준다.

겨울에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눈이다. 나뭇가지마다 피어난 눈꽃은 보기에도 참으로 아름답다. 순백을 바라보면 눈이 시리고 가슴은 따듯해진다. 옛날에 내가 추운 북쪽지방에 살때는 겨울에 내리는 눈이 그렇게 싫고 지긋지긋했는데, 이곳에 와서 오랫동안 살면서 눈 구경을 못하다보니 이제는 눈이 보고 싶고 눈에 대한 그리움도 생겨난다. 생각해보니 눈이 좋다. 싸락 싸락 내리는 눈도, 함박 함박 내리는 눈도 그냥 좋다. 늘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포근함을 주고 여유를 잃지 말라고 어깨를 감싸주는 눈을 바라보는 동안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삶은 얼마나 치열해야 하는지 자각하게 된다. 눈은 누구에게나 행복과 추억, 사색과 낭만을 선물해주는데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런 때는 가까운 커피샾에라도 들어가 아메리카노 커피향을 음미하면서 창밖을 내다 보는 것도 낭만적이다. 이럴때 가까이 지내는 친구라던가 혹은 따듯한 마음을 가진 지인,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 남편을 위해 평생을 수고하고 헌신한 사랑하는 아내가 곁에서 함께 정담을 나누며 뜨거운 커피를 마셔준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다.

옛날 이러한 겨울밤, 내 고향의 춥고 긴 겨울밤에는 밤새 부엉이가 부엉부엉 소리를내며 울기도 했다. 그 소리가 무서워서 솜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 덮고 공연스레 벌벌 떨기도 했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오줌이 마려운데도 나가지 못하고 끙끙 대다가 솜바지에 오줌을 지려서 엄마에게 된통 혼나고, 그날 이후로는 따듯한 아랫목을 뺏기고 윗목의 요강 가까운 자리에서 추위에 떨며? 잠을 잘수밖에 없는 불쌍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련한 옛날 어린시절의 이야기다. 고등학생시절 서울로 유학을 와서 밤늦게 공부를하다보면 골목길을 지나며 외치던 찹쌀떡과 메밀묵장사의 외침소리도 그리워진다. 찬바람이 쌩쌩부는 날, 외딴 가로등 불빛아래서 군고구마를 굽던 할아버지도 그리워진다. 이렇게 옛 추억은 지나고나면 그리워지는 법인가보다.

살다가 보면 겨울도 얼 때가 있다. 겨울이 활화산 같은 정념을 불태우더니 마지막 남은 물기마저 배출한다. 세월도 해가 지나면 점점 굳어진다. 수피(樹皮)가 딱딱해 지는 것은 세월의 흔적이다. 피가 돌지 않고 굳어지는 것은 모두 죽음이다. 영화도, 탐욕도, 애증도, 희비도 다 내려놓고 겨울은 이렇게 빈손으로 서 있다. 맨 몸에 맨 살 뿐이다. 그것은 마냥 맨 것이 아니다. 고독과 외로움의 대명사인 겨울은 알고 있다. 비워야 채워질게 있다는 것을, 줘야 받을 것이 있다는 것을, 보내야 돌아올게 있다는 것을, 그것이 자연의 이치임을 인간들만 모르고 있다. 우둔한 인간들은 자기 것만 챙길 줄 알았지 내어놓을 줄은 모르는 바보들이다. 이 겨울의 자연의 섭리는 인간들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것이 우리들이 배워야 할 사항이다. 유(有)가 곧 무(無)요 무가 곧 유임을 알고 있는 것은 겨울뿐이다. 이제 겨울은 새로운 순간들을 조용히 끌어안고 있다. 이 깊은 겨울 밤, 나는 여러분들에게 한권의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해드린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이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프다 해도 마음속의 심지는 지키고 살아가야 함을 배울수 있는 책이다. 늘 좋은 책을 읽고 사랑하는 주변을 밝히듯, 일상에서 독서와 필사를 하며 삶의 고독한 시인이 될수 있다면 자신의 삶을 보다 평온한 일상으로 초대할 수 있다. 당신도 분명 그 올바른 마음을 찾아 자신의 삶을 지키며 살아가는 힘을 찾게 될 것이다.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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