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시어머니와 며느리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시집가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이란 말이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갓 시집온 며느리에게 시댁과 시어머니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이런 말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요즘 시대에는 이러한 말들이 거의 사라진 풍경이 되었다.
요즘에도 고부(姑婦)간의 갈등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며느리를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시어머니는 그리 많지 않은듯하다. 오히려 이제는 사태가 변화되다보니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가볍게 여기고 뒷방 늙으니 취급하며 학대하는 며느리가 생겨나기도 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아들의 부부관계보다 늘 앞서서 일어난다. 남편과 아들에 대한 뒷바라지가 자신의 역할 중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던 어머니세대에서 특히 아들을 키우는 동안 그에게 얼마나 애정을 쏟아 부었겠는가. 아들이 무언가를 요구하면 다른 사람들의 요구보다 늘 먼저 들어주었으며, 아들의 속옷부터 겉옷, 양말, 운동화에 이르기까지 온갖 세탁과 다림질, 심지어 어질러진 방을 청소하는 일까지도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아들이 이제는 내가 아닌 젊고 예쁘고 똑똑한 며느리에게 마음을 빼앗겼으니 어머니 마음속이라고 평온하기만 하겠는가. 나이가 들수록 힘에 부쳤던 아들 뒷바라지에서 벗어났으니 누가 보더라도 신나는 일이지만, 시원섭섭하다 못해 마음 한구석이 휑하니 시려온다.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시어머니도 ‘며느리’라는 새로운 존재를 통해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새로운 심리적 갈등을 경험할 수 있다. 어머니세대에서 아들이란, 보잘것없는 한 여성을 비로소 한 아이의 어머니로 인정받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존재다. 그러니 모자관계가 어찌 특별하지 않겠는가? 그사이에 며느리가 끼어들었으니 시어머니 입장에서 볼 때 며느리란 별반 노력한 것도 없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소중한 아들을 빼앗아간 존재로 보이는 것이다.
지난 2월 8일, 음력설날 어느 며느리는 남편과 함께 시댁을 찾았다. 결혼한 지 4개월 만에 시댁을 찾은 신혼부인 S씨는 두려움 반, 기대 반의 흥분과 부담감속에 시댁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사들고 시댁을 방문했다. 시아버지께는 고급양주와 함께 홍삼세트를 드렸고, 시어머니에게는 유명브랜드의 스카프와 스웨터를 선물해드렸다. 시어머니 체면도 세워드릴 겸, 식구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선물을 드렸는데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돌아왔다. “그래 고맙구나. 그런데 내취향이 아닌데 혹시 다른 걸로 바꿔도 되겠니?” 선물한 사람의 정성이나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말씀에 “혹시 내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썩 좋지가 안았다. 이런 경우 며느리를 아들의 연적으로 여기는 시어머니에게 주로 결혼 초 애시 당초 며느리 기죽이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며느리를 못살게 굴고 비하하려고 하는 시어머니의 심리에는 바로 사랑하는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긴 화풀이나 앙갚음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때 며느리는 화를 내거나 감정을 돋구치는 대신 어머니가 누려왔던 아들의 어머니로서의 권위를 최대한 인정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어머니의 권위와 아들에 대한 사랑을 최대한 받아주는 식으로 대처한다면 시어머니는 며느리와의 힘겨루기에 대해 흥미를 잃게 되고 며느리의 위치를 인정하고 가족의 일원으로써 받아들이게 된다.
시집살이를 호되게 치룬 시어머니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당신의 며느리에게는 절대로 본인이 겪었던 시집살이를 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는 것이다. 그토록 힘겨운 시집살이를 겪었으니 그 삶이 얼마나 고달플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기대일 뿐 실제로는 예상을 빗나가는 경우도 많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시어머니에 대한 기억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경험한 것 이상의 역할을 해내기가 어렵다. 물론 자신이 고된 시집살이를 했다고 해서 모두가 다 며느리에게 그와 같은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교사상이 뿌리 깊었던 그 옛날, 며느리는 나이어린 시동생과 시누이마저 받들어야할 정도로 집안에서 서열이 가장 낮았고,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아무리 구박해도 절대적으로 복종해야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고부관계의 양상에도 변화가 찾아
와 엄한 시어머니로 인해 힘들어하는 며느리는 줄고, 경제력을 쥐고 있는 며느리의 눈치를 보는 시어머니가 늘고 있다. 며느리들이 독해지고 있다.
요즘엔 호통 치며 구박하는 시어머니와 고개 숙이고 눈물 흘리는 며느리의 모습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미운짓하는 시어머니, 구박하는 시어머니, 그 까짓것 안보고 살면 그만이다. 시댁하고 연을 끊는게 대수인가? 끊고 나니 오히려 속이 편하다.
이러한 며느리의 행동을 볼 때, 젊은 시절 온갖 시집살이를 겪으면서도 순종하고 살아왔던 시어머니들은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의 며느리는 그 옛날 자신과 같은 삶을 사는 며느리가 아니고,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건 제마누라한테 꽉 잡혀서 눈치만보고, 저 녀석이 진짜 내 뱃속으로 낳은 새끼가 맞나? 할 정도로 답답하고 이질감마저 생겨난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별난 세상이다. 이젠 며느리한테 잘못보이면 아들도, 손주도 다 잃는다. 현대사회, 시대가 바뀌고 가정문화가 변화되다보니 며느리들의 반역인가? 아니면 새 시대의 혁명인가? 며느리 눈치를 보는 시어머니, 시집살이 따위는 참고 살지 않겠다는 며느리……..세상이 변해도 참으로 많이 변했다.
그러나 며느리들 역시 시댁과의 절연을 무기처럼 휘둘러서는 안 될 것이다. 시댁과 인연을 끊고 살면 처음에는 괜찮겠지만 점차 시간과 세월이 흘러가면서 뒷감당이 힘들어질 테니까……생각해보라. 늙은 자기부모를 내팽개친 마누라, 젊었을 때야 그렇다 쳐도 시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그 원망이 다 아내에게 향하지 않겠는가. 자식들은 항상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제정신을 차리고 부모님에게 불효한 것을 깨달으며 후회하기 마련이다. 그 불효의 원인 중에 제 마누라가 한몫 했다면 그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고운 시선으로 아내를 대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시댁도 시어머니도 보기 싫으면 안보고 살아도 되는 세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더 발전되고 변화해나갈지 한번 지켜봐야겠다. 대개가 보면 시어머니를 박해한 며느리에게는 그녀와 똑같은 경우의 며느리(아들의 아내)가 후일에 들어온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역시 공평하신 하나님이란 것을 느끼게 된다. 20여년 후에는 그 며느리도 시어머니가 될테니까………..살아계신 생전에 시부모님에게 잘해드리는 것이 도리이다.
그러면 먼 후일에 그것이 자신에게 축복으로 돌아올 것이니 말이다.
myongyul@gmail.com  <1020 / 0419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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