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흙냄새, 땀 냄새가 어우러진 나의 고향

<김명열칼럼> 흙냄새, 땀 냄새가 어우러진 나의 고향

지난 3월달에“고향의 진달래”제목하에 글을 올렸을 때 독자 여러분께서 공감하는 독후감을 보내주었는데, 몇 주 전에 게재한 “내 고향 옛날의 서당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 여러분이 또한 독후감을 이메일을 통하여 보내주었다. 나의 글을 읽은 분들 모두가 그 글을 읽고, 토속적이며 향토색이 물씬 풍기는 고향의 정겨운 이야기라고 소감을 전해주었다.

나는 시골의 농촌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내서 그런지 흙냄새, 땀 냄새 묻어나는 향토적인 내용의 글을 진솔하고, 나의 겪고 생활했던 그대로를 체험 속 바탕으로 자주 써서 게재한 적이 많았었다. 이메일을 보내준 독자들 거의가 다 고향이 시골의 농촌이었다는 말을 곁들였다. 고향, 시골, 사람들의 땀 냄새가 베이고 토종닭이 홰를 치고 울며 날이 밝았음을 알리는 그곳, 누렁이가 꼬리를 치며 반기고, 냇가에서 발가벗고 멱을 감으며, 보또랑에서 얼게미로 붕어와 송사리 미꾸라지를 잡던, 그 추억들이 함재한 정겹고 흙냄새 나는, 그 속에 젊은 꿈이 서려서 미래를 위해 태동하던 그 고향은 어느 누구나 다 가슴과 머릿속에 잔재하여 자리 잡고 떠나지 않고 마음속에 박혀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조상때부터 대대로 살아온 곳을 가국(家國), 고원(故園)시골, 향국(鄕國), 향리(鄕里)라고도 하며 향토(鄕土)와도 맥을 같이한다. 그런데 최근의 현실을 보면 고향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고향이라는 것이 애매한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아버지의 고향과 어머니의 고향은 당연히 다를 수 있지만, 아버지의 고향과 나의고향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또 내가 태어났지만 자란 곳은 다른 곳에서 자라서 고향이라고 이름을 부르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고향과 같은 향토는 내가 태어나서 자라고 공기, 흙, 물, 나무, 풀, 이웃과의 정, 지정학적인 관계 등이 오롯이 나와 함께 존재하고 이웃하며,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한결같이 어머니의 모습으로 따스하고 정겨우며 마음의 밭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객지생활을 하는 사람도 시간이 나면 언뜻 언뜻 고향생각을 하고, 곧장 달려가서 고향의 모습을 보고 싶고, 동구나무를 달려가 껴안고 싶고, 어릴 적 같이 자란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은 곳이다. 서정어린 정경을 담은 문학이 문학의 출발점이라고 어느 누군가의 독자분께서 독후감을 보내준 것에서 읽을 수 있듯이, 모든 향토색 짙은 소재의 글들이 이러한 고향을 무대로 많이 쓰여 왔다. 혹자들은 서정문학이 너무 진부하고 고루하고 시대상과 맞지 않고 인간의 내면과 희노애락을 노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여 문학적 소재로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각박한 세상이 보여주는 현실은 한참이나 도를 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무섭고 어렵고 힘들고 지친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높고 낮음 없이 풀어주고 위로해주고 어루만져 주는데는 향토를 소재로 한 정감어린 글들이 제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써 올리는 많은 글들이 대부분 시골(고향)을 소재로 삼고 흙냄새, 땀 냄새나는 향토적인 모습과 풍경들을 주재로 떠올리곤 한다. 이로 인해 일반 독자들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쉽게 공감할 수 있으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향토색 짙은 글들이야말로 마음의 안식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필수 영양제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고사성어의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여우가 죽을 때 제 살던 굴쪽으로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흔히 사람들이 사는 인간사회에 비유하여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많이들 표현하여 사용하고 있다. 꿀벌이나 개미, 비둘기, 제비 등의 동물들도 서식처에서 멀어졌을 때 자신의 둥지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강하다고 한다. 이러한 성질을 우리는 귀소본능(歸巢本能)이라고 한다. 사람에게도 이렇듯 귀소본능과 비슷한 특성이 있다. 우리는 명절때만 되면 고향을 찾는 많은 사람들과 끝없는 자동차의 행렬을 언론매체를 통하여 보게 된다. 모두가 자신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을 찾는 발걸음이다. 이것은 자신들의 소중한 추억에 대한 향수이기도 하다. 이렇듯 고향을 찾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수구초심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말은 근본을 잊지 않는 마음을 뜻하기도 한다.

현대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 거의모두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다. 특히 이역만리 머나먼 미국 땅에 이민 와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우리들 이민1세들은 100% 모두가 고향과 조국을 떠난 이방인들이다. 고향 아닌 곳으로 가서 살기위해 그토록 열심히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설이나 추석, 또는 어느 문장이나 글월에서 고향의 이야기나 향토적인 시골“특히,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의 내용이 담긴 고향의 봄 노래가 나오면 타국에 와서 살고 있는 모든 한인 이민자들은 눈시울을 적신다”. 옛날모습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누구나 향수에 젖게 되고 고향을 생각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통의 마음이나 감정)의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존재의 출발점이다. 그 시원(始原)을 떠나 살아야했던 한국인은 너나없이 이방인이다. 떠나고 싶어 떠난 것이 아니라면 한국인에게 고향은 살 수 없는 곳, 버리고 떠나야했던 집, 소외의 장소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꾸 고향을 생각하고 그곳을 못 잊어 하는가? 열심히 떠나고 열심히 되돌아 회상하는 이 두개의 운동 사이에는 화해시키기 어려운 간극과 모순이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이 두 사이에서 정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그 정점을 찾지 못하고 오늘도 고향을 그리워하고 회상하며 향토색 짙은 고향의 이야기를 소재로 엮어 글을 쓰고 있나보다.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072/052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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