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봄의 꽃을 바라보며………..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나의고향은 산 높고 물 맑은 충청도의 어느 시골마을이다. 남한강 상류의 지천(枝川)이 되는 냇물이 마을 앞으로 흐르고 여름이면 강물을 거슬러 올라온 붕어, 메기, 피라미, 불거지, 모래무지 등의 고기들로 성어(盛漁)를 이루어 땀 흘리고 힘들게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식탁의 건강식 매운탕으로 피로를 풀어주는 보신탕이 되기도 하였다. 지금쯤 나의고향 산과 들에는 봄빛이 가득할 것이다.
이른 봄의 꽃인 진달래나 개나리가 지고나면 어김없이 얼굴을 내미는 살구꽃과 복사꽃, 그리고 배꽃과 앵두꽃이 집 안팎을 단장하고 그윽한 꽃향기로 품어준다. 고향을 떠나온 지 몇 십 년이 지났것만, 해마다 이 무렵이면 고향집의 정경이 삼삼하게 그려진다. 봄물로 가득차
게 물든 산천은 나의 어릴 적 추억을 새록새록 샘솟게 하고, 여기저기 다투어 피어난 꽃들은 눈물 나도록 아름답고 애틋하게 보인다. 이제는 봄의 대명사인 4월도 하순에 와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바쁘게 살아온 나날들이다. 이제는 여물대로 여문 봄빛은 산과 들,강
과 바다에 골고루 퍼져서 어디를 가도 그 산뜻함과 화사함에 푹 빠지고 취할 수 있다. 봄만이 우리들에게 주는 위안이고 에너지다.
봄을 심하게 타는 이들 일지라도 저 아름다운 꽃들 앞에서는 누구나 시인이 되지 않을까?……..이즈음 산과 들의 자연동산은 온통 꽃과 갓돋아난 새싹들로 장관을 이룬다. 이 땅을 가득 덮은 초목과 아름다운 꽃들은 참으로 대견스럽다. 그러나 일상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 꽃이 피고 지는지 알지 못한다. 먹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먹고 사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자연의 예찬은 먹고 사는 것과 다르다. 삶에서 한발짝 물러나 꽉찬 마음을 조금만 비우면 된다. 이세상의 모든 것들은 자연에서 나왔다. 삭막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메마른 가슴과 머릿속을 그 누가 달래주고 위로해 주며 평안을 안겨줄 것인가. 그것은 자연밖에 없다. 이것만은 변할 수 없는 진리다.
옛날 시골의 내고향집은 봄이 된 이맘때면 살구꽃, 복숭아꽃, 앵두꽃, 오얏나무 꽃으로 꽃대궐을 이룬다. 복사꽃이나 앵두꽃이 좀 더 화려하고 빛이 난다면 살구꽃은 수더분한 여인의 옷맵시 같다. 어떤이는 이 살구꽃을 일러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사회 초년생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수수하고 정갈하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다. 수줍은 듯 하면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은근하고 당찬 멋이 풍긴다.
옛 선비들은 살구꽃 필무렵에 내리는 비를 행화우(杏花雨)라 해서 좋아했다고 한다. 살구꽃이 피어나고 열매가 열려, 6월이 짙어갈 무렵에 살구가 익어 따먹게 될 때에는 나는 살구를 따서 책보에 넣어 학교에 갖고 가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매년 연례행사처럼 행하는 나만의 자선사업?이 되었다. 어느 때는 집안 5~6그루의 나무에서 열린 살구가 넘쳐나 동네사람들과 이웃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는 인정의 미풍양속 전달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살구에도 개살구와 참살구가 있는데, 개살구는 그 맛이 시고 떫지만 참살구는 달고 맛이 있다. 시골에서 살았던 분들은 다 알겠지만, 어린 시절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열려있는 살구는 허기진 배를 채우는 요긴한 열매였다. 어느 때는 살구를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난적도 여러번 있었다. 한방에서는 이 열매를 행자(杏子)라 한다. 씨는 한방에서 약재로 쓰이며 차로도 우려내 먹는다.
살구에 얽힌 재미있는 고사(古事)의 이야기다. 옛날 중국의 후한시절 재상 조조가 뜰에 살구나무를 심어두 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매일매일 살구열매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하루는 머슴들을 모아놓고 “이 맛없는 개살구나무를 베어버리라”고 했다. 그랬더니 한 머슴이”이 살구는
참으로 맛이 좋은데 왜 베어냅니까?” 라고 했다. 조조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바로 네놈이로구나”하고 살구를 훔쳐 먹은 그 머슴(도둑놈)을 잡았다는 일화도 있다.
살구꽃이 피면 봄은 절정에 달한다. 꽃잎이 꽃비가 되어 흩날리는 모습을 본지가 까마득하다. 살구꽃을 비롯해 모든 봄꽃들은 한 순간에 피고 지면서 저마다의 마음에 아름다움과 상실감을 함께 안겨준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렇다 노래의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봄꽃들은 칙칙하던 땅에 환한 잔칫상을 차려놓고 사람들을 초대한다. 화사하고 아름답게 피어난 봄꽃들의 초대에 들뜬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음은 무슨 까닭인지. 속절없이 지나가는 봄이 그저 아쉽기만 하다. 하늘을 바라보면 큰 나무에 핀 꽃들이 꽃비가 되어 나의얼굴을 간지르고, 땅을 바라보니 이름 모를 작은 야생화들이 방긋방긋 예쁜 미소로 나를 반겨주는 봄의 햇살에, 삶이 나를 힘들게 하고 사람들 틈속에서 시달리더라도 저렇게 아름다운 꽃들이 있으니 나의 삶은 날마다 행복을 맛본다.
봄은 언제나 아름답다. 내가 봄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그것이 공정하기 때문이다. 봄의 따스함은 더위에 약하고 강한자나 추위에 약하고 강한자나 약한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공정하다. 사람의 조건과 규칙, 도덕이 하루를 멀다하고 불온하게 허물어져가는 이 세상에서 이렇게 봄처럼 따듯하고 공정한 것은 정말로 감명을 주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 짧고 알아채기 어려운계절의 가장 눈부신 대목은, 그러한 공정함이 달이 찰수록 깊게 성숙해간다는 점이다. 여름의 무더위와 겨울의 추위는 말미로 치달을수록 무디어진다. 가을은 서늘함으로 시작을 하지만 결국은 쓸쓸하게 죽음으로 돌진하는 계절이다. 그러나 이 봄의 따스함이란 사그라질수록 빛을 발하는 것이다.
끝으로 갈수록 더욱 따듯하고 풍성해진다. 우리네 인간들도 이러한 봄을 닮았으면 좋겠다. 하루를 살다가 가더라도 저 들꽃의 아름다움과 봄햇볕의 따스함을 곁들인 아름답고 따듯한 인간미와 사랑을 공정하게 베풀며 살아가면 좋겠다. 봄이 우리 인간들에게 주는 교훈을 알고, 하나님의 섭리와 축복에 감사를 드려야겠다. 이러한 아름답고 따듯한 봄을 맞이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나의 생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려야한다.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축복을 받고 감사할일이다. 그래서 봄에 피어나는 모든 꽃들은 아름답다.
myongyul@gmail.com  <1021 / 0427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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