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행복의 지수와 코로나 바이러스

<김명열칼럼> 행복의 지수와 코로나 바이러스

 

모든 시간은 정지되었다. 또한 일상도 사라졌다. 만나야 할 사람도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만났다 하더라도 일단은 경계부터 해야 한다. 여러사람이 만나서 웃고 떠들며 마주앉아 수박을 나눠먹던 그날이 그립다. 가슴을 끌어안고 사랑과 우정 덕담을 나누던 날이 또다시 올수있을까?…… 한숨이 절로 새 나온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감사와 기적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기도를 드린다. 속히 일상이 예전처럼 되돌아오고 지인이나 친구와 교인들과 마음대로 떠들고 예배를 보고 음식을 나누고 반가워서 악수하고 포옹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이번 기회에 나는 느끼고 배웠다. 마스크를 써본 뒤에야 지난날의 내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고 침묵을 배웠다. 너무나 쉽게 말했다. 너무 쉽게 비판하고 너무도 쉽게 조언했다.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경박했다. 그리고 느꼈다. 죽음이 아주 멀리에 보이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가까이서 언젠가 내게도 닥칠 수 있는, 그래서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죽음인 것을 느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침투에 너무나 쉽게 쓰러질 수 있다는 존재인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오늘도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악다구니를 퍼붓고 물고 뜯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웃기고 한심한 일인가를 배우고 느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보고 또 한가지를 배웠다. 우리들 삶속의 인생과정은 허들 경기에서 넘어가야하는 장애물들은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라’고 있는 것임을………… 나 자신에게 닥쳐온 역경과 시련을 재 정의하고 이 악성 괴질 코로나에서 이겨 살아남아 영웅이 될지, 바이러스의 희생양이 될지는 나 자신의 선택과 의지에 달려있다.

어떠한 기생충보다도 더 무섭고 해로운 기생충은 대충이라는 것을…….. 살아가는 방식이나 행동거지가 모든 것이 대충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손 씻기도 대충, 사회적 거리두기도 대충, 마스크 쓰는 것도 대충, 생각이나 실행도 대충 대충, 이번 사태에도 너무 안이하고 게을렀다. 이제는 나 스스로, 그리고 우리 모두는 스스로가 면역 방역 주치의가 되어야겠다. 사람들의 병은 대부분 스트레스에서 온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주로 부정적인 생각에서 비롯된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은 스트레스와 병을 이길 수 있다. 1998년 미국 듀크 대학병원의 헤롤드 쾨니히와 데이빗 라슨 두 의사가 실험한 결과에 의하면 매일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7년 정도 이상을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존 헨리 박사도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라고 했다. 감기약이나 어떤 항생제보다도 더 대단한 효능을 가진 것이 바로 ‘감사 약’이라고 한다. 감사는 혈압도 떨어뜨리고 소화작용도 촉진시킨다. 감사와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다. 우리가 1분간만 웃고 감사하면 24시간의 면역체계가 생기고, 1분간 화를 내면 6시간의 면역체계가 떨어진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모든 것이 두렵고 우울하고 답답하고 불만족스러워도 범사에 감사하며 웃음을 잃지않고 살아가면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 모든 행복은 나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어떤 상황이나 조건 때문에 행복하고 불행한 것이 아니다. 나의 마음 가짐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 마음은 몸을 지배하고 다스린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집안에 갇혀있고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짜증을 부리거나 화를 낸다면 몸도 마음도 상하게 된다. 자살이라는 글자를 반대로 하면 살자가 되고, 영어로 스트레스, stressed를 반대로 하면 디저트 desserts란 말이 된다. 나폴레옹은 유럽을 제패한 황제였지만 내 생애 행복한 날은 6일밖에 없었다고 고백했고, 헬렌 켈러는 악조건의 신체장애자였지만 “내 생애 행복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는 고백을 남겼다.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행복과 자유를 누리고 살 권리가 있다. 코로나에 주눅 들지말고 우리는 희망과 행복을 갖고 살아야 한다.

저울에 행복을 달면…………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불행이 49% 행복이 51% 이면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된다. 행복의 조건엔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다. 우리의 삶속에서 단 1%만 더 가지면 행복한 것이다. 어느 상품의 이름처럼 2%가 부족하면 그건 엄청난 기울기 이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1%가 빠져나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더 많은 수치가 기울기 전에 약간의 좋은 것으로 다시 얼른 채워 넣어서 행복의 무게를 무겁게 해놓자. 아무것도 아닌 아주 소소한것일수도 있는 그것, 따듯한 말 한마디, 친구나 지인에게서 걸려온 반가운 전화 한통, 안부 인사를 전하는 카톡, 좋았던 추억들, 감미로운 음악, 파란 하늘, 태양, 달, 별, 나무와 꽃들 그리고 잔잔한 그리움까지………. 선한 미소와 따듯한 마음, 이러한 사소한 것들이 팽팽한 무게 싸움에서는 아주 미미한 무게라도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단 1%가 우리들 삶속에서 나 자신을 행복하게 그리고 또 불행하게 한다.

일상이 사라지고, 만나야 할 사람도 못 만나고, 또한 만났다 하더라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 되는 순간, 갑갑하고 지루하고 무료하고 쓸쓸해도 그러한 와중에 나는 오늘 1%를 행복의 저울 ‘범사에 감사하는’ 쪽에 올려놓았다. 그랬더니 힘들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으며 즐거운 시간들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사흘만 볼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 신체적 장애를 극복한 헬렌 켈러(1880~1968)여사의 이야기다. 내가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첫날은 나를 가르쳐준 고마운 앤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꽃들과 풀과 빛나는 저녁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별들을 보고싶습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때는 영화를 보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눈이 멀어 볼 수 없고 귀가 먹어 들을 수 없었던 헬렌 켈러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볼수 있고, 들을수 있고, 말 할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할 일이 아니겠는가……………..

어느날 인간이 신에게 질문을 했다. “인간에게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가요?”. 신께서 대답하셨다. “돈을 벌기위해 건강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다시 돈을 잃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도 미래도 행복하게 잘 살지 못하는 것 이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나 권력 명예보다도 건강이 가장 소중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할 수 없이 일도 못하고 어디 가지도 못하며 집안에 칩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전염병이 감염되지 않고 건강을 지키는 길이라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복을 지킬 수 있는 조건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고 불평없이 살아가자. 때가되면 반드시 좋은날이 올 것이고 웃음과 행복이 친구가 되는 즐거운 미래가 나를 맞아줄 것이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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