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아버지라는 직업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일반적인 환경이라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사랑하고 따른다.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는 인성을 형성시켜주는 최초의 관계이며 외부세계와는 거의 동떨어진 독점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그 시작부터 적어도 세 사람 이상이라는 집단적인 환경 속에 놓여있다. 첫 출발부터 부자(녀)관계는 이미 사회의 일부분인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각자의 신체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데 반해, 아버지는 사회와 관계하는 기술을 교육시켜줄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이다.
부성(父性)이 사라져 가는 오늘날, 아버지라는 호칭은 이제 그가 집으로 가져오는 월급(돈)때문에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의 아버지들은 자아의 성공보다는 자신의 경제적인 성공이 자식들에 의해 평가받는 것임을 알고 있다. 처자식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법적인 사실이며 자식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직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이다. 때문에 오늘날의 아버지는 이런 경제적인 능력이 뒷받침되어야만 자식들의 존경심을 유지할 수 있다.
아버지는 가족의 부양자 외에는 다른 누구도 아니다. 참으로 슬픈 현실적 이야기다 희생과 헌신만이 천직으로 삼고 사는 아버지라는 직업은 불쌍한 직업? 이고 외롭고 힘이 드는, 벗고서는 살 수 없는 인생의 멍에이다.
이것은 동물세계에서도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속의 이야기이다. 그 예를 들어 참고로 이곳에 가시고기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다.
가시고기는 수컷이 집을 짓고 암컷을 유혹해 짝을 짓고 나면 암컷은 수컷이 지어놓은 집에 알을 낳고는 떠나가 버린다. 수컷은 적으로부터 알들을 보호하며 지극 정성으로 알들이 부화할 때까지 사력을 다해 알을 보살핀다. 이윽고 알들이 부화하면 아비는 기력이 다해 죽어버린다. 죽은 아비의 사체는 치어들의 먹이가 되어 성장을 도와준다. 지천명이라 하였던가.
하늘의 뜻에 따라 순리대로 태어나 순리대로 가는……..가시고기의 주검……..지금도 가시고기의 수컷은 한국의 하천 어디에선가 사랑의 보금자리를 짓고 있을 것이다. 부성에 이끌려 자연의 순리대로 헌신과 희생을 감수하고 생을 마감하는 가시고기의 죽음이 우리에게 시사 하는바가 크다.
재작년 가을 어느 일요일날 산수회의 정기모임 때의 일이다. 자식을 둔 어느 아버지회원께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회장님도 자식을 두었는데….. 저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권리는 줄어들고 짐은 늘어나는 것만 같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동감을 느꼈다. 남자들은 대개가 누구나 나이가 들수록 삶의 짐이 무거워짐을 느낀다. 세상의 남자들은 특별한 자격이 없어도 아버지가 된다. 내가 어렸을 적에 느낀 아버지라는 부름은 하늘처럼 높아 보였다. 아버지에게 무엇인가만 요청하면 어느 것이던지 가능할 것만 같았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떼만 쓰면 어떻게 해서든지 아버지는 구해올 수 있었고 가지고 싶은 것도 무엇이든 졸라만 대면 가져다줄 수 있는 능력 있는 분으로 여겼다. 내가 스무살이 넘어 성년이 되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나의 아버지께서는 노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내 아버지께서는 죽지 않으실 것으로 알았는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시름시름 앓으며 누워 계시다가 저 세상으로 떠나가셨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가 된지는 오래되었지만 이 아버지라는 직업 아닌 직업이 익숙해지면서 삶의 무게를 느낀다. 책임져야할 존재들이 나의 등에 업혀 있는 짐의 무게를 또한 느낀다. 자격이 있든 없든, 능력이 있건 없건 간에 나는 애들의 아버지다.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가 그렇듯이 아버지라는 이름아래 가정을 책임지고 이끌어나가며 아버지노릇을 하는 것은 버겁고 힘이 든다. 되고 싶어서 된 것은 아니어도 세상의 많은 남자들은 아버지라는 직함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에서는 이 아버지라는 이름을 다독여주고 대신하여줄 사람은 없다. 다만 그저 삶의 짐의 무게를 점점 더 진하게 느껴가면서 세월의 무게를 더 얹어 중압감을 더해가며 그렇게 아버지라는 고독한 직업을 짊어지고 가야하는 외로운 존재이다.
우리네 아버지들이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물,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물이 절반이다. 세상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녹녹치가않다 재작년에 어느 회원 분께서 말한대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권리는 줄어들고 짐만 무거워진다.
아버지는 살면서 나이가 들어가는 만큼 자식들의 눈치와 마누라의 눈치를 보아야하는 게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안팎으로 도전을 받는다. 내 자신이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 오느냐가 자녀들이나 아내에게도 아버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라는 직업은 돈을 벌어오는 기계로 가치를 보여주는 직업이다. 한편으로 거느린 처자식들을 제대로 먹여 살린다는 뿌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평가받는 것 같은 생각에 먹먹함으로 눈물을 짓기도 한다. 적어도 가족들에게만은 인정을 받고 싶은 생각에 얼마나 많은 우리의 아버지들은 외부의 수모를 참고 견디면서 자존심을 내팽개치는 설움을 참아내야 하던가…….이렇게 밖에서 어떻게 지내고 생활하던 일단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는 가장 듬직한 기둥으로 집안을 받치고 선다.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고, 훌륭하고, 믿음직한 아버지이다. 허지만 그 이면에는 얼마나 눈물과 고독과 설움이 감추어져있던가. 그럼에도 아버지는 이제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지금의 이 수고와 노력을 딛고 초롱초롱한 미래의 나의 꿈나무들이 열매를 맺기 위해 자라고 있으니까. 그저 외롭고 힘들다가도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그 한마디면 아버지로서의 고독과 외로움과 힘든 일들이 눈 녹듯이 사그라진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것들이 간직한 깨끗한 피로……….. <myongyul@gmail.com> 922/201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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