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음력 섣달그믐과 설

 

<김명열칼럼> 음력 섣달그믐과 설

지금은 양력으로 1월 달이지만, 음력으로는 일 년 중의 마지막 달인 섣달이다. 1월23일은 음력으로 섣달 스무엿새이고 1월 25일은 섣달 스무 여드렛날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절기상으로 섣달이 다 지나가면 겨울이 다 간 것으로 생각하였다.
지난 1월 5일이 소한, 20일이 대한, 28일은 음력 설날이고 다음달 2월4일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이다. 섣달이란 설이 드는 달이란 뜻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은 설이 음력 1월에 해당하지만, 수천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는 동안 한해의 출발을 어떤 달로 삼았는가 하는 것은 여러 번 바뀌었다. 그중에는 음력동짓달 즉 11월을 첫 달로 잡은 적도 있었다.
동지팥죽을 먹으면 한살 더 먹는다고 하는 말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도 그런 생활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12월 1일을 설로 쇤 적도 있는데 옛 조상들은 이달을 설이 드는 달이라고 하여 ‘섣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설달이 섣달로 된 것은 술가락이 숟가락으로 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금은 1월 1일(정월)로 바뀌었지만 섣달이라는 말은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나의고향에서 보면 섣달에는 농부들이 짚으로 새끼를 꼬아 멍석, 망태기, 가마니를 짜면서 기나긴 겨울밤을 보냈다. 간식거리로는 고구마나 동치미를 맛있게 먹었다. 때로는 땅속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두었던 무나 밑동(배추뿌리)을 꺼내다 잘라서 어기적 어기적 씹으며 헛헛증을 달래기도 하였다. 섣달에는 국민학교(초등학교)가 겨울방학을 시작한때라서 밤중에 방학숙제를 석유등잔불 아래서 하고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 콧구멍이 새까맣게 그을려서 굴뚝을 연상케 하기도 하였다. 섣달이 끝나는 그믐밤을 전후해서는 재미있는 민속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그믐밤과 설날을 맞으며 옛날 나의고향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설(양력 1월28일)은 추석과 함께 우리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설 바로전날인 ‘섣달그믐’부터 몸가짐을 조심하면서 새해의 아침을 맞았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다양한 세시풍속이 전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풍속으로 수세(守歲)가 있다. 수세는 음력 섣달그믐날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등불을 켠채 지키면서(守) 새해(歲)를 맞이한다는 뜻이다. 만약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변한다는 속신(俗信)에 따라 각자 마음가짐을 다지거나 가족끼리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밤을 새웠다. 이날만큼은 잠을 자지 말고 농촌에서는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한손님이 올 때 마중 나가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관습으로 전해진다. 옛날 나의 어린 시절, 섣달그믐날밤에는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변한다는 걱정(?)에 모두들 모여서 다음날 설날 제사상에 올릴 부침개를 부치고, 가래떡을 썰고(떡국을 만들려고), 조청을 고고, 집에서 담근 막걸리(술)을 빚고, 생밤을 껍데기를 까고(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과일을 씻고 다듬 등 제물을 준비하면서 무척 바쁘고 분주하게 그믐밤을 보냈다.
나 같은 어린애들은 어른들 일하시는 틈에서 기웃대거나 겨울방학숙제를 하고, 그도 아니면 또래의 아이들끼리 모여 숨바꼭질이나 공놀이, 편 갈라서 게임하기 등의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밤이 이슥해져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에 겨워 이내 쓰러져서 깊은 잠속으로 빠져든다. 이때 짓궂은 어른들은 잠자는 아이의 눈썹에 밀가루나 떡가루를 하얗게 칠해놓고 아이를 깨워 일으켜 세우고 일찍 잠을 잤기 때문에 너의 눈썹이 하얗게 변했다고 놀려, 거울을 본 아이는 그만 으~앙 하고 울음보를 터뜨린다.
이것을 본 어른들은 재미있다고 박장대소하며 깔깔대곤 했다. 지금은 사라져간 옛 풍습의 재미있었던 이야기이다. 또 설날, 정월초하루에는 야광귀(夜光鬼)가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속설도 있다. 야광귀는 이날 사람이 사는 집에 몰래 내려와서 신발을 훔쳐가는 귀신이다. 봉당이나 마루 밑에 가지런히 여러개가 놓여있는 가족들의 신발을 신어보고 자기의발에 꼭 맞는 것을 신고 달아나버린다고 한다. 옛날 시골의 어른들은 야광귀가 신발을 가져가면 잃어버린 사람에게 일 년 내내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이유로 신발을 감춰놓은 뒤 체를 마루 벽이나 장대에 걸쳐놓았다고 한다. 벽이나 장대에 체를 걸어두면 야광귀가 체에 뚫린 구멍을 세다가 새벽닭이 울면 신발 훔쳐 가는 것을 잊어버리고 서둘러 달아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밖에 설날의 금기풍속으로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 많다. 여성과 관련된 것도 많이 있다. 그중에 집안의 곡식을 밖으로 내면 한 해 동안 재물이 샌다고 해 조심을 했고, 부엌의 재를 치우면 불(火)로 상징되는 밝은 기운이 사라진다고 믿어 그날만큼은 재를 치우지 않았다. 또 여자들은 남의 집에 가지 말아야했고, 바느질도 하지 않았다. 여자들을 낮춰본 남존여비사상에서 비롯된 속신으로 남의 집 입장에서, 여성의 설날 첫 방문은 불청객으로 재수 없는 손님으로 여겼다. 바느질은 수선의 이미지가 있어 궁핍한 살림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기피했다. 설날에 바느질을 하면 생인손을 앓거나 손에 가시가 든다는 말은 궁핍해지는 것에 대한 염려를 에둘러서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자들에 대한 금기도 있었다. 설날에 상가에 다녀온 남자나 개고기를 먹은 남자는 부정이 들었다고 생각해 남의 집에 출입하는 것을 꺼렸다. 상가는 죽음의 전염을 상징하고, 개고기는 불교문화가 민속신앙에 스며들어 반영된 속신이다.
설날 이른 아침 새벽은 복조리장수들의 대목 날이다. 복조리는 복을 불러오는 상징으로 집집마다 안방문 위나 부뚜막위에 성냥이나 실, 초, 동전이나 지폐들을 넣어 한두개쯤 매달아 놓았다. 특히 설날아침에 까치소리나 송아지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사랑방에 앉아 계신 아버지께서 올해는 풍년이 든다며 넌지시 한해를 점치며 기뻐하셨다. 할머니나 어머니들은 정월초하룻날 저녁 머리카락을 불에 사르는 풍속이 있었다. 이는 지난 1년간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상자 속에 모아두었다가 설날저녁 문밖에서 태움으로 병을 일으키는 악귀를 쫓기 위해서였다. 이는 당시에 유행한 장티푸스나 콜레라 등의 무서운 전염병을 염두에 두고 행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근본적으로 부모에게 물려받은 머리카락 하나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부모님에 대한 보은의 표시인 것이었다.
이처럼 섣달그믐을 보내고 맞이하는 설은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향한 새출발의 시작점이자 한해를 열심히 살겠다는 자기 다짐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문필가 / 탬파거주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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