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렬 유럽여행 기행문 / 15회>  일본의 만행과 잔학상, 731부대 “동양판 아우슈비츠”

<김명렬 유럽여행 기행문 / 15회>  일본의 만행과 잔학상, 731부대 “동양판 아우슈비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에걸쳐 일본제국이 저지른 국제적인 만행은 천인공노할 악종 범죄와 죄악이다.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빗대어 일본의 만행과 잔학상을 아시안 홀로코스트라고도 한다. 그러나 독일 홀로코스트의 의미는 군대에 의한 학살을 뜻 하는게 아니라 인종주의에 기반해 유태인에 대한 산업적이고 조직적인 대량 살상을 뜻하므로 아시안 홀로코스트란 단어는 성립될 수 없다. 그 나라의 역사는 그 나라 국민의 혼과 같다. 일제 강점기 36년동안 인적 물적 자원의 수탈뿐 아니라 조선의 혼을 빼앗으며 저지른 일본의 만행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처절히 저항하다 숨진 독립투사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꽃다운 조선의 여성들을 무작위로 끌어다 전쟁 위안부(성 노리개)로 인권을 말살하며 노예처럼 혹사시킨 그들의 만행이 어떠했는지,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조선인들의 인권을 짓밟은 짐승만도 못한 악행과 만행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마의 행위, 그 이상이었다.

일본은 지금도 그들의 과오와 잘못을 인정하지 못할뿐 아니라 독도가 자기네 나라 땅이라고 억지주장을 펴며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종군위안부가 성노예였다는 실체조차 부인하고 있다. 일본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대한민국을 또다시 점령하고 싶다는 야욕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배달민족의 영혼을 강제점령당한 일제 압박 36년중에는 수없이 많은 잔학상과 만행이 자행되었는데 그중 일부인 일본군 731부대의 만행을 이곳에 소개하여드리도록 하겠다.

 

731부대(일본인이 조선인 및 외국인들에 대한 생체실험)

전쟁은 인간을 미치광이로 만든다. 총칼앞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고귀함은 쓰레기처럼 취급된다. 만주땅에서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지옥보다 더한 처참하고도 잔혹한일이 벌어졌다. 바로 만주 제731부대에서 진행된 세균무기 제작과 생체실험이다. 일본은 1931년 9.18만주사변을 일으킨 뒤 1937년 7월에는 중일전쟁으로 확대한다. 일본은 중국대륙을 삼킨 뒤 동남아시아, 그리고 세계를 정복하려는 망상을 품었다. 시대는 영웅을 낳지만 또한 악마도 만들 수 있다. 악마인 731부대는 바로 이때 탄생했다. 일본은 하얼빈 외에 창춘, 남경, 북경, 광주와 싱가포르 등지로 세균부대를 늘려나갔다.

만주 731부대는 일본 국왕의 칙령을 받아 만든 특수부대로 일제 꼭두각시 정권이었던 만주국 영토내에 자리 잡았다. 1933년 이후 대규모의 세균생산을 시작하면서 매달 최대 장티푸스균 800~900Kg, 흑사병균 300~400Kg, 콜레라균 1000Kg중에서 선택해 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곳은 살아있는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세균무기를 연구 개발한 식인마굴(食人魔窟)이었다. 실험에 사용된 사람들은 마루타(통나무란 의미)로 불렸다. 지역당국에 이곳 시설을 제재소라고 신고했기 때문에 농담 삼아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731부대는 1939년부터 일본이 패망하던 1945년까지 중국인, 몽골인, 러시아인, 미국인, 조선인 등등 인종별로 3천여명을 산채로 생체실험을 했다.

생체실험은 더 이상 잔인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고 잔혹했다. 그 속에는 3살짜리 어린이도 포함되어있었다. 일본군은 대량의 세균배양과 실험을 위해 쥐, 파리, 모기, 빈대, 이 등의 전염병을 옮기는 여러 곤충들을 번식시켰다. 인간 생체실험을 위한 혈액재료를 얻기 위해 말, 소, 낙타, 원숭이 등도 사육했다. 일본군은 배양한 대량의 세균을 살아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으며 그 방법이 수십가지가 됐다. 세균액을 주사기로 인체에 주입하고, 입에 들이붓거나 음식에 섞어 식용이라고 속여서 먹게한 뒤 그 변화를 관찰해 기록했다. 731부대원들이 진술한 바에 따르면 일본이 패망을 앞둔 말기인 1944년 3월에서 1945년 5월까지 9개월동안에 세균에 강제 주입당해 죽은 사람이 300여명이었다. 동상실험은 더욱 잔인했는데, 옷을 벗긴 빨가벗은 사람을 동상실험실에 집어넣고 영하 30도 내지 40도 이상의 추운온도의 실험실내에 넣은 뒤 각종변화를 관찰했으며, 신체가 얼어 굳은 뒤에 찬물, 더운물, 심지어는 펄펄 끓는 물에 넣고 가장 이상적인 해동방법을 찾는 끔찍한 실험을 했다. 실험대상자는 극도의 고통속에 현장에서 죽거나 피부와 살이 썪고 무뎌나서 흰 뼈가 드러나기도 했다. 다행히 살아남더라도 치료 뒤 실험용으로 재사용하거나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일본군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체를 태우는 화로를 설치했다. 1939년~1945년사이 731부대에서 이 생체실험 대상자로 죽은 사람은 약 5천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생체실험은 임산부에게도 시행되었다. 어떤 때는 잡혀온 여자들을 일본군이나 의사들이 강제로 성폭행을 일삼았고, 임신된 태아는 강제로 낙태시키거나 꺼내어졌다. 이외에 사람과 말의 피를 서로 수혈하거나 공기로 정맥주사를 놓고 반응을 보기도 했다. 또 소장과 식도를 접합하고, 팔과 다리를 절단해 교차 접합하는 실험도 했다. 생체실험 대상자가 아파서 비명을 지르고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면 강제로 입을 틀어막고 폭행을 가하기 일쑤였다. 또한 고속 회전기

에 넣어 돌리는 실험과 폐에 담배연기를 주사하는 실험도 했다. 두개골을 열고 뇌를 바늘로 찔러 인체의 다른 부위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관찰하는 실험도 진행했다. 냉동 실험실에서는 영하 50도의 혹한에서 얼음이 언 손을 뜨거운 물에 담궈 해동시켜 살과 뼈의 결합상태를 확인하고, 영하 200도에 가까운 냉동실에 손을 얼려 손가락을 막대기로 두들겨 고드름처럼 부러뜨리는 실험도 했다. 천진한 어린아이가 눈을 말똥말똥 뜬채 해부대 위에서 심장과 간, 허파 등의 장기가 도려내어 알코올 보관병에 담긴다. 두 모녀가 의자와 나무기둥에 묶인채 독가스실로 넣어진 뒤 질식사 하는 장면을 일본군인들이 낄낄대며 신기하고 재미있는 듯이 아무 죄책감 없이 지켜본다. 진공실험실에서는 온몸이 팽창하고 내장이 항문으로 탈장하면서 죽는 장면을 지켜보는 일본군 731부대원들은 아무런 거리낌이나 죄책감, 감정 없이 그저 신기하고 흥미 있게 지켜보며 그 과정을 초시계로 모든 상황을 기록물에 옮겨 적을 뿐이다.

실험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진행했다. 수많은 실험과 해부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마취없이 이뤄졌고, 이는 실험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페스트균을 인체의 각 부위별로 주사한 뒤 신체변화를 관찰하고 즉시 해부해 세균의 침투정도를 기록으로 남겼다. 또한 백신연구를 위한 혈청을 얻기 위해 산사람의 몸에서 피를 뽑아 죽였다. 731부대원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이들은 마치 생체실험대상의 사람들을 표본실의 개구리같이 능멸했다. 개발된 세균무기는 실전에 사용되기 전 야외에서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성능실험을 했다. 마루타(생체실험대상자)들은 나무말뚝에 묶여 비행기가 폭탄을 투하해

심장과 폐가 찢어지고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 피를 뿌린채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731부대는 실험폭탄투하를 위해 자체 비행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부대원들은 생환자들을 끌고 와 바로 해부해 독이 얼마나 감염되었나를 검사했다. 일본군들은 중국 동북부지역 아무곳에서나 세균실험을 임의대로 진행했기때문에 하얼빈, 농안, 통까오, 등지에서 흑사병이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일본군은 체포한 항일투사, 애국지사와 무고한 백성들을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잡혀온 민간인들의 대부분은 항일운동을 하던 지하 정보원들로 일본 관헌에 의해 연행된 사람들이었다.

731부대는 크게 보면 독일 나치의 SS같은 정치선동 부서이다. 여기서는 일본인의 인종적 우월성, 인종주의 이론, 방첩활동, 정보활동, 정치적 사보타주, 적 전선침투 등에관한 활동을 하였다. 이 부대는 만주헌병대, 만주정보기관, 만주 정규경찰, 만주 거류민위원회, 지역 만주 민족주의정당, 일본 비밀정보기관과 긴밀히 연락했다. 이 731부대의 생체시험 대상으로 민간인,군인 등 모두 1만여명의 중국인과 조선인, 몽골인, 러시아인 등이 이부대의 실험 대상이었다. 일부 미국인과 유럽인등 연합군의 포로가 731부대의 손에 죽었다. 게다가 이 부대에서 생물학 무기 프로그램에 의해 연구된 생물학무기의 사용으로 수만명의 중국인들이 죽었다. 지금은 오랜 세월이 흘러갔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되며, 이 끔찍한 만행의 역사적 사실들을 전 세계인들은 꼭 머리속에 간직하고 다시는 이 세상에서 이러한 비극적 살상과 생체실험이 발생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다음 호에는 전범의 괴수 아돌프 히틀러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45>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