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 칼럼> 한 여름의 추억

<김명열 칼럼> 한 여름의 추억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나의 집 화단에 관상용으로 심어놓은 파인애플이 열매를 맺어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7월달에는 청포도가 주절이 주절이 열려 익어가고 있다고 육사는 시를 지어 노래했지만, 이 7월달에 내 집에는 포도나무가 없어 청포도는 열리지 않지만 파파야와 파인애플은 뜨거운 햇볕을 받아 잘 자라고 익어가고 있다.

시인 이육사가 지은 ‘청포도’ 내용을 보면, 내 고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이하 생략~

여기서 그 뜻을 음미하여 본다면, 내 고장은 풍요로운 삶과 인간의 새로운 삶을 약속하는 땅을 의미했고 칠월은 생물의 성장이 가장 왕성한 것으로 생각하는 시간이며, 청포도에서 청색은 청신하고 풍요로움을 표상하고 희망적 이미지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익어가는 시절은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 탐스럽게 영그는 청포도에 초점을 맞추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吐露)하고 있다.

이 청포도에 대한 시 내용을 자세히 이해하고 감상해볼 것 같으면 고향의 청포도를 제재로 삼고 있는데, 고향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고향에서 함께 지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 조국을 상실한 일제 침략기에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을 갈망하는 민족정서를 엮어내고 있다. 개인의 서정이 어떻게 민족적 서정으로 바뀌는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작품의 시는 한국 사람이라면 거의가 모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잘 알려진 시다. 특히 학창시절에 국어교과서에 실린 이 시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꿈을 심었고 문학에 대한 이상을 키우기도 했다. 그리고 아련히 떠오르는 고향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기도 했다. 특히 이 여름의 상징인 지금의 7월달에는 그 어느달이나 계절보다도 사람들은 많은 추억들을 만들어 놓고 있다.

나의 살던 고향 충청도의 시골마을에서는 이맘때쯤이면 모내기농사를 일찌감치 끝내놓고 심어놓은 모(벼)가 잘 자라도록 호미로 논을 초벌, 재벌을 하며 김을 매준다. 한편 밭에서는 콩밭을 매주고 고구마 밭에 두엄을 쌓아 높이며 참외밭에서는 일찍 익은 수박이나 참외를 따내어 차가운 샘물에 담가놓았다가 저녁에 들에서 일하고 돌아와 목마른 갈증을 해소하고 지친 몸의 피로를 풀어주는 청량제로서 먹는 맛이란 글자그대로 ‘둘이 먹다 한사람이 죽어도 모를 정도=Two man chap chap One man die I don’t now’라는 속된 코미디언 말처럼 꿀맛이다. 여기에 곁들여 으슥한 밤이 되면 장난기 많고 심술궂은 아이들이 참외(수박)밭으로 몰래 숨어들어 참외서리를 하는 것도 바로 이 한 여름밤에 성행? 되던 시골의 빠질 수 없는 추억 이야기이다.

지나간 세월과 시간속의 추억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의 머리와 가슴속에 다가올 때가 많다. 사람들은 누구나 추억을 갖고 있다. 그 추억이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지나간 날들의 모든 일들이 시간과 세월이 흐르고 나면 추억으로 변한다. 추억은 기본적으로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일을 가리켜 말해 추억이라고 한다. 오늘은 지나간 날들에 대한 그리움의 보따리를 풀어본다. 그리운 사람들, 그리운 풍경, 그리운 지난시절을 떠올리며 오늘의 현실을 떠나 아득한 그리움으로 다독여본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개가 다 그리움의 흔적들을 어루만져 생의 에너지와 문학의소재로 만들어낸다. 이렇게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란 추억으로 변하여 언어의 생명력을 건져 올리는 절대적 수원지(水原地)로 가능하다. 그리운 추억의 대상에 대한 갈구가 글이나 언어의 결을 타고 흘러나와 지치고 고단하게 살고 있는 우리들을 위무해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글을 쓰고 있다. 나의 글을 통하여 많은 분들이 힘을 얻고 희망을 가지며 위로와 격려의 도움을 받는다고 이메일을 보내준다. 책은 일 년 내내 한권도 못 읽어도 신문에 게재된 나의 글은 빠짐없이 꼭꼭 읽는다는 독후감의 말이 이를 증명해준다.

어쨌거나 추억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인생을 풍요롭고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우리들 모두의 가슴속에는 말갛고 고요한 우물 하나가 있다. 바로 추억을 깃는 우물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에 소낙비를 맞아도, 가을에 곱게 물들여진 단풍진 낙엽을 보아도, 쌩쌩 찬바람 불며 눈보라 몰아치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윽한 커피 향을 맡을 때도, 이른 봄 하얗게 피어난 매화꽃이 꽃샘추위 찬바람에 꽃봉오리를 흔들 때도, 왠지 모르는 그리움과 향수에 젖어 밀려드는 추억에 가슴이 미어지고 저려오기도 한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도 애틋하고 아련한 추억이 없는 삶은 황량하고 무의미한 삶이다. 누구나 추억을 많이 가지게 되면 인생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이것이 바로 매일 소처럼 일만 하지 말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하는 그 이유 중의 하나이다.

우리들 인생에 있어서 좋은 추억은 마음속의 난로와 같다. 그것은 언제나 되살아나서 차겁게 식어진 우리의 마음을 따듯하게 데워주기 때문이다. 좋은 추억일수록 울림이 오래가고 시간과 세월이 지날수록 그 맛과 향이 풍부해진다. 가슴 아프고 기억하기 싫은 나쁜 추억조차도 시간과 세월이 많이 지나고 나면 어느 듯 애틋함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추억속의 우물에 고인 기쁨, 고통, 아픔, 슬픔, 원망, 증오, 후회등도 어느덧 많은 세월이 흐르고 보니 이제는 말갛고 감미로운 포도주빛깔로 바뀌어있다. 이렇게 추억은 지나온 생을 아름답게 만들고 앞으로 영위할 삶을 기대와 흥분으로 두근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어두운 밤에 빛을 발하며 날아다니는 개똥벌레(반딧불)도 쫓고 얼마 후에 칠월칠석에 만나는 견우, 직녀를 보러 밖으로 나가자. 이것저것 볼거리 즐길거리를 찾아 머리와 가슴속에 남는 아름다운 한여름, 7월달의 추억을 만들어보자.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078>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