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내 마음의 기도, ‘아침을 열며…..’

<김명열칼럼> 내 마음의 기도, ‘아침을 열며…..’

 

아침에 눈을 뜨면 침상에 앉아 두손을 모으고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하루가 고맙다고 말입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두통과 어지럼증으로 고통받고 신음했던 지난 날들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오늘아침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을 느낍니다. 비록 현실이 지치고 힘들더라도, 고통중에 투병하는 사람이 주님께 편안하게 의지하며 기댈수 있도록 미소를 잃지않게 하시고, 이 세상이 비록 험하고 온갖 죄악으로 가득차 있다 하더라도 선한 행동속에 언제나 아름답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시고 나의 허물과 오만으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지않게 하시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또한 바라고 원하옵기는 코로나19의 질병으로 공포와 두려움, 고통 중에 시달리고 있는 인류를 구원하여 주시고, 평화와 안정속에 전쟁이 없고 모든 사람들이 선한 삶속에 행복과 평강을 누리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가호와 보살핌이 함께 하시길 바라며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지도록 예수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나에게 모든 아침은 새 아침이다. 아침은 세상과 만나는 첫 시간이며 희망의 시간이다. 매일같이 맞는 아침이지만 그날 그날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아침이 찬란한 햇빛이 화사하게 비치는 아름다운 아침이든, 안개속에 서든, 눈, 비 내리든, 바람이 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다만 순결한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 장엄한 자연의 순리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아침은 하나의 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침을 맞아 새로운 문을 밀어보는 것이다. 오늘의 문을 밀고 지나가면 내일 아침은 내일의 문을 열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들은 공히 수많은 문을 밀고 왔으며 앞으로도 수많은 문을 밀고 나아갈 것이다.

나는 아침의 문을 열때마다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새로운 기분을 갖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듯 때때로 환희와 경이를 맛볼 때가 있다. 언제나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 존재로서 이 순간이 참으로 소중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을 맞을 때마다 하나님을 숭배하고 기도하면서 가슴속의 소망을 말하거나 오늘 해야 할 일을 떠 올리며 새로운 힘을 얻는다. 아침은 건전지처럼 닳아 없어지지만 나 자신을 재 충전해주고 오늘 하루를 살아갈 새 에너지를 채워준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함께 마시는 커피 잔속에 내마음속 갈피에 달라붙어있는 탐욕과 이기심과 교만, 그리고 위선도 함께 섞어서 꿀꺽 목구멍속으로 삼켜버린다. 나의 이익만 챙기려들고,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잘못은 덮어두고 남의 잘못만 들추어내려 했던 건 아닌가.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만 탓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나는 지난 한해에는 여러 달 동안 두통과 어지럼증으로 무척이나 심한 고통속에 고생하며 살았다. ‘물론 지금도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 멀리 있는 친구에게서 크리스마스 카드 한장을 받았다. 투병중에 괴로워 하고 있는 나에게 힘과 위로와 용기를 주는 따듯한 마음의 글을…… 나는 카드를 읽으면서 좀 놀랐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눈 뜨는 과정이라고 하는데 친구의 마음이 깊어져서 이다. 이 친구가 정말 세상을 잘 살았구나!. 느끼면서 몸을 추슬러 바로 답장을 썼다. 사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늘 햇살처럼 밝은 빛과 기운을 선물해주는 친구와 지인들은 여러분이 계신다. 자주 만날 수 없지만 마음이 서로 통하는 지인들과 친구들이 있어서 작은 행복을 맛 보았다. 투병중에 있는 나를 위하여 정성과 마음이 담긴 편지와 카드, 이멜, 카톡, 전화 등으로 위로를 해주고 힘을 실어준 그 모든 분들께 사의를 표하며, 잠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너무 몸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워 누워있다 보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을 향한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교만하지 않고, 인색하지 않고, 소탈하고, 섬세하고, 따듯하게 인정과 사랑을 갖게 해 달라고……..

그리고 햇빛처럼 밝음과 따사로운 기(氣)가 나의 영혼속에 가득 차게 해달라고 빌며 기도드렸다. 아픈 고통 중에서도 나는 살아있는 동안 글을 쓰고, 글을 쓰는 동안 살아 있기를 또한 빌었다.

작년(2020년) 한국의 교수신문은 그 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比)를 정했다고 한다. 이 뜻은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라는 뜻이다. 아시타비는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한문으로 옮긴 신조어다. 신조어가 사자성어로 뽑힌 일은 처음이다. 정치권에서 내로남불 이란 말을 처음 내놓은 사람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다. 1996년 15대 총선 직후 당시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 (신한국당)의 의원 빼가기와 관련해 야당(새정치 국민회의)이 맹공격을 퍼붓자 ‘내로남불’로 응수했다. 다만 처음부터 내로남불이란 조어 형태로 사용된 건 아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불륜대신 ‘스캔들’을 활용해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의 형태로 주로 쓰였다. 내로남불의 전성기는 1990년대 중후반기였다. 내가하면 숙달운전 남이하면 얌체운전, 내가 못생긴 건 개성 남이 못생긴 건 원죄, 내가 땅을 사면 투자 남이 땅을 사면 투기, 내가하면 예술 남이하면 외설, 내가하면 오락 남이하면 도박 등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돼 크게 유행했다. 공통적으로 자신을 합리화 하기위한 이중 잣대를 꼬집는 말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내로남불은 불가피한 인간의 본성인 동시에 한계’라며 내가 한 사랑이 결코 아름다운 로맨스가 아닐 수 있고, 상대도 동일한 실수를 할 수 있는 나약한 존재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은 자신과 관련 없는 다른 사람의 일에는 거리낄 것이 없으므로 시비와 이해를 비교적 바르게 볼 수 있지만, 자신과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욕심과 집착때문에 시비나 이해를 바르게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등잔 밑이 어두운 이유이다. ‘내로남불’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나’에 대한 과도한 사랑과 집착이다. 불가에서는 이를 아상(我相)이라 하여 크게 경계하며 이를 제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수행의 하나로 여긴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불신풍조가 만연되고 윤리와 도덕이 타락할 대로 타락해 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세계 각국의 여러 나라들은 사회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을 만큼 정치, 사회, 경제등 모든 분야에서 혼돈과 갈등을 겪는 것은 온 사회에 만연된 너 나 없는 ‘네 탓’ 풍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작게는 가정에서 부터 지역사회, 국가에 이르기 까지 모든 잘못은 오로지 ‘너 때문이야’ 라는 ‘네 탓’ 타령으로 일관되고 있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잘되면 내가 잘해 잘되는 것이고, 잘못되는 것은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잘되면 내 탓, 안되면 조상 탓’이라는 고약한 속담마저 있을 정도이니 남을 탓하는 못된 폐습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듯 하다.

정치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이 자신의 미숙한 국정운영은 부끄러워 하지 않고 전직 대통령이나 야당을 원망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이세상의 모든 일들은 나와 관련된 일로 부터 비롯된다. 불교에서 업보(業報)를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유교에서 일체유아(一切由我) 역시 모든 일은 나로 말미암아 생긴다는 자아반성의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잊고 남 탓하기를 즐겨만 하니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대통령이 됐던, 시어머니가 됐든, 며느리가 됐든, 어쨋거나 이제는 서로 먼저 내 탓을 인정하고 겸허하게 통회(痛悔) 할때 국가이든 가정이든 모든 사회가 화평을 누릴수 있다.

밝고 희망찬 새해가 되면 누구나 자기에게 안 좋은 습관이나 행동을 고치기 위해 다짐을 하곤 하지만, 정작 실천을 하기는 어려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때문에 여러 가지를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꼭 하나라도 실천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목표를 세워 이를 체계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소설가 김연수씨는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고 했다.

우리는 자신의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며 올바르고 선하게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올 해에는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을 통해 행운을 충전하고 나의 좋은 운도 다른사람에게 나누며 살면 좋겠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람마다 각각 고유한 존재이며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스스로의 잠재력을 알아가는 것, 삶이라고 주어진 선물상자 안에 담겨진 여러가지 것들을 맛보고 경험하며 내 이웃이나 내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갈수록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불신과 경쟁의 장벽만 높아져만 가는 지금의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사랑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행동인 것 같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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