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국화 향기에 취해서………………….

<김명열칼럼>  국화 향기에 취해서………………….

 

뜨거운 가마솥 끓는 물속의 수증기 같은 찜통 더위속에서 국화는 그 무더위를 꿋꿋하게 견뎌내며 풍요의 가을을 맞았다.

여름이 지난 가을은 국화를 한층 더 아름답게 피어나게 한다. 별빛 흐르는 밤을타고 새벽에 내린 아침이슬에 단아하게 세수를 하고 난 국화는 한껏 청조하고 아름다운모습을 과시하며 꽃송이를 피어 올린다. 제철을 맞아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불러 모으는 국화전시장에 가보면 이름 모를 소국부터 시작해서 어른 주먹같이 큰 대국의 모습을 보게 되어 꽃 세계에 온것 같은 착각에 젖어든다. 그윽한 향을 뿜는 국화의 매혹적이고 고운 모습에 이끌려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그 향에 도취되어 잠시 동안이지만 꽃이 되길 꿈꾼다. 국화가 피어나는 가을이 되면 봄부터 심어져 가을까지 내려온 관상용 꽃들이 국화의 그늘에 가려져 향기를 잃고 시들해져서 눈앞에서 사라져간다.

오늘아침 은행에 볼일이 있어서 잠시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넓은 사무실 주변의 창가 옆 한편에 잘 가꿔진 여러분의 국화 화분들이 가즈런히 진열되어 시종 눈길을 사로잡았다. 봄에 삽목해 심어진 것으로 보이는 국화들은 노란색, 흰색, 주황색, 연 핑크색 등등으로 색색을 이루며 건물 내부의 미관을 돋보이게 했고 은은한 향을 내뿜었다. 국화를 바라보니 서정주 시인의 “국화꽃 옆에 서의” 시가 언뜻 머리 속에 떠올랐다. 퍼즐을 맞추듯이 생각나는 대로 시를 암송해 내려갔다. 하지만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라는 대목에서 나는 더 이상 국화꽃 앞에서의 시구를 흥분과 감격에 겨워 암송해 내려가지 못했다. 시를 암송해 내려감에 따라 마음은 감상적 상태에서 점점 감동적 상태로 빠져들었다. 국화꽃 옆에서의 문장은 긴 세월의 적적한 기다림을 이겨내고 꽃길을 사뿐히 걸어오는듯한 여인의 환상으로 이어져 가슴을 쓸어내리고 쿵쾅거리게 했다.

누군가가 시는 세상을 창조하고 소설은 역사를 만든다더니, 시인의 글 하나가 인간사회를 움직이고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하여줌을 거듭 거듭 깨닫게 해준 것이었다. 이 땅에 핀 꽃들이 모두가 아름답다고 하지만 계절 따라 피어나는 꽃들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 꽃들만의 특징이다. 뜨겁고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고 인내하여 꽃을 피우는 국화는 그런면에서 사람들과 더 가깝고 포근한 사랑을 받는가보다. 그윽한 국화향을 맡게 되면 장미처럼 향긋한 냄새와 라일락 향기처럼 달콤한 향기의 유혹보다도 짙게 느껴져 국화향이 풍겨오는 곳으로 나도 모르게 발길이 옮겨진다. 만약에 사람이 아니고 벌이나 나비와 같은 곤충의 몸이었다면 국화꽃속으로 기어들어가 황홀경에 빠져들었을 것만 같은 부질없는 생각이 잠시 머릿속을 지배한다. 국화꽃이 피어 만추의 가을이 농익어간다. 한해 동안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밭과 논에서 수고의 노력과 땀방울의 헌신도 아끼지 않았던 농부들이 수확의 기쁨으로 바빠지고, 천지 산하는 침묵의 겨울로 가는 준비에 소리없이 빠져든다. 집 주변과 화원에서 사람의 손길에 의해 잘 가꿔진 소담스럽게 꽃을 핀 대국과 들녘따라 애잔하게 꽃을 피워낸 작은 들국화의 모습이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이채롭기 짝이 없다. 낮과 밤의 급격한 기온차와 세월의 풍상을 꿋꿋이 이겨

내고 꽃을 피워 올린 국화의 단아하고 청조한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마음속을 또 다른 서정의 공간에 머무르게 한다.

청조하게 피어난 국화꽃을 바라보노라면 시인이나 화가가 아니더라도 뭉클하게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그리움을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전해보고 싶고, 노란 국화꽃 화분 하나를 달빛비치는 창가에 놓아두고 밤새 즐기고 싶은 마음에 문득 빠져든다.

세상의 모든 꽃들은 우리생활 주변에서 항상 아름다움을 전하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정서를 심어주는 고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수많은 꽃들중에서도 국화야말로 고결한 자태와 그 향기에 있어 수많은 꽃들중에서 으뜸이라고 하겠다. 한 겨울, 추위속 그 혹한에도 얼어 죽지 않고 봄부터 기나긴 여름을 지나 늦가을 무서리를 맞아 가면서도 아름다운 자태와 그 향기를 흐트러트리지 않는다. 그래서 인고(인내와 고통을 견뎌냄)의 꽃이라 하여 다른 꽃들과는 구별하여 옛날부터 문인이나 선비들이 4군자의 하나로서 국화의 고결하고 품위있는 덕성을 시조나 시를 지어 칭송하였다. 특히 요즘과 같은 산업사회에서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누리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이지만 점차 자연과는 멀어져가는 경향이 있고, 생활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뚜렷한 취미생활도 별로 없는 것 같은 이때에, 우리의 아이들과 함께 이른 봄 국화묘 몇개를 화분에 심어 그 가냘프고 여린 모습과 호흡을 같이하고 대화를 나누며 정성스레 가꾸어, 늦가을 화사하고 수줍어하면서도 감정이 넘치는 자태와 그윽한 향기로 온 가을을 감싸는 국화꽃을 볼때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을 더욱 아름답게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는 어린아이들은 정서순화에도 많은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하여 감사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가을의 정취 국화, 꽃도 아름답지만 가을바람을 타고 오는 짙은 향기로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국화는 가을의 상징적 꽃이다.

따듯한 봄볕과 화려하고 변화 많은 여름을 다 보내고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에 특히 차가운 이슬과 서리가 내릴 때 더 아름다워 지는 꽃이 바로 우리네 누님 같은 국화꽃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의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국화는 원산지가 중국이어서 그런지 동양적인 느낌을 많이 준다. 우아한 꽃의 기품과 추위를 이겨내는 강인함은 곧잘 충신의 절개와도 비유되어 동양에서 사랑을 받아왔다. 4군자는 매화, 난초, 대나무, 국화를 이르는 말이다. 매화는 이른 봄에 잎보다 먼저 꽃이 피고, 난초는 향기가 있고 잎과 꽃이 아름다워서 좋아하던 식물이었다. 그리고 대나무는 잎이 항시 푸르고 줄기가 꼿꼿하여 절개를 상징하던 식물이었다. 반면에 국화는 꽃도 아름답지만 향기가 매우 짙어 사랑을 독차지하는 식물이었다.

다산 정약용의 국화사랑은 대단했다. 그의 글 ‘국영시서’에 “해마다 국화 화분 수십개를 길러 여름에는 잎새를 보고, 가을에는 꽃을 감상하고, 낮에는 그 자태를, 밤에는 그림자를 사랑했다”고 썼다. 누군가 열매도 없는 꽃을 기른다고 비아냥거리면 “입에 들어가는 것만이 실용이고 눈으로 보는 것은 무용이냐?. 몸뚱이를 길러주는 것만 실용이라고 한다면 공부는 왜 하며 시는 왜 짓느냐?” 라고 항변했다. 국화는 비록 열매가 없어도 사람의 정신을 추상같게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국화는 중국 명나라때부터 매화, 난초, 대나무와 함께 4군자로 칭해지던 식물중 하나이다. 군자란 유교에서는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학식과 덕행이 높고 높은 관직에 있으며 지적을 수양하는 사람을 뜻한다. 즉 국화는 다른 꽃들과 달리 가을에 서리를 맞으면서 피는 모습이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모습에 비유되었다.

국화의 성품에 대해서 “국화는 다섯가지 아름다움이 있으니, 둥근 꽃송이가 위를 향해 피어있으니 하늘에 뜻을 두고, 순수한 밝은 황색은 땅을 뜻하며 일찍 싹이 돋아나 늦게 꽃을 피우는것은 군자의 덕을 가졌음이며, 찬 서리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은 고고한 기상을 뜻하고, 술잔에 동동 떠 있으니 신선의 음식이라”고 중국의 고전 ‘종회부’에 설명되어 있다. 이와 같은 국화의 고고한 기품과 군자의 덕을 생각해서인지 조선 전기의 인재 강희안은 재배하는 꽃을 9등급으로 나누고 국화를 매화, 연꽃, 대나무와 함께 1품에 올려놓았으니 지위가 상당히 높은 꽃이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아름다운 국화꽃 향기에 취해보는 것도 참으로 좋고 삶을 즐겁게 해주는 청량제라고 생각된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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