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용서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얼마 전 TV 뉴스에 나온 기사 이야기이다. 변심한 애인을 집에까지 따라가서 흉기로 찔러 상처를 입히고 죽이려고 하다 미수에 그쳐 도망가다 잡혀 감옥에가 형기를 살고 있는 예전의 남친에게 용서를 베풀고 형기를 감형시켜달라는 청원과 함께 용돈까지 주고 나왔다는 어느 젊은 여성의 감동어린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저렇게 착한 마음과 인정을 베풀 수가 있을까? 자기의 생명까지 위협하며 악행을 저지른 죄인을 용서를 해 주다니…..
참으로 보통사람들로서는 하기 힘든 선한 일을 했구나…! 하며 마음속으로 감동을 하게 한 그 젊은 여인이 참으로 훌륭하고 용기 있게 보였다.
용서란 마음의 평화의 느낌이다. 어떤 마음의상처가 자기하고만 관계된 문제가 아님을 인식하기 시작할 때, 자기의 느낌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려고 마음먹을 때, 지나온 이야기를 하면서 피해자가 아니라 씩씩한 주인공으로 자신을 그려낼 수 있을 때, 나의 마음 안에 들어서는 평화로움이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서 경험하는 평화의 느낌, 그것이 다름 아닌 용서인 것이다.
과거에 있었든 모든 일들은 하나도 변화시킬 수가 없다. 그러나 현재라면 문제가 다르다.
다시 말한다면 어떠한 일이나 계기로 내 마음은 이미 다쳤지만 그래도 그로 인해 덜 괴로워하겠다는 결심은 당신의 손에 달려있다. 상처라는 것이 어차피 살아가는 인생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고 그 해결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 용서의 의미이다.
용서란 다른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을 위한 행위이다. 용서가 나에게 큰 위안과 마음의 평화를 주고 가슴에 얹혀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시원함을 주기에 우리는 용서를 택한다. 용서함으로써 우리는 나 자신을 도울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본을 보이게 된다. 용서를 통해 자신이 얻는 가장 큰 유익은 바로 이제 더 이상 과거에 희생되지 않고 나 스스로 마음의 평안을 찾아 자유로운 마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미움, 증오, 원망, 저주 등등 이 모든 것에 얽매어 항상 머리 아프고 골몰하게 생각하며 살았던 내 생활이 자유로워지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용서한다는 사전적 의미는 잘못이나 실수를 용서하는 것, 노여움이나 분노를 버리는 것 등이다. 보다 실제적인 의미로 풀이한다면 잘못의 결과를 탕감해주고 잘못 때문에 금이 가고 깨어진 상대방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킴을 뜻한다.
그러므로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노여움이나 분노를 갖고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노여움과 분노를 일으켜준 대상을 마음속에 품고 산다는 것이다.
좋은 이웃을 두라고 했는데, 가장 고통스럽고 버거운 상대를 이웃도 아닌 바로 나 자신 속에 안고 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 받지 못한 자의 아픔도크지만 용서하지 못한 사람의 고통도 그에 못지 않다.
결국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지만 그 결과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평안이다. 다시 말해서 용서는 상대에게 베푸는 행위이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이 된다. 이 얼마나 즐겁고 보람된 역설인가?
용서를 해주는 것은 가장 이타적인 행위이다. 너무 가혹한 상처나 일생을 통해 형성된 깊은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들이라는 우리자신의 영적 실체를 알게 될 때, 비록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제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종교를 믿는 신자 가운데 특히 기독교를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용서하는 삶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삶의 극치가 용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위에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를 용서하였다.
어느 날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가 예수님을 찾아와 용서에 대한 질문을 했다. 형제가 나에게 잘못을 범하였을 때 몇 번이나 용서를 하면 되느냐고 질문했다.
“일곱번까지 하오리까?” 하고… 이때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다.
이것은 70곱하기7은 490번을 용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끝없는 용서이다.
예수님은 많은 용서가 아니라 끝없는 용서를 하라고 교훈을 주신 것이다.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의 용서는 남을 용서하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한 용서로, 남을 용서함으로써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용서를 해줘야한다고 역설한다. 누군가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아 화를 내게 되면 그 순간 나에게서 행복은 사라진다. 화는 복수를 부르고 그 복수의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결국 복수를 행한 자 또한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용서는 그저 참는 것이 아니라 화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용서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상처나 피해를 긍정적으로 이겨내어 자존감을 회복하고 도덕적으로 성숙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은 용서하는 삶이다.
용서만큼 사람의 영혼과 정신을 치유하는 것은 없다. 그래서 용서는 얽힌 매듭을 푸는 가장 위대한 축복의 도구이다.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잘못을 용서해 주는 것을 가장 기뻐하신다.
상대에 대한 모든 서운하고 원망스런 감정을 털고 용서하여 어루만져주는 변함없는 다정한 마음을 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무엇보다도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이다. <myongyul@gmail.com> 941/0826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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