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4월에 드리는 편지, 기도하는 마음.
절대적인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건강을 잃은 사람은 건강한 삶을 달라고 기도하고, 사랑을 잃은 사람은 사랑을 돌려달라고 기도합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돈을 달라고 기도하며 부자가 되어 살기를 바라고 원하는염원의 기도를 드립니다.
직장이없는 사람은 일자리를 달라고 기도하고, 대학입시를 앞둔 고3생은 좋은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래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도의 제목들이 간절한 바람과 기도의 덕택으로 열매를맺고 기적처럼 이루어지면 초심을 잃고 언제 그랬냐는 듯 소홀 해지는 게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기도와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바라기만 한다면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니,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할 수는 있어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나 자신을 봐도 그렇습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침대머리에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하루의 무사안일을 빌고, 가족과 교회, 나라와 불쌍한 사람들, 고통중에 신음하고있는 어려운사람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시작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루 3시 세끼 식사때는 물론이고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수시로 하나님과 영적인 교류를 나누고 대화를 나눕니다. 기도는 대체적으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간절함을 동반하고 경건한 자세로 하나님에게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아룁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다보면 하나님과 성령님께서 나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기분이 좋아져서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그러나 뜻 아니게 갑작스레 급박한 상황이 생기거나 돌발 상황에 처하게 됐을 때는 내가 언제 그러한 마음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속이 좁아지고 감정이 앞서거나 이성이 마비됩니다. 그러고서는 이것저것 따지기도하고 화도 냅니다. 한결같지 못한 믿음과 신앙이 부족한 범부의 본래 모습이 여실히 여과 없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개가 다 위급상황이나 평상시 자신이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것이 있으면 그것이 이루어지고 자기의 마음먹은 대로 뜻을 이루고 결실이 맺어지기를 마음속으로 원하며.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는 믿음을 가진 신자들에게 필수적인 행동적 요소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며 응답의 열쇠이므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건으로서 신앙생활의 기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니님의 자녀들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대화를 하므로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요즘 기독교신앙의 핵심인 부활절을 앞두고 사순절을 맞아 새벽기도회를 비롯한 각자 믿음의 성도들 역시 경건한 마음과 자세로 기도에 열성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순이란 40일을 뜻하는 말로써 자기 근신과 금식, 영적훈련의 기간이며 사순절기간은 주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40일간으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또한 주님과 함께 고난과 죽음으로 향해 가는 순례의 기간이며 자기 자신이 죽는 것을 배우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즉 사순절의 초점은 주님과 고난과 부활에 대한 교육과 준비, 갱신 및 기도에 맞춰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많이 갖게 됩니다. 일상적인 사람에서 반성을 하고 또 특별한 계기가 있을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신앙인들에게는 전례를 통하여 더욱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많이 갖습니다.
특히 사순 시기의 전례는 기도와 묵상을 통하여 인생의 광야를 체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허영과 위선에 가득찬 자기 자신을 죽이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듯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생화하기 위한 40일기간은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켜 신앙과 인간적 성숙의 바탕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세속적 유혹과 불안으로 인해 앓기 쉬운 신앙인의 자세를 사순 기간의 삶을 통해서 되찾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순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에 모든 신앙인들은 “사람은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창세기3:19)” 는 말씀과 함께 머리에 재를 얹게 되는 상징적인 표현속에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지점을 생각하고 거기에 비추어 자신들의 사람을 바로잡기를 요청받고 있는 것 입니다. 즉 세례 때의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되찾아 바른 양심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는 것이 지난주의 사순 시기입니다. 이미 사순절과 부활절(4월21일 주일)은 지난주로 지나갔으나 기도하는 마음과 순수한 마음, 기독신앙심에 대한 기준으로 촛점을 맞추어 글을 써 올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숙은 신앙의 품위와 품격이 있어야합니다. 이웃들에게 호감을 주는 생활이 있어야 불신자들에게 귀감이 되어 전도가 됩니다. 요즘은 전도가 잘 안된다고들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한국 갤럽에서 일반인들의 종교의식조사에서 나온 결과대로 개신교가 제일 품위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열성은 훌륭한데 삶에서 향기가 없고, 예배가 엄숙하지 못하고 너무 요란하고 시끄럽다는 것입니다. 특히 경배와 찬양이 교회안에서 무분별하게 남용되어, 악기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소리가 크다보니 찬양대원들이 악기소리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 음성을 높이다보니 이것은 성스러운 찬양이 아니라 발악(?)을 하듯이 있는 힘껏 목청을 쏟다보면 듣는 이들이 감동이나 은혜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부담스러워 하고 시끄러워서 슬그머니 그 교회를 떠나간다고 합니다.
또 통성기도를 할 때 너무 큰소리로 기도를 하는데 일부 사람들의 특이한 고성과 괴성으로 이질감과 불편함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때문에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조용하면서도 경건하게 예배와 기도를 드리는 종교(교회)를 찾아 옮겨 간다는 것입니다.
개신교가 최고의 진리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품위를 갖추지 못하므로 빛을 발하지 못함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주님!” 하고 큰소리로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존귀한 주님을 부르는 마음에서 나오는 간절함이 아니라 다분히 감정적이며 인위적인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손을 드는 이유는 주님에게 항복하며 전적으로 주님께 나 자신을 맡기며 의지하겠다는 신앙심의 표현입니다. 그냥 폼으로만 하면 형식이 되고 맙니다. 또 하나님을 부를 때, 떼쓰고 악을 쓰듯 소리를 지르고 주먹을 불끈 쥐고 휘두르며 미친듯이 날뛰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입니다. 이런 모습을 우리는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바로 성난 군중들의 데모꾼들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대통령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고 인상을 써가며, 허공을 치면서 정권 타도를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성스러운 교회 안에서는 불경스럽게도 이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정신과 말과 행동으로 경건한 진정성 있는 성도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높고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내앞에 계시다고 할 때 우리는 기도를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겸손하게 정중하게 지극히 인격적으로 아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마음의 진정성과 열정이 묻어나는 기도의 자세가 하나님 앞에 합당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인격적인 자세로 기도해야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특히 교인들을 상대로 하나님께 기도를 올릴 때 가급적이면 통성기도를 권하며 강제성을 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에 보면 대개가 다 목사님께서 통성기도를 인도하시는데, 갤럽의 조사결과 성도들 대부분(80% 이상)이 기도는 자율에 맡기는 것이 좋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과 중심을 보시는 거지,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그 사람의 기도를 먼저 들어주시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성도들 모임이 있을 때 가급적이면 통성기도는 인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도들께서는 저의 예배 인도와 기도(자율)시간의 할애를 무척 좋아하며 더욱 화기애애하면서 은혜롭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울러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합심하여 기도할 때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합니다. 특이하게 큰소리로 방언을 하거나 또는 괴성을 지르고 손뼉을 큰소리가 나게 치며, 이상한 사람처럼 온몸을 뒤틀고 흔들며 기도하면 옆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거부감이 생겨나며 온전한 기도에 방해가 됩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더욱 절제하고 예의를 지켜야 하며 겸손하고 공손해야 합니다. 정말로 힘이 들고 답답하고 안타깝고 절박할 때, 그래서 절규에 가까운 통곡의 기도를 할때도 하나님의 실존 앞에서는 절제할 수 있어야합니다. 한나의 기도가 그랬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조용한 골방에 들어가서 울부짖고 통곡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수도 있습니다>.
우리 진정한 믿음의 형제자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인격적이고 진정성이 중요하며 아울러 사람들에게 건전한 덕이 되어야 합니다. 상식이 통하는 신앙이 건강하고 성숙한 모습입니다. 기도를 드리는 중에도 올바른 인격수양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를 드리는 참다운 기도의 마음입니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