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행문> 동유럽 6개국 여행 기행문 (3)

 

사진은 이번 여행에 함께한 일행들이 헝가리 정착 1000년을 기념하는 영웅광장 앞에서 기념촬영.

<김명열기행문> 동유럽 6개국 여행 기행문 (3)

독일 이야기

 

독일은 우리나라와 참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과거사는 물론 현재에도 무척이나 우호적이며 한국과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사회 등등의 여러 분야에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아주 끈끈하고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도움을 참으로 많이 준 고마운 나라이기도 하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이번의 기행문은 방문하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 경제, 사회등의 많은 부분을 소개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우선 먼저 독일에 대한 이야기와 내가 방문하는 도시들의 소개와 그 지역의 생활 이야기들을 양념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우리말로 일컫는 독일은 중부유럽에 위치해있는 국가다. 시계방향으로 표현하자면 북쪽에 덴마크, 동쪽에는 폴란드와 체코, 남동쪽에 오스트리아, 남서쪽에 스위스와 프랑스, 서쪽과 북서쪽에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델란드와 국경을 이루고 있다.

독일은 유럽 최고의 경제 대국으로 프랑스와 함께 현 유럽연합체제를 이끄는 국가이다. 그리고 EU의 경제를 책임지는 유로존 최대의 물주이기도하다. 수도는 베를린이며 서북쪽에는 북해와 동북쪽에는 발트해와 접해있다. 우리는 우리나라말로 독일이라고 부르는데 자국어로는 도이칠란트(Deutschland)라고 부른다. 이를 풀어서 쓰면 das deutsche land, 즉 독일의 땅이라는 의미가 된다. 도이치라는 말은 고대 게르만어 diutise 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 민족이라는 의미이다.

한국에서 부르는 독일이라는 명칭은 일본의 한자 음역으로 들어온 것이 정착한 것이다. 개화기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덕국(德國) 등의 표현도 쓰였으나 지금 이 표현은 독일의 기술력과 관련되어 독일을 일컫는 인터넷 속어로만 쓰인다. 현재 독일을 상징하는 국기는 검정, 빨강, 금색의 3가지 색으로 구성된 연방기이다. 이와 함께 국장인 독수리가 붙어있는 버전이 있는데, 이는 연방정부의 부처에서만 사용되고 민간과 주정부의 사용은 금지되어있다. 검정은 인권, 억압 및 탄압에 대한 분노와 어둠을, 빨강은 자유를 동경하는 정신을, 금색은 진리와 지혜를 뜻한다. 독일어로 발행된 위키백과사전에는 1813년 해방전쟁에서 나폴레옹에 대항한 뤼트초트 의용군의 군복에서 이 3가지 색이 왔다고 설명한다. 프로이센의 소장(Generar major) 아돌프 폰 뤼트초프 아래로 모인 독일 전역의 의용병들은 저마다 다른 군복이나 사복을 입고 왔기 때문에 여기서 통일성을 주기위해 옷을 검정으로 물들였고, 여기에 금빛 놋쇠단추를 달고 소매는 빨간색으로 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이 세가지 색깔이 가졌던 의미는 다음과 같다. 검은색 부위는 독일이 타국에 짓밟히던 17세기 이전 유럽의 빈곤하던 시절의 독일을 의미한다. 붉은색은 역시 예상대로 프로이센부터 나치 독일까지 이어져온 침략들을 표현하며, 많이 반성하고 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나머지 금색 부위는 밝고 희망찬 미래를 향하여 나아갈 새로운 독일, 전쟁과 침략이 없는 독일을 바라는 독일 사람들의 소원을 표현하고 있다.

독일의 인구는 2017년말 현재 약 9천만명 정도이며 유럽연합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고, 이민자 인구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다.

공용어는 독일어이고 소수민족어나 러시아어, 영어, 소르브어, 덴마크어, 프리지아어도 쓰이고 있다. 고대에 여러 게르만민족이 살던 독일땅은 게르마니아어로 알려져 있으며, 10세기부터 게르만민족의 땅은 1806년까지 존속한 신성로마제국의 중심부를 이루었다. 16세기에 북부독일은 루터교회가 로마 카톨릭으로 부터 분리된 종교개혁의 핵심부로 자리 잡았다.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중에 독일은 최초로 통일을 이루어 근대적인 국민국가가 되었다. 세계 제2차대전이 끝나고 1949년 독일은 연합군 점령지 경계선을 따라 독일민주공화국(동독)과 독일연방(서독)으로 분단되었으나 1990년에 통일되었다. 독일은 연방제와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공화국으로 16개주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는 국내 최대의 도시인 베를린이다. 독일은 유엔과 북대서양조약기구, G8, G20, 경제협력개발기구, 세계 무역기구, 유럽연합의 회원국이다. 독일은 오늘날 유럽의 최강국으로 명목 국내 총생산 기준으로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이며, 구매력 평가기준으로는 세계 5위이다. 수출과 수입규모는 세계 2위이다. 연간 개발원조액도 세계 2위이고 준비지출액은 6위를 기록하고 있다. 독일은 생활수준이 높으며 광범위한 사회보장제도를 이룬 성공적인 나라이다. 또한 독일은 여러 과학기술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연구소는 전세계의 연구소중에서 과학기술이 세계1위이다. 대졸자의 초봉은 2018년 현재 약 4만 유로로 G7국가들중 두번째로 높다.

이상 독일에 대한 상식적인 이야기들을 참고로 알려드렸다. 다음은 우리 여행객들 34명(나의 친구8명=부부동반 포함)이 미국의 각지에서 각자 비행기를 타고 독일에 모인곳이 바로 첫번째 도착지인 프랑크 푸르트인 관계로 프랑크푸르트 시에 대하여 소개를 하여드리도록 하겠다.

<프랑크푸르트> 흔히들 우리들이 말하는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헤센주에 있는 도시를 가리킨다. 다른 하나는 폴란드 국경 근처에 있다. 공식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프랑크푸르트를 (Frankfurt A.M=am Nain)이라고 하지만 오데르 강변의 프랑크푸르트가 워낙에 인지도가 낮다보니, 그냥 Frankfurt라고 써놓았으며 마인강의 프랑크프르트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헤센주의 최대 도시이자 라인-마인 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유럽에서는 손꼽히는 현대적인 대도시로, 런던이나 파리 등의 고풍스러운 옛 건축물들이 많이 있는 유럽의 다른 대 도시들과는 달리 초고층의 빌딩들이 마천루를 이루고 있고, 하이데스크 스타일의 현대식 건축물들이 가득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부 건물을 제외하고는 도시의 대부분이 완파됐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오래된 건축물들은 찾기가 힘들다. 유럽에서 머큐리 시티 타워와 영국의 더 샤드 다음으로 높은 코메르츠 방크 빌딩도 프랑크푸르트에 있다. 이곳은 1세기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유서깊은 도시이다. 한때 신성 로마제국의 수도 역할을 했으며, 제국 의회도 여기에 있었다. 이곳은 경제와 금융의 중심도시답게 외국인의 비율도 높은 편인데, 2017년 기준 프랑크푸르트의 인구 약 29%가량은 외국인이라고 한다. 독일의 대도시중에는 가장 높다. 참고로 독일에서 외국인비율이 가장높은 도시는 오펜바흐로 33%가 외국인 인구인데, 프랑크푸르트 바로 옆의 통근권에 위치한 도시이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경제 중심지이며 런던, 파리와 함께 유럽 금융, 증권,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이다.

독일의 경제력을 상징하는 도시로서 유럽 중앙은행 (ECB)과 독일연방은행이 이곳에 있으며, 독일의 주요 은행인 도이체방크, 코메르체 방크의 본점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독일 증권거래소(도이체 뵈르세)도 이곳에 있다.

아울러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학술의 중심도시인데, 사회학으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발생했던 곳이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큰 책 박람회도 이곳에서 열리고, 독일 국립도서관이 이곳에 있다. 도시의 남서쪽에는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이 있어 유럽의 허브 역할을 하고있다. 이곳에는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있으며, 헤센주 외에도 바텐-뷔르템베르크 바이엘른을 관활 한다. 한국사람들도 약 1만5천명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한국의 인천 공항에서 독일에 올때 수도인 베르린으로가는 항공편은 없고, 루프트한자가 단독으로 다니는 뮌헨헬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항공편이 프랑크푸르트로 들어오고 있다. 이곳에는 한국의 기업으로 삼성, 현대자동차와 LG, 기아 자동차를 비롯해서 수많은 한국의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그로인해 지,상사 요원및 직원들 몇천명이 나와 상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민 프랑크푸르트의 관내 땅값과 세금이 너무나 비싸기 때문에 근처의 에쉬본에 한국의 기업들이 많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들 여행객 일행들이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 내려 로덴부르크로 가기전 점심시간이 되어 근처의 한국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우리들 일행을 제외하고는 그곳에 거주하는 교민들이 식당에 와서 식사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그리 많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제반 식재료들(야채 및 각종양념=된장,간장,고추장등을 멀리 한국에서 공수해옴)을 쉽게 구할 수 없어서 한국음식 값이 대체로 비싸다고 했다. 음식 맛 역시 우리가 먹는 대도시의 음식 맛보다는 훨씬 뒤져 있었고, 한국음식 먹기가 힘들으니 할수없이 감지덕지 하고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날씨는 무더운데, 이곳은 지구의 북반구에 위치해있어서 여름이 짧고 더위가 잠시 머물다 가기 때문에 에어컨 시설이 전혀 안돼 있어 땀을 뻘뻘 흘리며 식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탬파 집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잠을 한숨도 못자고 10여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이곳 독일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맛을 보는 한국음식은 맛이 좋고 안좋고를 떠나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갑고 얼큰하게 목구멍을 달래줄 수 가 있었다. 어쨋거나 식당을 나와 달리는 관광버스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건축물들이 새삼스럽게 눈안에 각인된다.

시내 중심가에는 마인강이 흐르고 있고, 현대 건축물들과 공원, 그리고 구시가지와 함께 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도시이다. <다음호에 이어짐>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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