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꾸러기의 짧은 글 긴 생각> 성경이 말하는 능력

이경규목사 / 서울 새로운 성결교회 담임
우리가 ‘능력’이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성경이 말씀하는 능력과 인간이 생각하는 능력은 대단히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먼저 예수 믿은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이 요구하는 능력은 대부분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능력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의 자존심과 자기 이익을 채워줄 수 있는 힘을 가리켜 ‘능력’이라고 한다.
능력이란 우리가 아는 대로 어떤 하나의 목적을 성취하는 방법을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식의 능력을 말하지 않는다.
능력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무엇을 이루는가’에 따라 다른 것이다.
그 목적과 이루려는 것에 따라서 힘도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수학답안지를 쓰는데 힘센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힘센 자에게 답안지를 쓰라고 하면 연필만 부러뜨린다.
목적과 이루려는 것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종종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한다.
이 때 힘은 생물학적인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에 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경이 말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이 말하는 이 능력이 ‘나를 채워주고 나의 욕심을 만족시켜주는’ 것이며, 그러한 것이어야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우리 식의 아전인수격 해석을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을 능력이라고 하지 않는다.
능력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격 식으로 이야기하면 ‘무엇을 이루는가?’에 차이가 있다.
사도행전 21장 이하의 말씀에 사도 바울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어느 정도 그의 생애가 찬란했느냐 하면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하고 에베소에서는 죽을줄 알고 성밖에 내다 버린 적도 있다.
파선도 당하고 강도도 당하고 자지 못하고 목마르며 굶주리며 춥고 헐벗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능력의 모습이 나타나는 곳이 어디인가?
도무지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능력이라면 적어도 ‘돌을 던졌더니 돌이 튕겨 나와 도리어 돌을 던진 사람이 맞고 죽었더라’는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돌을 던졌더니 정말 사도 바울이 돌에 맞고 뻗었다.
이것이 능력이라고 생각되는가?
성경만큼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향과 의미를 가진 단어가 많이 나오는 책도 없을 것이다.
사랑, 능력, 믿음, 어느 것 하나도 우리의 생각으로 쉽게 판정할 것이 없다.

성경이 왜 사도 바울의 이런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능력’은 ‘목적을 이루어내는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달랐기 때문에 세상적인 고난을 모면하는 식으로 능력을 행사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대 중국에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라는 책이 있다.
사마천이 그 글을 쓰기 전에 그는 중죄인으로 잡혀서 사형을 당하게 되어 있었다.
옛날 중국 국법에는 남자가 거세당할 것을 약속하면 사형을 면해주는 법이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세를 당하기 보다는 죽음을 택했다.
남자가 남자의 자존심을 버리고 목숨을 구걸한다는 것은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마천은 죽기 보다는 거세를 택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할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시대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경멸과 조롱을 받으면서까지 생명을 연장한 것이다.
바로 그 이야기이다.
사도 바울이 매 맞고, 돌에 맞고, 파선 당하고, 경멸 당하고, 오해를 사고, 유대사회에서 매장을 당하여도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은 ‘복음’ 때문이었다.

고린도후서 11:32-33을 보자.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저는 사도 바울의 어떤 기록도 다 좋지만 광주리 타고 도망을 갔다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기분이 좋다.
이것을 ‘알레르기성 환희병’이라고 한다.
여러분은 그런 환희를 갖고있는가?
이 부분은 사도 바울이 자기의 명예와 자기의 자존심을 위해 하나님을 요구하거나 능력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자기가 어떻게 밟혀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참 대단한 모습이다. <965/0225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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