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부인 최춘화, 장남 Brian, 장녀 Catherien, 최창건 한인회장.
<인물 탐방> 서부플로리다 한인회 최창건회장
한국에서는 너무나 먼 나라, 멀리 이역만리 타국, 이곳 미국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민사회는 이런저런 한인단체가 많이 있다.
그러한 단체들 가운데 한인커뮤니티를 대표하는 단체가 한인회(Korean Society)이다. 한인커뮤니티를 대표한다는 것은 특정 친목단체나 종교단체와는 달리 해당지역 한인이민자 모두를 위한 공식단체라는 의미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탬파지역에는 플로리다 서부지역을 아우르는 서부플로리다 한인회가 존재하고 있어 이곳 지역에 거주하는 2만여 한인 이민자들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한 가정과 단체생활의 공통점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과 매사진선(每事盡善)이란 가훈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단체생활에서 지켜야할 일은 법을 준수하고 정직해야하며 서로가 협조하여 맡은바 책무에 최선을 다하고 민심을 따라야 한다.
가정과 사회의 질서는 정해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평화와 존중이 따르며 리더십의 가치를 높이고 많은 협조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정직하지 못한 단체장의 불신임은 또 다른 거짓을 쌓는 불행의 시초이기도 하다.
미주 한인사회는 물론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플로리다주만 보더라도 전-현직 한인회장이나 단체장들이 동포사회 발전을 위한 사명감과 봉사하고 헌신하는 역할보다는 자기의 명예나 감투를 위해 또한 이름 석자를 알리기 위해 높은(?)사람에게는 갖은 아부로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여 동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제28대 서부플로리다 한인회 최창건 회장은 다르다. 그는 최창건이란 이름 석자와 한인회장이라는 직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며, 지나온 이민 생활에 너무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동포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특히 서부플로리다 한인회가 올바른 한인회로 성장하고 한인회관이 동포들의 사랑방이 될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하며 봉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많은 동포들이 최창건 한인회장이 개인의 명예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공감하고, 또 그가 모범을 보이며 한인사회봉사와 한인회의 발전을 위해 경제적으로는 물론 동포사회융화와 협조를 통해 한인동포들의 민심과 조화를 이루어 가는 등 미 주류사회나 한인사회가 인정하는 훌륭한 한인단체장이기에 이곳의 지면을 통하여 그의 면모를 확대시켜 조명해본다.
최창건 한인회장이 한인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고인이 된 조현곤 한인회장이 재임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날 조현곤 회장이 최창건씨를 찾아왔다고 한다. 용건은 현 한인회관 건물에 제반 수도 시설이 완전치 못해 회관 내 적재적소에 수돗물을 설치하려면 3.500달러의 공사비용이 필요하다며 공사경비 후원을 요청해 왔다고 한다.
당시 그는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한인회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후원 요청을 차마 거절할 수 가 없어 즉석에서 공사경비를 선뜻 조회장의 손에 쥐어줬다고 한다. 이후 많은 날들이 지나간 후 알아본 결과 한인회관의 수돗물 공사는 하지도 않았고 흐지부지되어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이렇게 한인회의 어려움을 알게 된 최창건씨는 어려운 서부플로리다 한인사회에 작으나마 봉사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갖고 서부플로리다 한인회 제27대 회장을 맡게 된다. 하지만 막상 한인회장을 맡고 보니 한인회는 온갖 빚 투성이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얼마전 구입한 한인회관은 융자금의 이자조차 제대로 못내 은행에 차압을 당할 상황에 놓여있었으며 집은(한인회관) 50년이 넘어 낡을 대로 낡았고, 고치고 보수하고 손을 봐야 할 곳이 너무나 많았다. 게다가 이곳이 침수지역이라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5에이커 대지에 많은 부분이 질퍽질퍽하게 수렁으로 변해버려 행사에 참석했던 다수의 동포들의 차가 빠지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또 회관건물은 조이닝이 개인주택인 주거지역으로 묶여 있어 상업용인 공공건물로서 개조와 증-개축이 불가능했고, 회관으로 들어오는 입구의 도로도 확장공사나 조경공사 역시 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한인회관에서 모임이나 행사가 없을 때는 회관이 많은 시간 비어있게 되어 근처에 사는 불량배나 홈리스, 청소년들의 놀이터가 되면서 유리창이 파손되고 벽이 부서지고 주방 및 변기시설이 파괴되고 오물과 쓰레기가 넘쳐나고 나락 한인회관의 집기도 도난을 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렇게 한인회관이 쓸모없는 건물로 와해해 가는 위급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지만, 최창건 회장은 어렵고 힘들게 구입한 한인회관을 지키기 위해 한인사회의 뜻있는 몇몇 인사들에게 어려움을 하소연하고 도움을 청해 다수의 동포들의 도움을 받아 융자금을 모아 급한 불인 건물의 융자금을 갚았다.
이후 필리핀 회관 등 소수민족의 회관건물을 접한 최창건 회장은 계속 문제만 발생하고 동포사회에 맞지 않은 불필요한 한인회관을 처분하고 언제든지 한인동포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고 있던 중 (구)한인회관 건물의 매입자가 나타나 낙후된 한인회관을 매매했다.
이후 빚을 청산하고 남은 금액인 18만 달러로 한인회관 장소를 물색하던 최창건 회장은 그래도 한인동포들이 많이 애용하고 있는 교포플라자 건물주인 한병호 사장의 도움을 받아 전세식으로 지금의 한인회관에 입주해 편안하게 각종 행사에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한인회관 건물을 매각하고 한인회관을 월세로 사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해외동포재단에서는 (구)한인회관 매입시 지원해준 10만달러를 돌려달라고 요청하면서, 만약 그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법적인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렇게 동포재단의 집요하고 반 협박적인 반환요구와 독촉에 견디지 못한 최회장은 건물주를 찾아가 통사정을 해 보증금 18만달러 중 10만달러를 어렵게 되돌려 받아 재외동포재단에 돌려주었다. 이제 한인회의 남은 재산은 겨우 8만달러, 이 돈으로는 어느 건물도 구입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최회장은 할 수 없이 그 돈 8만달러로 현재의 한인회관에 전세가 아닌 월세로 입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플로리다코리아 이승봉 대표가 나도 동포의 한사람이라며 한인회관 건립기금 모금을 시작해 2만여 달러를 모아 총 10만달러 보증금에 월세 1천달러로 다시 계약을 마쳤다.
한인회관건물은 크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넓지 않은 공간에서 아쉬운 대로 한인회의 크고 작은 행사나 모임을 가질 수 가 있어 다행이이라며 최창건 회장은 한숨을 돌렸다.
“머리 좋은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열정을 가진 사람을 이길수 없다”, “과거에는 한인회장들이 무슨 행사나 모임의 Event가 있을 때는 그 운영자금을 마련하기위해 관내 업소나 유지들을 찾아가 도네이션 협조를 받았으나, 나는 나의 재임기간동안
일절 그러한 행동은 하지 않아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최창건 한인회장이 기자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한 말이다.
노력과 열정, 동포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 기자의 생각은 그러한 사람이 바로 최창건 한인회장인 것 같다. 그는 지난 27대와 28대 서부플로리다 한인회장을 역임하며 많은 헌신과 봉사를 아끼지 않은 사람으로 지역사회 한인들에게 좋은 인상과 성품을 인정받은 사람이다. 한인회장이란 직책은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을 먹는 자리라고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그는 회장이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오늘도 묵묵히 맡은바 임무에 충실을 기하고 있다.
그는 이제껏 27대와 28대 한인회장을 역임해오면서 많은 비용을 개인의 주머니를 털어 사용했지만 그 금액을 말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인회 임원들과 측근의 얘기를 살짝 들어보니 현재까지 대략 8만여달러를 한인회의 운영과 발전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헌금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
돈도 생기지 않고 욕도 먹으며, 희생과 봉사, 헌신을 강요받는 한인회장의 책무를 그는 이제껏 사명감과 책임, 노력과 열정으로 우직한 황소처럼 이끌어왔다. 마치 어느 시골의 순박한 면장님이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같은 온화하고 따듯한 인상으로 그는 오늘도 보이지 않게 물심양면으로 자기희생을 감수하며 이곳 서부플로리다 한인사회를 위하여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
부인 최춘화여사와의 사이에서 1남1녀를 두고 있는 최창건 회장은 가정에서도 믿음직한 남편과 가장이며, 자녀들에게는 너그럽고 자상하고 사랑스러운 아빠다. 특히 자랑스러운 것은 장남 Brian군이 플로리다주의 명문 UF 공대를 졸업하고 현재 미 공군 소위로 임관해 국방의무에 충실하고 있으며, 장녀 Catherien양도 오빠와 같은 UF를 졸업하고 조지아주의 에모리 법과대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녀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지난 8월 1일부터 탬파 다운타운에 있는 유명 로펌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울러 그녀는 앞으로 아빠를 도와 한인사회를 위해 동포들의 제반 법적인 문제의 도우미 역할도 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훌륭한 부모밑에 훌륭한 자녀가 있다는 산 증거의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의 일면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가정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있다. 이뜻은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들이 잘된다는 뜻이다. 한인회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책이 아니다. 특히 내조자(부인)의 협조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봉사직이다. 그런데 최창건 회장은 이제껏 3년여를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해오면서 한번도 부인 최춘화여사의 제지나 비협조적인 방해로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힘들고 어려워할 때 튼튼한 버팀목이 돼 주었고, 따듯한 격려와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사랑의 충언은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용기와 희망을 일깨워주어 한인사회에 크고 작은 업적들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지난 2017년 11월2일에는 한미유권자연합을 조직하여 조기투표권행사를 통해 한인유권자 3백여명이 함께 모여 투표권행사를 함으로 한인들의 위상을 높이고 주류사회에 한인들의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
아울러 다가오는 2020년 미국 대선에서도 역시 한인동포들의 결집을 통하여 보팅파워를 행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동안 최창건한인회장은 매년 민속명절인 추석과 구정에는 사비를 들여 동포위문잔치를 열고 푸짐한 음식과 더불어 문화공연을 펼쳐 연세 드신 어르신들은 물론 한인동포 전체를 아우르는 축제의 한마당을 펼치기도 했다. 이외에도 그의 숨은 공로와 업적은 참으로 많으나 오늘은 지면관계상 이상과 같이 최창건 서부플로리다 한인회장의 이모저모를 조명하여 독자여러분들께 소개하여드렸다. 앞으로도 최창건 한인회장이 추진하고 시행하는 모든 한인사회의 일들이 뜻대로 이루어져 동포들의 사회를 위한 좋고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아울러 내가 몸 담고 있는 서부플로리다 한인회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진심으로 빈다. <김명열 기자> 1177/2019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