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떨어져 지는 꽃잎을 보며………..

<김명열칼럼> 떨어져 지는 꽃잎을 보며………..

정원의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 아침마다 즐거움을 선물해주더니, 한차례 비가 내린 후 꽃이 금방 지고 말았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석달 열흘 붉은 백일홍도 있지만, 그 꽃도 끝내는 지고 만다. 싱싱한 아름다움이 열흘이상 가는 꽃은 거의 없다. 아무리 젊고 싱싱하고 예쁘고 잘생긴 청춘도 잠시 잠깐이다. 져서 땅에 떨어진 꽃은 비 때문인지 지저분하다. 하지만 미련 없이 아름다운 꽃을 떨궈내고 다음을 준비하는 자연의 흐름을 보며 우리의 인생을 배우고 있다.

세상의 닥치고 부닥친 일들을 유보하지 말자. 지금이 가장 좋은 때이고,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을 유보하면 한번도 살아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피어나는 꽃의 우열을 말하기는 어려우나 지는 꽃의 모습에는 깨끗한 것과 추한 것의 구별이 완연하다. 아직도 윤기와 광채를 남긴 꽃잎을 바람에 휘날리며 미련 없이 떨어지는 모습과 이미 시들어서 보기에 흉한 꼴로 매달려있는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깨끗하게 지든 추한 꼴로 지든, 꽃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것들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바라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걸 보는 이의 기분도 쓸쓸하고 허전하다.

거기에 매달린 채 하루 하루 시들어가는 라일락이나 넝쿨장미의 모습도 보기에 딱하지만, 하늘하늘 바람에 휘날리는 벚꽃 또는 해당화의 낙화풍경은 더욱 무상을 일깨운다. 그러나 새봄이 되면 또다시 생명력 넘치는 꽃을 피우며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까닭에, 우리의 마음은 가벼운 아쉬움만 느낄 뿐 크게 상심하지는 않는다. “꽃 이파리 한조각 날아도 봄은 줄어드는데=一片花飛滅却春,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에 시름만 가득하구나”이 시는 동아시아의 시성(詩聖)으로 추앙받는 두보의 시 곡강(曲江)의 첫 구절이다. 꽃은 피었다 지는 것이 동서고금의 변함없는 이치이지만 지는 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왠지 허전하고 허무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인생의 내리막길, 황혼녘에 접어든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낙화(落花)는 자신의 처지와 묘한 연상 작용을 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옛날 이맘때, 봄이 무르익어가는 계절, 내 고향 시냇가 뚝방에 흐드러지게 피어났던 벚꽃이 하나 둘 떨어져 물위에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세상의 무상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사물의 이치나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할 소년시절이었지만, 그 어린 시절에도 세상의 무상함이나 인생의 덧없음을 어렴풋이나마 느꼈었기에 이러한 생각이 머리속에 떠오른듯하다.

나의 어린 소년시절, 그때에는 유명한 가수 남인수씨가 부른 “낙화유수”가 시골에서는 널리 퍼져 유행가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흘러가는 물위에 떨어져서 흘러가는 꽃을 보고 흔히들 낙화유수(落花流水)라고도 표현하며 노래로 부르기도 하였다. 한국 최초의 창작가요인 낙화유수를 읊조리며 새삼스레 인생무상이 머리에 다시 떠오르는 것은 웬 까닭일까?. 낙화는 떨어지는 꽃, 유수는 말 그대로 흘러가는 물이란 뜻이다. 떠나가는 봄, 한때 번성했던 세력이 보잘것없이 쇠퇴해가는 것을 비유해서 쓰는 말이기도 하다.

세속적 권위가 영원무궁한 것은 아마도 이 세상에는 없을 것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도 있듯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의 세력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하며 터무니없는 호기와 만용을 부리고 거드름까지 피운다. 북한의 김정은이가 대표적인 예인 것 같다. 한국의 위정자들 역시 이와 비슷한 위인들이 많았었고, 지금도 그러한 착각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낙화유수는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란 뜻으로, 꽃은 흐르는 물에 뜨길 바라고, 흐르는 물은 꽃잎이 떨어지길 바라는 뜻으로 젊은 남녀간의 은근한 사랑을 비유하는 사자성어로도 사용된다.

낙화유수라는 말이 유래된 것은 옛날 중국 당나라 시대의 시인 고변이 지은 시, 방은자불우(訪隱者不遇)에서 떨어지는 꽃이 강물위에 흐르는데서 넓은 세상을 알고, 술에 반쯤 취하여 한가하게 읊으며 혼자 왔다(半醉閑昑獨者來)의 구절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꽃을 비유하여 세속의 덧없음과 권력이나 젊음은 영원할 수 없다는 말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도 자주 쓰이고 있다. 이와 더불어 권불십년이란 말도 함께 따른다.

옛날 중국의 역사 이야기이다. 조나라, 위나라, 초나라, 연나라, 제나라를 잇달아 무너뜨리고 기원전 221년 중국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은 진나라가 자손만대를 이어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덕이 3황(三皇)보다 낫고 공적으로 5제(五帝)보다 높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칭호를 왕에서 황제(皇帝)로 바꾼 사람이다. 이어 그는 자신이 첫 황제이므로 시(始=처음 시)자를 붙여 시황제(始皇帝)라 칭했다. 그런 이후 아들을 2세황제, 그 다음을 3세 황제라고 부르게 했다. 그러나 불로장생과 영원한 제국을 꿈꿨던 진시황은 천하통일 11년만인 기원전 210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같이 하늘을 찌를듯하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진나라도 2세황제 호해에 이르러 2대 15년만에 패망하고 말았다. 진시황 사망 후 5년을 넘기지 못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 같다. 낙화유수역시 같은 비유의 말이다. 꽃은 아름답게 피어나지만 그 아름다움이 영원히 지속되지 못하고 잘해야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시들어 떨어지고 만다.

박근혜 정부를 탄핵시키고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정권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더군다나 최근에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남북 정상회담을 가진 후 그의 인기는 83%를 윗돌고 있다. 집권 1년차 인기도에서는 그 어느 역대 대통령들보다 앞선다. 그러나 세계의 역사를 보거나 과거 한국의 정치사를 비춰 보건데 그 어느 누구도 이러한 인기와 권세는 오래가지를 못했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이 오만과 독선, 독재를 불러왔고 그로인해 말로는 비참하게 끝을 맺은 위정자들이 많았다. 나의 생각으로는 이러할 때 오히려 더욱 겸손하고 낮아져서 국민위에 군림하는 위정자가 아닌, 섬기고 낮아져 봉사하는 국민의 공복(公伏)이 되어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 되어줬으면, 하는 바램이 앞선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붉고 탐스러운 꽃이라 하여도 열흘을 넘기기 어렵고,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가라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뜻을 명심하여 자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새로운 정권이 탄생할 때마다 최고 통치권자는 가장 깨끗하고 도덕적인 정권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해왔다. 그러나 모두가 그러하지를 못했다. 현재의 문재인정권도 불행한 전철을 가는 말로를 밟지 않기를 희망해 본다.

요즈음 지는 꽃을 바라보는 것만큼 서글픈 것은, 나는 새도 떨어뜨릴 것 같은 권력을 누리던 전날의 대통령이나 고관대작들이 줄줄이 감옥으로 가는 모습들이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부당하게 부정행위와 사리사욕, 뇌물을 챙겨서 배를 채웠으니 배탈이 나고 벌을 받을 수밖에….. 이것을 두고 사필귀정이라고 한다. 인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이 높은 자리를 탐하고,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에게 권력을 주면 반드시 탈이 나게 마련이다. 공직에 나가는 사람이 부와 권력과 명예를 모두 다 누리려고 하니 탈이 날수밖에 없다. 사람의 앞날 일을 알 수는 없으나 이제 감옥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떨어진 꽃잎처럼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명예를 회복하고 이 세상에서의 삶을 잘 마무리하고 살기는 쉽지가 않을 것 같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