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우리들 인생의 사계절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건조한 날씨 속에 나뭇잎들이 생기를 잃은 듯 후줄근하게 보인다. 그런데 오늘 내리는 비로인해 모든 초목들이 싱그러운 모습으로 목욕을 한듯, 선잠을 깨고 난 모습을 보인다.
옛날 나의 청년시절, 우산도 쓰지 않은채 비를 흠뻑 맞고 옷을 적셔가며 프라타나스 나무가 줄지어서있는 시골의 가로수 길을 한없이 혼자서 걸은 적이 있다. 사춘기적 감상에 젖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렇게 비를 맞으며 걸어도 싫증이 나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청승스럽기 한이 없고 그 찬비를 맞고 나면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겠나 하는 걱정도 생겨난다. 지금은 비가 올 때면 밖에서 비를 맞는 것보다 방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음악도 듣기도하고 책도 읽으며 글을 쓰는 여유를 즐기는 편이다. 이러한 봄비가 북쪽지방에서는 동토(凍土)로 겨우내 몸살을 앓고 겨울잠을 자며 지루하게 보냈던 산천의 초목과 동, 식물 모두에겐 기지개를 펴는 청량제와 기폭제가 될 것이다.
옛날의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뚜렷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겨울이 지나면 곧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곧 겨울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봄,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 겨울이 길어졌다. 모두가 지구의 온난화와 환경의 영향으로 사계절도 차츰 변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하지만 인생의 사계절에는 변함이 없다. ‘내 영혼을 담은 인생의 사계절’의 저자 짐 론은 다음과 같이 인생의 계절을 말한바있다.
봄은 기회, 우정, 사랑, 생각을 활용할 수 있는 시기, 여름은 보호하고 성장하는 시기, 가을은 봄의 노동에 따른 열매를 수확하는 시기, 겨울은 모두에게 감사와 사랑을 나눠주는 시기.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삶도 사계절과 같다고 하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연의 4계절이 매년 되풀이되지마는 인생의 사계절은 단 한번뿐이라는 점이다. 요즘은 자연의 계절인 봄이 봄 같지 않고 여름이 여름 같지 않으며 가을이 가을 같지 않은 철없는 계절이 되었다. 철없는 계절을 닮아서인지 철없이 사는 것이 오늘의 인생이 아닌가한다.
나의 장수는 축복이고, 너의 장수는 고령사회로 재앙이란 말처럼 너나 할 것 없이 끝 모를 착각의 세월을 살고 있지 않은가. 봄,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 겨울이 길어진 것처럼 우리인생 사계절도 장수(長壽)사회가 되면서 봄가을도 짧아지고 여름 겨울은 길어졌다. 인류의 염원이었던 장수사회인 고령사회는 현대문명과 현대의학이 이뤄낸 최대 업적이다. 이 업적을 두고 고령사회는 축복인가? 재앙인가? 가 오늘날의 화두가 된지 오래다.
어떻든 이제는 노인이 공경의 대상이 아니고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황혼기에 접어든 나의인생을 돌아보며 나는 어디쯤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얼마 전 나는 나이든 노인, 황혼녘의 고령자들을 젖은 낙엽에 비유하여 글을 쓴 적이 있다. 정년퇴임(은퇴한 노후생활자)을 한 노인은 단풍이 아닌 젖은 낙엽이란 말이 있다. 그렇더라도 한번밖에 없는 내 인생의 가을은 ‘젖은 낙엽’이 아닌 ‘아름다운 단풍의 가을’을 살고 싶은 것이 모든 나이들은 고령자들의 바램이고 소망이다.
아름다운 단풍도 계절의 순환 앞에는 맥을 못 춘다. 곧 이어서 찬서리 내리고 얼음이 어는 추운겨울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생의 겨울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마지막 단계의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계절이다. 추운겨울이 오면 온누리에 찬바람이 불고 얼음이 얼며 눈보라도 몰아쳐온다. 한여름에 한껏 푸르름과 녹음을 자랑하며 풍성함을 누렸던 초목들은 모든 잎사귀를 떨쳐내고 앙상하고 빈약한 모습으로 변한다.
우리네인생도 이와 같은 겨울이 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겨울이오기전에 세가지를 생각한다.
첫째는 내가 사는 날이 얼마나 남았는가를 생각하며, 둘째는 자기가 연약한 존재임을 알고 인생의 허무와 무상함을 느끼며, 셋째는 이 짧은 인생에서 내가 정말로 할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 사계절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서도 겨울이 찾아온다. 이것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 여름을 보내고 있는 청년으로서는 풍성하고 좋은 열매를 맺을 가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겨울을 보내는 노령자들은 인생의 겨울이 지나더라도 영원한 계절이 올 것을 소망하는 믿음(자기만의 믿고 있는 종교)으로 살아야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네 인간들의 삶과 인생은 4계절과 닮았다고 한다. 인생의 사계절은 배우고, 적응하고, 참회하고, 자유로워지는 점차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길을 걷게 되는 자연의 4계절과 너무나 닮았다.
삶의 첫 계절인 봄은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님에게 배우고 사회에서 학습하는 시기이다. 그렇게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난 청년기이다.
삶의 두 번째 계절인 여름은 익힌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살며 개척하고 홀로 서는 적응의시기이다. 청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이고 아직 젊기도 하고 이제 알만큼 알기도하며 맡은 일에 대한 책임과 역할도 늘어간다.
삶의 세번째 계절인 가을은 이제 조금씩 차분하게 식어가는 자신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그러나 아직 마음속 깊은 곳에는 온기가 남아 있다. 이제껏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주어진 삶을 반성하고 지나온 과거의 삶을 참회하게 된다. 그리고 더 온전한 나로써 살아가려 다짐을 해 본다. 이러면서 장년에서 노년의 황혼기로 넘어가게 된다. 이제 마지막으로 인생의 사계절이 끝나가는 춥고도 지루하고 외롭고 고독한 겨울에는 우리가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세상과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수록 심신은 평온해진다. 진정한 자유는 죽음을 맞이하는 가장 평온한 태도이기도하다. 집착과 욕심을 버리면 이 세상에 온 것 자체가 덤이고, 내존재가 기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노년이라는 마지막 계절을 보내며 소회를 나누고 봄을 생각한다. 자기가 먹은 나이가 스무 살이든, 일흔 살이든 간에 우리들 인생은 지금 이 순간에도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내게 남은 나의 인생 중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 인생의 사계절이 끝나고 다시 오는 봄은 어느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봄은 필연코 다시 찾아온다. 인간은 영혼불멸의 영생을 믿고 있기에…………… myongyul@gmail.com <1017 / 0323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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