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내 마음의 거울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인류 최초의 거울은 아마 잔잔한 호수와 연못, 그리고 웅덩이의 수면이나 또는 물을 마시기 위해 몸을 구부렸을 때 얼굴과 나의 모습이 비쳐진 작은 샘물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3500년경 청동기문화가 시작되면서 청동으로 만든 거울을 가지고 다니면서 거울의 유래가 시작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은 청동으로 만든 거울을 나무나 상아 또는 금으로 손잡이를 만들어 사용한 흔적이 있어 그 유래를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거울은 인류가 시작되면서부터 사용되었던 애용품이었고 특히 여인들에게 있어서는 필수품이다. 지금 현대사회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하루 동안 거울을 보지 않고 지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겉모양을 위해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 앞에서면서도 자신의 내면을 위해 양심의 거울을 보는 사람은 드문 세상이 되었다.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면 자연적으로 외모가 더욱 아름다워지는데 외양에는 온갖 장식과 치장으로 정성을 다해 꾸미는데 정작 꾸며야할 내면을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은 양심이 더러워져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
고려후기 문장가인 이규보선생이 지은 설(說) 작자의문집인 (동국이상국집)권21에 수록된 거울의 이야기이다. 내용은 먼지가 끼어 흐린 거울을 가지고 보는 거사(居士)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거사는 “거울이 맑으면 잘 생긴 사람은 기뻐하지만 못생긴 사람은 꺼린다. 그러나 잘생긴 사람은 적고 못생긴 사람은 많다. 만일 못생긴 사람이 거울을 들여다보면 거울을 깨뜨릴 것이니 차라리 먼지 끼어 희미한 것이 더 낫다. 먼지로 흐려진 것은 거울의 표면뿐이지 본래의 맑음이 흐려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잘생긴 사람을 만난다면 그때 맑게 닦여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옛날에 거울을 대하는 사람은 그 맑은 것을 취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내가 거울을 대함은 그 희미한 것을 취하고자함이다” 라고 답했다.
고요한 나의가슴에 손을 얹고, 그리고 내마음의거울에 오늘 내가 지냈던 하루를 자세히 비추어보자. 세상속의 온갖 오염되고 더러운 먼지 속에 더럽혀진 때 묻은 나의 얼굴이 보인다. 불쾌하고 힘들며 짜증스런 하루 속에 일그러졌던 내 얼굴,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거울 속에 새겨져 사라지지 않고 보여지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다시 곱고 단정하게 매만져 웃는 표정을 지어본다.
우리가 아침에 세수를 하고 나서야 (여자들은 곱게 화장을 마치고) 밖에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로, 날마다 고요한 저녁시간에는 내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보고 거기에비친 자신의 모습을 다시 깨끗하게 닦아놓아야겠다. 하루에 한번만이 아니고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건 시간 나고 생각날 때마다 내마음의거울에 나의행동, 나의생각, 나의인생을 비춰보고 부지런히 때가 끼지 않도록 깨끗이 닦아내야하겠다. 아무리 좋은 다이아몬드나 보석도 닦지 않으면 빛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인품과 많은 지식과 명예를 가지고 있고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주 그 마음의 거울에 자기를 비추어보고 씻어내고 닦아내지 않으면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가 될 수 없다.
마음의 파괴는 거울의 깨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인생에 가장 무서운 것은 나의 양심이 파괴되는 것이다. 나의 양심이 깨어지고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나의 인격이 손상되고 없어지는 것이다. 양심을 잃은 다음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올바른 자신을 찾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를 차분히 살펴보지 못하고 서두르는 사람은 자기 마음속의 거울을 보지 못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거울인양심이 깨어진 것이다. 우리는 마음의 거울, 양심의 거울을 매일같이 잘 닦아내고 소중히 간직해야하겠다.
명경지수, 깊은 산속 거울처럼 잔잔하고 고요히 맑게 고여 있는 옹달샘 물을 들여다보면 나의얼굴이 비친다. 물이 맑고 잔잔하면 할수록 나의모습은 더욱 선명하게 비친다. 우리 사람들의 마음도 이와 같이 거울처럼 서로 비친다. 맑고 깨끗한 유리를 통해서 바깥을 볼 때 우리는 원래의 대상을 제대로 볼 수 있지만, 색깔이나 더러움이 묻은 유리를 통해서보는 대상은 그만큼 왜곡된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그 왜곡을 일으키는 색깔이나 더러움이 바로 우리의 경험과 주관, 그리고 집착과 욕심 등이라는 것으로, 그래서 우리는 흔히 아는 만큼 본다고 한다. 행복과 불행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인생이란 무엇인가?)하는 형이상학적인 관념보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실천적인 생활방식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절에 가면 흔히 사르는 향과 초를 무슨 이유로 켜는지 대개들사람들은 모른다. 향과 초는 자신을 태워서 주변을 향기롭게 하고 밝게 비추며 결국은 사라지게 된다. 즉 자신을 불태워 남에게 이익을 주게 하는 의미가 바로 향과 초를 사르는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종교인의 마음적 자세이어야 할 것이다. 아니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마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때로는 내가 아프고 힘들어도 이웃을 위해 ,모르는 남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마음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마음의 거울을 표본삼아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올바르게 살아가자.
myongyul@gmail.com <951 / 1105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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