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꽃을 대하는 마음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내가 살고 있는 플로리다는, 4계절이 뚜렷한 한국이나 온대지방과는 달리 얼음이 꽁꽁 얼고 눈보라치는 추운겨울에도 이곳에는 항상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서 꽃을 보는 이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인정을 향기롭게 꾸며준다.
옛날 내가 오랫동안 시카고에 살면서 매년 겪었던 길고도 지루했던 혹독한 추위속의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되면, 찬바람, 찬서리 내리는 꽃샘추위 속에서도 살포시 꽃망울을 터뜨리는 개나리나 민들레의 노란꽃 봄 인사가 그렇게 반갑고 마음을 기쁘게 해줄 수가 없었다.
절대로 녹지도 않고 풀리지도 않을 것 같은 꽁꽁 얼었던 동토(凍土)의 대지가 봄의 기운에 녹초가 되어 해지(解地)되면서 만물이 소생하고 생동하는 새봄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변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함없이 마음이 얼어붙고 인정이 풀리지 않은, 꽃샘추위보다 더 매섭게 화가 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살고 있다.
이유 없이 까탈을 부리는 사람, 공연히 시비를 걸고 나를 몰아세우는 사람,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사람, 남을 모함하고 시기 질투하는 사람, 험담하고 남이 못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가 마음이 고달프고 사랑이 메말라 시샘에 안달이난 사람들이다. 권위를 앞세워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 힘으로 약자를 누르려는 사람, 무슨 일이든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은 모두 가진 것이 그것밖에 없고, 마음이 모가 나고 비뚤어져서 꽃처럼 아름다운마음과 꽃같이 달콤하고 향기로운 사랑이 결여된 불쌍한 사람들이다.
오래전 내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이야기다. 내가 사는 동네에 혼자살고 있는 몹시 심술궂고 무서운 홀아비 아저씨가 있었다. 동네사람들은 물론 어린이들 모두는 그를 무서워하고 싫어하며 피해 다녔다. 어느 따듯한 봄날, 나는 들판에 이곳저곳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을 바라보다가 유독 예쁘고 아름답게 피어난 꽃이 있어서 그것을 꺾고 있었다. 이때 바로 나의 앞을 그 무서운 홀아비 아저씨가 지게를 지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면서 나의 얼굴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험상궂은 얼굴을 펴지 않고 눈길을 돌리지 않으며 주시하고 있었다. 겁에 질리기도 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얼떨결에 나는 손에 꺾어 쥐고 있는 웅켜진 꽃다발을 불쑥 손을 내밀어 그 아저씨 앞에 내어밀었다. 나의 곁을 무심코 지나치려다 뜻밖에 건네는 나의 꽃을 든 손길을 그는 멈칫 서서 쳐다보더니 이내 그 무표정하고 무서운 얼굴을 지워내고 멋쩍고 계면적인 웃음을 띠며 나의얼굴을 미소 띈 얼굴로 바라보며 “이 꽃 나에게 주는 거니?” 하고 물었다. “네, 아저씨가 좋아서요”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런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금세 그 아저씨의 얼굴빛이 환해지면서 그는 무거운 짐을 진 지게를 내려놓으며 나를 안아주며 “고맙다 명열아”하고 나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그날 이후 동네사람들이나 아이들이 제일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그 아저씨가 나에게는 가장 친절하고 자상하며, 수시로 나에게 과자나 사탕, 과일 등등을 사주고 때로는 공책이나 연필 등의 학용품도 사서 선물해주는 고맙고 착하며 친절한 아저씨가 되었다. 아름답게 피어난 들꽃을 선물한 인연으로 무섭고 싫은 아저씨가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마음을 가진 아저씨로 변하게 만든 것은 순전히 꽃을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은 그 아저씨가 세상에 생존해있지도 않겠지만 들판에 순서 없이 아름답게 피어난 야생화를 볼 때마다 옛날의 그 무서운 “착하고 친절한 아저씨” 생각이 떠오른다.
이렇게 꽃은 굳어있는 사람의 마음도 따듯한 마음으로 변화시켜주는 힘과 마력이 있다.
우리가 꽃과 함께 있노라면 어떤 단어도 서정적 뉘앙스를 가진다. 꽃과 죽음 같은 것마저 그렇다. 산에 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에 있는 동안 착해지듯이 꽃을 보는 사람의 마음은 그 사람이 누구든 꽃을 닮아간다. 그것이 힘든 삶을 견디게 한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꽃이 너무나 많지만 가장 아름다운 꽃은 당신과 나만의 꽃이리라.
내가 당신에게 주고 당신이 나에게 주었던 그 보이지 않는 마음과 정이담긴 아름다운 꽃………나는 거의 모든 종류의 꽃들을 좋아한다. 추운지방 온실에서나 볼 수 있는 열대의 화려한꽃에서부터 말린꽃, 버려진 꽃, 심지어 상상의 꽃까지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역시 들판에 어지러이 맘대로 피어난 들꽃이고, 도시에 살면서는 도시의 콘크리트나 보도블록, 건물의 벽과 도로의 경계에서 그 틈을 뚫고 피어난 꽃, 가녀린 꽃이다.
그런 것들을 보면 걸음을 멈춘다. 그러한 꽃들의 상황 때문에 어떤 인간적 의미를 부여해 보기도 한다. 세상에는 저보다 더한 역경과 고난, 좌절 속에서도 그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일어나 인생의 성공을 거두어 찬란하고 아름다운 삶의 꽃을 피운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꽃들 역시 그러한 역경을 이기고 뚫고 일어나 저렇게 꽃을 피운 것이다. 그래서 다른 꽃들보다 더한 의미를 부여하고 아름답게 보는 것이다. 허지만 꽃은 꼭 그런 상황과는 관계없이 모든 꽃들은 아름다운 것이다. 꽃이라는 것은 모두 묘한 마력(魔力)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력 말이다. 꽃 한 송이로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도하고 메마른 일상에 촉촉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꽃이다. 누군가에게 꽃을 준다는 것에는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감사를 표시하기도 하고,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사랑, 감사, 위로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긍정적인수식어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 같다.
꽃은 자연이 준 가장아름다운 선물이다. 기쁨과 슬픔, 축하와 위로, 사랑 등등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이 마음을 움직인다. 마음은 아주 작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것은 삶을 아름답게 바꾸는 것 일수도 있다. 꽃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마음이삭막하고 공허로운 사람도 꽃을 보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진무구해진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향기와 색깔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자연이 내려준 향기를 못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듯하다. 꽃의 향기는 우리들에게 삭막한 심성을 고요히 가라앉혀주고 피곤하고 힘든 세상살이에 활력을 넣어준다. 우리가 늘상접하는 화장품이나 향수, 방향제도 식물(꽃)을 원료로 해서 만들었다. 꽃의 향기와 아름다움이 사람의 몸과 마음에 변화를 주고 생기를 불어넣어 삶에 기폭제가 되고 활력소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마음속에 담아둘 필요가 있다.
myongyul@gmail.com <1010 / 0202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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