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옛날 시골 내 고향 여름밤의 추억
옛날 시골에서 해가지고난후 저녁때 모깃불을 피울 때는 들판에서 베어온 뺑쑥을 말렸다가 불을 피우고 그 위에 조금 전에 베어온 날 풀을 올려놓는다. 만일 마른 뺑쑥만 태우면 연기가 나지 않고 금방 다 타버리기 때문에 잘 타지 않는 조금 전에 베어온 마르지 않은 풀을 올려놓아 연기를 많이 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매케하고 독한 뺑쑥 냄새와 젖은 풀의 연기가 섞여서 모기들은 사람 곁으로 가까이 접근을 못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왕겨를 한무더기 마당가에 쏟아 붙고 불을 지핀다. 어느 정도 알불이 생기면 그 위에다가 소꼴로 베어온 풀을 얹는다. 매콤한 연기가 마당을 자욱하게 덮을 때면 멍석을 깔아놓은 위에서 할머니의 느린 부채질이 시원하기도하지만 매운 연기를 없애주기도 한다.
옛 시절 농촌의 한여름밤은 어떻게 보면 낭만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지금같이 무더위가 맹위를 떨칠때면 엄밀히 말해서 모갱이(모기의 충청도 사투리)들과의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해가지고난후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후의 밤에는 아예 뒷간(화장실)에 가는 걸 포기해야먄 했다. 허리띠를 풀고 바지자락을 엉덩이 아래로 내리고 맨살의 엉덩이짝을 내놓고 용변을 볼라치면 기다렸다는 듯이 모갱이떼들이 단체로 달려들어서 피를 빨아대며 회식 파티라도 여는 기분이다. 이럴 때는 모기가 엉덩이짝에 달려붙지않게 하기위해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볼썽사납게 볼일을 보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집안에 가축을 키우면 모기떼의 극성은 더 할 수 없이 굉장했다. 특히 돼지우리나 소 외양간은 모기떼의 천국이다. 암 모기가 제 새끼들을 위
해 피가 필요한데,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피가 가축들이다. 사람의피는 자기들의 필요한 양의 5%정도만 섭취를 한다. 비록 5%지만 당시의 옛날에는 샤워시설도 없던 환경에서 씻는걸 죽기보다 싫어했던 아이들이 주요 타켓과 목표물이 되었다.
그래서 자고 일어나면 특히 얼굴이 모기에 물려서 퉁퉁부은 얼굴로 학교에 오는 아이들이 참으로 많았다.
비록 모기와의 전쟁을 치뤄내는 힘겨운 여름밤이었지만 모깃불을 피울때면 늘 기다리는 군것질이 있었다. 감자나 옥수수, 고구마를 알불에 넣어 구워내서 열무김치국물과 함께 먹는 맛이란 글자그대로 둘이 먹다 한사람이 죽어도 모를 정도이다. 여기에 한가지 더 추가한다면 그 당시에는 6.25전쟁이 일어난지가 몇 년이 안된 때라서, 미국에서 전쟁구호물자로 보내온 우유가루를 국민학교에서 배급받아 밥위에 쪄서 만든 우유덩어리가 어린아이들에겐 유일한 간식거리였고 과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딱딱하게 돌처럼 굳어진 우유덩어리를 입안에 엏고 침으로 녹여가며 씹어 먹는 맛이란, 지금 세상에 아무리 맛있는 과자나 주전부리가 있다고 해도 그 맛을 따를 수는 없으리란 생각이 든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멍석위에 벌러덩 누워서 하늘에 총총히 떠있는 별을 세고, 반짝반짝 빛을 발하며 날아다니는 개똥벌레의 불빛에 이끌리어 밤이슬내린 풀숲을 바지가랭이를 흠뻑 적셔가며 쫓아다녔든 기억들이 이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옛날의 아름다웠던 추억이 되어버렸다.
7월이 물의 계절이라면 8월은 빛의 계절이다. 기나긴 장마전선이 물러나고 햇볕이 가장 강렬하게 내려쬐는 8월이 되면 음력으로는 칠월달이 된다. 금년의 달력을 보니 올해는 음력으로 윤달이 끼어있어 5월달이 두번이나 겹친다. 예년의 경우 8월 초순이면 대개 7월7석이 되는데 올해는 8월28일이 음력 칠석이다. 이맘때 시골의 농사일은 논에 김을 매거나 피를 뽑는 것, 고추를 따서 말리고, 어린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와 냇가의 풀밭에 소를 풀어놓고 멱을 감는것, 소꼴을 베는 것, 토끼풀을 뜯고 논두렁에서 닭에게 줄 개구리를 잡는 것 등으로 하루를 보내며, 식구들은 들판에 나가 일을 마치고 해질녘에 집에 온다. 더위 먹어 데워진 방안은 열기가 가시지 않아서 방문을 있는 대로 다 열어놓고 모기장이 있는 집은 방에 미리 모기장을 쳐놓고 더위를 피해서 온 가족이 마당으로 나온다. 어머니가 저녁을 준비할 때 아버지는 마당위에 멍석을 깔고 모깃불을 피워놓는다. 매케한 모깃불연기가 집안을 휘감을 때 호박잎과 된장으로 쌈을 싸서 꽁보리밥 한그릇에 게눈감추듯 밥한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늦은 점심을 먹고 누나가 골밭의 수박(참외)밭에서 따온 참외와 수박을 찬물이 솟아나는 샘물에 담가놓았다가 배꼽시계가 출출시를 가리킬때쯤해서 우물에 담가놓은 수박과 참외를 꺼내온다. 한손으로는 부채로 모기를 쫓고, 수박을 한입 베어 물고는 할머니를 보챈다. 할머니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서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느덧 하늘에 빛을 발하며 총총히 떠있던 수많은 별들이 우리집 마당으로 내려온다. 수없이 많은 별들이 나의 눈속과 얼굴, 가슴 등 온몸 가득히 내려앉는데도 할머니의 재미있고 구수한 옛날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옛날 하늘의 옥황상제에게는 직녀라는 예쁜 딸이 하나있었다. 저 하늘의 한가운데 가장 밝은 별인 직녀는 온종일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짜는 일을 하는데, 그녀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다른 별들이 구경을 하느라고 멈추어 서곤 하였다. 하루는 베틀의 북을 내려놓고 창가에서 건너편 하늘의 강둑을 따라 양과 소떼를 몰고 가는 목동인 견우를 보게 되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첫눈에 반해서 옥황상제에게 결혼을 시켜달라고 하였다. 사랑에 빠져 각자 자기의 할일을 게을리 하게 되자 화가 난 옥황상제는 견우를 은하수 건너편으로 쫓아내고 음력 칠월칠석 하루만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비가 오는 날이면 강물이 불어나 배가 뜨지 못해, 강 언덕에서 직녀가 울고 있는 것을 본 수많은 까치와 까마귀들이 날아와 그들의 날개로 오작교를 만들어 서로 만나게 해주었다. 그것이 은하수다.
칠석날 저녁에 비가 오면 만나서 기쁨으로 흘리는 감격의 눈물이고, 이튿날 새벽에 내리는 비는 헤어짐의 이별과 아쉬움으로 흘리는 눈물이라고 한다. 무더위도 잊게 하는 할머니의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 모기향을 피우시고, 넓적한 두루마리 멍석을 깔고 모기 쫓는 뺑쑥불의 향기가 추억의 그리움을 피워주고, 나는 팔베개를 벤채로 높디높은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이 그리움으로 쏟아진다. 얼마 전 그리운 별들이 보고 싶어져서 늦은 저녁을 먹고 난 후 여름밤 산책을 나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지만 하늘은 희뿌옇게 도색되어 별들이 보이지 않고 빛마저 감춰져있다. 옛날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그 별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때의 그리움들과 추억들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082/2017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