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어느 목사님의 눈물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이 글은 저희 교회가 돕고 있는 선교사님에게 쓴 내용입니다. 선교사님이 무척 힘들어하고 어려운 상황가운데 있다는 말을 듣고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기도 말고는 편지로 격려를 주는 것뿐이구나 싶어 이 서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아래의 글은 어느 목사님의 눈물의 기도 내용 중에 감동 먹어 싣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나는 또 웁니다. 무능해서 울고 부족해서 웁니다. 성도의 삶을 보면 가슴을 치며 또 웁니다. 아무것도 도움이 될 수 없는 내가 싫고 내가 못나서 그래서 나는 오늘 또 웁니다. 교회를 보면서 그저 웁니다. 주님을 보고 교회를 보면 송구스러워서 웁니다. 감사해서 웁니다. 구원받은 것이 감사요, 목사가 된 것이 감사요, 아빠가 된 것이 감사해서 웁니다. 성도가 있어서 감사하고, 교회가 있어서 감사하고, 주님이 있어서 그래서 목놓아 웁니다. 한없이 감사해서 무작정 울고 또 웁니다. 나는 울보, 울보 목사입니다.”

선교사님 어느 목사님의 뜨거운 고백을 서두에 이렇게 소개한 이유는 눈물 없이는 갈 수 없는 것이 목회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의 길은 화려한 것을 뒤로해야 하고 편안한 사치를 누릴 수 없고, 안락한 의자에 기대 세월을 보낼 수도 없으며, 목회의 길은 영혼의 고통을 부여잡고, 그 영혼들을 주께 이끌어나가는 고행의 길을 걷는 순례자와 같은 일입니다. 내가 사치부리고, 내가 평안을 누리고, 내가 안일해 지면 질수록 영혼들이 죽어가고 핍절해지고, 고아가 되기 때문 입니다.
목회의 길이 이러할 찐데 선교사의 길은 이 눈물의 두 배를 더 흘려야 하는 것임을 앎이다. 누가 알아주지도, 물론 알아달라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요, 누가 챙겨주지도, 항상 누군가를 섬겨야만 하는 일이기에 누군가가 챙겨준다는 것이 오히려 미안할 뿐이지요,

선교사님의 삶의 수고와 눈물을 어떻게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한해 동안 흘린 눈물, 한해 동안 신발이 다 닳도록 다닌 거리들, 손이 부르트고,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도 그 땅의 영혼들 때문에 그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때문에, 황폐한 그 땅을 위해 오늘도 주님의 마음 안에서 말없이 신음하며, 눈물 흘리고 계신 선교사님을 기억합니다. 그 눈물을 주님이 반드시 닦아주시고, 그 헤어진 마음을 다 보듬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이 흘린 눈물에 비하면 아직 저희들의 눈의 눈물은 시작도 안 했으니까요
올해도 선교사님의 사역에 흘릴 눈물과 다 헤어질 마음과 굳어진 무릎으로 시작하는 한해지만 주님께서 그 일로 인해 무한한 영광만 받으시면 우리는 OK입니다. 힘내세요 선교사님!!!!.

다시 이 편지를 파일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다시 한번 돌아봤습니다. 올랜도에서의 지난 5년의 목회생활, 2014년이 시작된 지 벌써6개월이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 저의 마음이 초심을 잃고, 약간은 해이해지고, 느슨해진 듯해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는 지금도 영혼을 붙잡고 울고 있는 목회자인가? 아니면 나의 영달과 성공과 성취와 내 이름을 위해 성도를 재물로 삼는 목회자인가?.
올해 지나온 6개월동안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어디인가? 지난 6개월 동안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드려 성도들을 위해 한 일은 무엇인가? 지난 6개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가슴아 펐던 것이 무엇이었던가?

목회자는 울어야 하는 사명이다. 예례미야 선지자를 눈물의 선지자라 부릅니다. 그는 자기 나라 민족, 백성의 멸망을 앞에 두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는 눈물샘이 터진 듯 울었습니다.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반역자라고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외치고 울었습니다.
그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이 되었고, 그 눈물은 하나님의 눈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그 눈물은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에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영혼들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고통하고 아파하고, 견딜 수 없는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 길 잃고 방황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울어야 합니다.
목회자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면 타락합니다. 눈물이 멈추면 타협합니다. 눈물이 사라지면 더 이상 영혼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 때문에 웁니다. 그분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울지 않고 그 마음 안에 머무를 수 가 없습니다. 나 같은 죄인까지도 사랑하시는 마음 때문에 웁니다. 나 같은 존재까지도 사용해 주시는 은혜 때문에 웁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당신의 아들을 죽이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알게 되기에 울게 됩니다. 그분의 영광의 광채로 인해 내 욕망의 눈이 가리워지고 영의 눈이 열려지기에 영이 울며 통회하게 됩니다.

영혼을 위해 웁니다. 사람들의 변하지 않는 것 때문에 웁니다. 사람들의 무지와 불신앙 때문에 웁니다. 세상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중성 때문에 웁니다. 서로 원수지고, 서로 불신하고,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웁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살지 않고 세상과 짝하고 사는 것 때문에 목사는 울어야 합니다. 서로 아껴주지 못하고 반목하고, 반신반의하고, 존중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웁니다. 남의 가슴에 못을 박으면서 내 몸에 난 작은 상처때문에 삿대질하고 싸움질하는 성도들 때문에 웁니다.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 체 영원한 사망의 길로 걸어갈까 두려워 웁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웁니다. 인본주의로 가득한 교회, 돈이라는 안정감이 하나님보다 더 우선이 돼버린 교회 때문에 웁니다. 거룩한 영성을 잃어버린 체 세속적 신앙의 얇디얇은 종교심으로 버티고 있는 교회를 보면서 웁니다. 생명의 길을 알면서도 그 길로 가지 않고 사망의 길이 진리의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 길로 걸어가는 교회를 보면서 웁니다. 주님의 몸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체 세속의 것들로 가득 채워진 교회를 보면서 웁니다.
진리가 아닌 세상의 이론과 신학과 세속의 방식들이 판을 치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것이 껍질뿐이고, 거짓에 속고 있는 것인지 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교회를 보면서 웁니다.

눈물과 무릎과 영성만으로도 주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영혼들을 위해 목회자를 위해 울어야 할 때입니다. <936/0716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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